[직썰 / 안중열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전격 연기하며 외교·안보 지형에 파란을 예고했다. 표면적으로는 이란과의 전쟁 상황에 따른 ‘통수권자의 본토 사수’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호르무즈 해협 호위 작전에 중국을 강제로 끌어들여 안보 비용을 분담시키고 무역 협상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고도의 셈법이라는 분석이다.
◇“전쟁 중 워싱턴 사수”…트럼프, ‘전시 대통령’ 행보 가속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중국과의 만남을 고대하나, 현재 전쟁 상황이 엄중해 워싱턴을 비울 수 없다”고 밝혔다. 당초 3월 31일로 예정됐던 방중 일정을 한 달가량의 연기 요청을 공식화했다. 그는 이번 결정에 대해 “어떠한 정치적 속임수도 없다. 단지 지금은 전쟁 중이며 내가 현장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외신들의 시각은 다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실무진에게 중국이 호르무즈 호위 작전에 응하지 않을 경우 회담을 연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일정 조정은 순전히 물류와 일정상의 문제”라며 진화에 나섰으나,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를 시진핑 주석을 향한 사실상의 ‘최후통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호르무즈 연합체 ‘동상이몽’…‘안보 무임승차’ 끝내나
현재 미 행정부는 이란의 해협 봉쇄에 대응해 ‘에픽 퓨리(Epic Fury)’ 작전의 일환으로 다국적 해군 연합체 구성을 몰아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 안보 차원에서 군함 파견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며, 한국과 일본 역시 미국의 명시적 요구에 따라 청해부대 등 기존 자산의 운용 변경이나 추가 파병안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등도 참여 의사를 밝히며 미국의 우방국 결집은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서 해당 해협 이용률이 가장 높은 중국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전형적인 안보 무임승차”로 규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는 시 주석이 절실히 원하는 정상회담 성사라는 카드를 지렛대 삼아, 중국의 실질적인 군사적 기여와 전후 복구 비용 분담을 이끌어내려 한다”고 분석했다.
◇격화하는 ‘이란 전쟁’…국제 유가 배럴당 100달러 돌파
이란의 저항 수위가 높아지는 점도 이번 연기 결정의 핵심 변수다. 지난 2월 미국의 공습으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한 이후, 이란은 이른바 ‘벌집 작전’을 개시해 중동 내 미군 시설 17곳 이상을 정밀 타격했다. 바레인과 쿠웨이트 등지의 미군 기지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최근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이 로켓 공격을 받으며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이란 해군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량의 기뢰를 살포하고 저가형 자폭 드론을 동원해 상선을 무차별 공격 중이다. 현재까지 MT 스카이라이트호와 MKD 비옴호 등 20여 척 이상의 상선이 파손되거나 나포됐다. 이로 인해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선을 돌파하며 글로벌 공급망에 비상을 걸었다.
◇무역 적자 32% 급감…‘지연 전략’으로 판 흔드는 미국
이번 연기 통보는 미·중 무역 협상이 중대한 분수령에 도달한 시점에 나왔다. 미 무역대표부(USTR)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강력한 대중 관세 정책의 영향으로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는 전년 대비 32% 급감하며 역대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미국은 이 기세를 몰아 반도체와 조선 등 중국의 핵심 전략 산업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며 이른바 ‘관리된 무역’ 체제를 굳히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에게 시간은 자신의 편이라는 확신이 있다”며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중국으로부터 ‘항복에 가까운 양보’를 받아내기 전까지는 판을 깨지 않으면서도 서두르지 않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결국 이번 회담 연기는 중국의 패권 도전 의지를 꺾고 미국의 요구 조건을 관철하기 위한 거대한 압박 시나리오의 정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Copyright ⓒ 직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