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원전 운영사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결정한 가운데 그 배경에 '친(親) 트럼프 기업 챙기기'라는 지적이 제기돼 주목된다. 미국 정부가 보조금까지 지급하며 거래를 터준 기업의 이사회를 '친(親) 트럼프'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어서다. 국제사회 안팎에선 이번 보조금 지급이 단순한 동맹 강화 이상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고도의 전략이라는 분석과 더불어 향후 정치적 악재에 휩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보조금까지 주며 특정 기업 거래 터준 美 정부…수혜 기업 이사회 '트럼프 인맥' 대거 포함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수출입은행(EXIM)은 한국과 일본의 원전 운영사들이 미국의 핵연료 스타트업 '제너럴 매터'로부터 농축 핵연료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자금(보조금)을 지원하는 총 42억달러(한화 약 6조3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 패키지를 승인했다. 이 중 한국에 배정된 보조금 규모는 약 18억달러(약 2조4000억원)다. 상업용 원전을 운영하는 한수원이 받게 될 전망이다. 일본의 도쿄전력·간사이전력 등은 나머지 24억달러(한화 약 3조원)를 지원받게 된다.
미국 정부가 이번 보조급 지급의 명분으로 내세운 사안은 '에너지 독립'이다. 그동안 글로벌 농축 우라늄 시장을 장악해 온 러시아 국영 기업 '로사톰(Rosatom)'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동맹국 간의 공급망을 공고히 하겠다는 취지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불거진 에너지 무기화 리스크를 미리 해소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존 요바노비치 미국 수출입은행장은 "이번 계획이 인도·태평양 지역 전반에 걸쳐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망 구축을 뒷받침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사회 일각에선 이번 미국 정부의 조치에 대한 의심 섞인 시선도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가 한국과 일본의 자금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특정 기업 제품 구매'를 내걸었는데 해당 기업의 이사회를 '친 트럼프'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어서다. 미국 정부가 콕 짚은 '특정 기업'은 바로 미국의 스타트업 '제너럴 매터'다. 제너럴 매터는 지난 2024년 1월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투자자 피터 틸(Peter Thiel)과 스페이스X 출신 엔지니어 스콧 놀란(Scott Nolan)이 함께 설립한 미국의 핵연료 농축 스타트업이다. 저농축 우라늄(LEU)을 생산하는 이 기업은 최근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제너럴 매터의 구체적인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미국 현지에선 농축 시설 건설 및 원심분리기 도입 등 대규모 초기 설비투자(CAPEX) 여파로 지난해 약 3억~5억달러 규모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의 적자는 전형적인 '선투자 후수익' 구조에 따른 것일 뿐 앞으로 막대한 실적을 거둬들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부로부터 임대 받은 부지에 짓는 설비 공사가 차질 없이 진행 중인데다 정부 일감 수주 실적 또한 상당하기 때문이다.
제너럴 매터는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임대받은 켄터키주 패듀카(Paducah) 부지에 대규모 농축 시설을 건설 중이며 오는 2020년대 후반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지난해 5월엔 트럼프 대통령의 원자력 행정명령 직후 미국 에너지부(DOE)와 9억달러 규모의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동맹국 기업 일감까지 확보하게 되면서 사실상 앞으로 수년 동안은 별도의 영업 없이도 막대한 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설비 부지부터 제품 구매까지 전폭적인 지원에 나선 배경에는 제너럴 메터 이사회를 장악한 화려한 '친(親) 트럼프' 인사들의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공동 창업자이자 핵심 투자자인 피터 틸은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대통령 인수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력을 지녔다. 현 정권의 실세인 JD 밴스 부통령을 정계로 이끈 '정치적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과거 밴스 부통령은 2011년 예일대 로스쿨에서 틸을 만난 뒤 틸이 설립한 밴처캐피털 미스릴 캐피털(Mithril Capital)에 합류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또한 틸은 밴스 부통령의 투자회사 나리야 캐피탈(Narya Capital)에 거액을 투자했으며 2022년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밴스에게 약 1500만달러를 후원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원자력 행정명령에 서명할 당시 대통령의 옆자리를 차지한 스콧 놀란 CEO는 틸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인물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에서 시작됐다. 2008년 피터 틸은 자신의 벤처캐피털인 파운더스 펀드(Founders Fund)를 통해 스페이스X의 첫 외부 투자자로 나선 적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국방부 소속 에너지 전문가로 활동한 리 로빈슨 역시 제너럴 매터의 공동 창업자로 참여하고 있다. 로빈슨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방부 산하 국방혁신단(DIU, Defense Innovation Unit)의 에너지 포트폴리오 부책임자 및 파트너십 책임자로 활동했다. 그는 미 육군 정보 장교 출신으로 제75유격연대 등 특수 작전 공동체에서 복무한 안보 전문가다. 이후 세계 최대 헤지펀드 중 하나로 꼽히는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투자 전략팀에서 근무하며 국방과 금융 분야의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다.
틸의 최측근이자 파운더스 펀드의 파트너인 '트레이 스티븐스(Trae Stephens)', 트럼프 진영의 정책 네트워크에서 활동해 온 '애슈비 브릿지(Ashby Bridge)' 등도 제너럴 메터의 사외이사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스티븐스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 인수위원회 내 국방부 팀에서 근무했다. 브릿지는 파운더스 펀드에서 틸의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며 공화당 후보들의 로비 업무를 담당한 이력을 지녔다.
과거 2022년 미국 중간선거 당시 틸은 JD밴스와 블레이크 마스터스 두 명의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에게 각각 1500만달러를 후원한 것을 두고 당시 폴리티코, 뉴욕타임스 등 미국 현지 언론들은 "애슈비 브릿지가 피터 틸의 자금이 흘러가는 길목을 지키며 후보자들의 캠프 운영 방식이 틸의 보수적 가치관과 일치하는지 감시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이번 금융 지원은 사실상 '친 트럼프' 기업 챙겨주기 성격이 짙은 만큼 자칫 거래 기업 입장에선 정치적 변수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미국의 금융 지원은 표면적으로는 우라늄 자립과 동맹 강화라는 안보적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특정 정치 인맥이 장악한 기업에 시장 독점권을 쥐어주는 성격이 짙다"며 "해당 기업 이사회가 미국 여당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우리 기업들이 향후 정권 교체 시 정치적 악재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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