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의 첫조명] 산골 시집살이 속 가족을 키웠다···농촌 여성의 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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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의 첫조명] 산골 시집살이 속 가족을 키웠다···농촌 여성의 90년

여성경제신문 2026-03-16 16: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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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로 다뤄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뉴스 검색 순위에는 오르지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목소리다. [김정수의 첫조명]은 그 숨은 이야기를 찾는다. 화려하지 않아도, 주목받지 못했어도 직접 만나 듣고 기록한다. 키워드 하나면 알고리즘이 뉴스를 골라주고, 생성형 AI가 정보를 요약해 건네는 시대다. 그 흐름에서 비껴간 사람·사건·상황을 처음으로 비추는 것이 이 코너의 취지다. 사소해 보이는 장면 하나, 한 사람의 선택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현실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작은 조명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충남 천안에 있는 요양원 '효자의집'에서 입소 어르신 9명의 자서전이 출간됐다. 사진은 전희임 씨(여·90)의 자서전 '내 자리에서 내 몫을 살았다' 표지다. /김정수 기자
충남 천안에 있는 요양원 '효자의집'에서 입소 어르신 9명의 자서전이 출간됐다. 사진은 전희임 씨(여·90)의 자서전 '내 자리에서 내 몫을 살았다' 표지다. /김정수 기자

“내 인생도 책이 되네?”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의 인생이 한 권의 책으로 남았다. 충남 천안 효자의집 요양원에 입소한 9명의 생애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이 출간됐다. 권선금·김금희·김병수·신정임·안희열·이일복·전희임·정정모·한광석 씨의 이야기다.

일제강점기·한국전쟁·산업화 시기를 지나온 세대의 경험이 담겼다. 농사·노동·가족 부양·생계 책임 속에서 이어진 시간들이다. 이들 일부는 경증부터 중증 치매를 앓고 있다.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남겨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기록 과정에는 긴장도 따랐다.

울면서 버텼지만 괜찮게 살았다

여성경제신문은 자서전에 참여한 안희열(1942년생)·전희임(1936년생) 씨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기억이 단편적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두 사람의 인생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농촌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결혼했고 강한 시집살이와 생계 노동 속에서 자녀를 키웠다. 지금 90세 안팎에 이른 이들의 이야기는 개인의 경험을 넘어 한 세대 농촌 여성의 현실을 보여준다.

여성경제신문이 13일 효자의집에서 1936년생 전희임 어르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수 기자
여성경제신문이 13일 효자의집에서 1936년생 전희임 어르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수 기자

전희임 씨는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산골 마을로 시집을 갔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생각보다 외진 산골로 시집갔다”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은 고된 노동의 연속이었다. 농사를 지으며 집안일을 맡았고 제사 준비까지 책임져야 했다.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자식 교육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농사짓고 애들 공부시켰어요. 힘들어도 그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의 자서전에는 젊은 시절의 자신에게 건네는 문장이 담겨 있다. “희임아, 너 참 잘하고 있다.”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가족을 챙기고 아이들을 키워낸 시간을 돌아보며 이제야 젊은 날의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넨다고 했다. “그때는 늘 ‘나는 못 배웠다’, ‘나는 별것 아니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내가 참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안희열 씨 역시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묻자 그 시절 운동회를 떠올렸다. “학교 다닐 때 운동회가 제일 좋았어요.”

하지만 결혼 이후의 삶은 전혀 달랐다. 시집살이는 쉽지 않았고 결국 남편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와 따로 살게 됐다고 했다. “시집살이가 너무 세서 안 좋았어요. 결국 할아버지(남편)가 데리고 나와버렸죠.”

이후 그는 공장 일을 하고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삶을 돌아보며 안희열 씨는 결국 남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했다. “돈 때문에 속상한 일도 있었지만 결국 마음에 남는 건 돈보다 사람이에요. 따뜻하게 했던 말 한마디나 밥 한 끼 나눠 먹던 기억이 인생을 지탱해줍니다.”

젊은 세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싸우지 말고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사는 게 좋다”며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게 제일 큰 일”이라고 답했다.

이번 자서전 작업은 ‘새록기록 제작소’라는 기록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호서복지재단 효자의집과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이 함께 추진했다. /김정수 기자
이번 자서전 작업은 ‘새록기록 제작소’라는 기록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호서복지재단 효자의집과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이 함께 추진했다. /김정수 기자

청년들 협업으로 남긴 평범한 생존 기록

두 사람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건의 연속이라기보다 평범한 생존의 기록에 가깝다. 농사를 짓고 집안일하고 생계를 이어가며 자녀를 키운 시간이다. 1930~1940년대 농촌에서 태어난 여성들에게 이런 삶은 예외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시집살이하고 생계 노동과 가사를 동시에 책임지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고는 시간이 지나며 잊혔다.

이번 자서전 작업은 ‘새록기록 제작소’라는 기록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호서복지재단 효자의집과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이 함께 추진했다. 호서대학교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단 지원을 받아 사회복지학과 재학생들로 구성된 ‘효네스타’ 팀이 어르신들의 생애사를 인터뷰와 회상 기록 방식으로 정리했다.

어르신과 보호자의 동의를 받은 뒤 여러 차례 인터뷰를 진행하고 녹취·전사·편집 과정을 거쳐 자서전이 완성됐다. 초고는 다시 어르신과 보호자에게 확인을 받으며 기억의 왜곡을 최소화했다.

지난 13일 효자의집 강당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행사에서는 어르신들이 자서전 일부를 직접 낭독하고 가족과 직원들이 함께 시간을 나눴다. /김정수 기자
지난 13일 효자의집 강당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행사에서는 어르신들이 자서전 일부를 직접 낭독하고 가족과 직원들이 함께 시간을 나눴다. /김정수 기자

프로젝트는 당초 13명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시작했지만 편집 과정에서 여러 사유로 4명이 제외되면서 최종적으로 9명의 자서전이 완성됐다. 효자의집 관계자는 “자서전 작업을 하면서 과거 기억을 떠올리다 힘들어하시거나 눈물을 보이신 어르신도 있었다”며 “의미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힘든 기억을 건드리는 건 아닐지 여러 번 고민했다”고 말했다.

출판기념회는 13일 효자의집 강당에서 열렸다. 행사에서는 어르신들이 자서전 일부를 직접 낭독하고 가족과 직원들이 함께 시간을 나눴다. 일부 어르신은 건강 문제로 참석하지 못했고 행사 도중 자리를 비우기도 했지만 가족들은 조용히 박수를 보냈다.

전희임 씨 딸은 “어릴 때 늘 따뜻한 밥은 자식들에게 먼저 챙겨주고 어머니는 급하게 물에 밥을 말아 드시던 모습이 기억난다”며 “열무를 묶어 장에 내다 팔며 자식들 학비를 마련하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울컥했다”고 말했다.

신정임 씨 아들은 “자서전이라고 하면 보통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의 삶도 이렇게 기록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며 “한 사람의 인생이 가족의 역사라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효자의집 어르신 자서전 출판 기념식 '새록기록 제작소'에서 전희임 어르신이 사인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정수 기자
효자의집 어르신 자서전 출판 기념식 '새록기록 제작소'에서 전희임 어르신이 사인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정수 기자

효자의집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내 인생도 책이 되네’라며 눈을 반짝이셨다”며 “삶의 마지막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기록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어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가 하루 사이에도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행사 준비 과정 자체가 긴장의 연속이었다”며 “요양원에서 일하다 보면 오늘 하루가 선물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평생 농사와 노동 속에서 가족을 키워온 시간. 그 시절 당연한 듯 지나갔던 삶이 한 권의 책이 됐다. 사라질 수도 있었던 한 세대의 경험이 기록으로 남았다. 요양원에서 열린 작은 출판기념회는 그 시간을 함께 돌아보는 자리였다.

☞RISE 사업단= 대학과 지역사회가 협력해 지역 발전을 이끄는 교육부 주관 국책 사업이다. 대학의 지역 혁신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호서복지재단 효자의집 어르신 자서전 출판 기념회 '새록기록 제작소' /김정수 기자
호서복지재단 효자의집 어르신 자서전 출판 기념회 '새록기록 제작소' /김정수 기자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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