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조선업계에서 처음으로 배관 스풀 제작 자동화 공장을 가동하며 조선 생산 방식의 변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단순한 설비 투자 차원을 넘어 조선소 핵심 공정을 로봇과 데이터 기반 생산 체계로 전환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삼성중공업은 경남 함안 칠서공단에서 배관 스풀 자동화 생산시설 '파이프 로보팹(PIPE ROBOFAB)' 준공식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행사에는 최성안 대표이사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와 글로벌 선주사, 조선업계 관계자 등 약 7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시설은 조선업계 최초로 배관 스풀 제작 공정을 공장 단위 자동화 시스템으로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배관 스풀은 선박 내부에서 각종 유체와 가스를 이동시키는 배관 시스템의 기본 단위다. 설계 도면에 맞춰 엘보와 티, 플랜지 등 다양한 부품을 용접해 하나의 구조로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동안 이 공정은 정밀한 작업이 요구되는 만큼 숙련 작업자 의존도가 높았고 생산 효율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에 구축된 파이프 로보팹은 이러한 공정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도다. 배관 설계 데이터부터 자재 물류, 가공, 계측, 정렬, 용접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스마트 관리 시스템으로 통합하고 여기에 비전 AI 기술을 접목해 자동화 생산 체계를 구현했다. 설계 정보와 생산 공정이 데이터로 연결되면서 공정 정확도와 작업 속도를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공장 규모는 연면적 약 6500㎡로 연간 약 10만 개의 배관 스풀 생산 능력을 갖췄다. 특히 로봇 기반 제작 공정을 도입하면서 작업 속도뿐 아니라 제품 품질의 균일성을 확보하고 작업 환경의 안전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조선업은 복잡한 공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산업 특성상 특정 공정의 생산성 향상이 전체 건조 일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배관 공정의 자동화는 선박 건조 과정의 효율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평가된다.
이번 시설은 삼성중공업이 추진 중인 스마트 조선소 전략의 구체적인 성과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회사는 지난해 '엔지니어링 데이터 허브(S-EDH)'를 구축해 설계와 구매, 생산 등 조선소 전 부문의 데이터를 통합하는 디지털 전환 작업을 진행해 왔다. 파이프 로보팹은 이러한 데이터 기반 시스템이 실제 생산 현장에서 구현된 사례로, 자동화와 디지털 기술이 조선 제조 공정에 본격적으로 접목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삼성중공업은 이를 '3X 전환' 전략의 일환으로 설명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 혁신(AX), 디지털 전환(DX), 로봇 자동화(RX)을 동시에 추진해 생산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으로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조선소의 제조 효율과 품질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이번 투자가 단순한 공장 신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조선업은 수주 회복과 친환경 선박 수요 확대 속에 생산 물량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숙련 인력 부족 문제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자동화 공정 도입은 생산 능력 확대와 인력 부담 완화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노사 역시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준공식에 참석한 삼성중공업 노사협의회 측은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산업 전반의 흐름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조선 물량 확대에 맞춰 고용 안정과 안전한 작업 환경을 함께 확보할 수 있도록 노사가 지속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파이프 로보팹 가동은 조선 산업이 전통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첨단 제조 산업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설계 데이터와 로봇 공정, AI 기반 관리 시스템이 결합된 새로운 생산 체계가 조선소 경쟁력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국내 조선업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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