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공화당에서는 부가세 도입 주역을 문책했어요. 부가세 때문에 박 대통령이 시해됐다는 엉뚱한 논리를 적용했지요. 국보위에 끌려갔는데 죽는다기보다, 사표 낼 각오로 갔어요. 당시 심유선 장군(소장)이 국보위 재무분과위원장이었어요. 그분이 재무부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부가세를 강 과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냐고 추궁했는데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재무부 세제국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1977년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실무자였던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회고다. 오래전 언론 인터뷰 기사인데, 부가가치세가 부마사태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당시부터 정설로 굳어졌다. 전두환이 이끌었던 국보위 역시 부마사태를 조세 저항으로 보고 부가세 실무자였던 강만수를 소환해 부가세 입법 과정을 추궁한 것이다.
'5공 정권의 설계자'로 불리는 허화평 전 의원은 자신의 저서 <지도력의 위기> 에서 "정치적 긴장과 조세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폭발한 것이 부산·마산 지역에서 발생한 부마 사태"라고 결론을 냈다. 지도력의>
전두환은 물론 5공의 주역들은 부가세에 대해 날 선 비판을 했다. 조세 저항으로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다는 분석을 그 후계자들이 공유한 것이다.
그렇다면 박정희 대통령의 사망까지 이어지게 만든 부가세 파동의 배경은 무엇이었던가.
1973년 10월,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욤키푸르 전쟁이 발생했다. 이 전쟁에서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아랍 산유국들은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석유를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났고 뒤이어 1979년 이란혁명으로 재차 국제 석유 가격이 요동을 쳤다.
이 과정에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낯선 경제 현상이 등장했다. 값싼 에너지에 의존해 성장하던 산업 국가들은 그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1977년 도입된 부가가치세는 단순한 세제 개편이 아니었다. 1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속에서 국가 재정을 확보하려던 박정희 정부의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이는 가뜩이나 고물가에 신음하던 민심에 불을 지폈고, 결국 부마항쟁이라는 조세 저항으로 이어져 정권의 종말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됐다. 석유가 흔들면 민심이 요동치고, 민심이 요동치면 권력의 지도가 바뀐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석유 최고가격제를 30년 만에 전격 부활시킨 상황에서 한국 등에 군함 파견까지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롭고 안전한 통행을 보장하라며 이란의 경제적 핵심으로 간주되는 하르그 섬 일부를 폭격하고 한·중·일을 비롯한 5개국을 향해 세계 에너지 수송의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군함 파견을 요구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월 제재로 수출이 막힌 베네수엘라 원유를 대신 국제시장에 판매하고 수익 배분도 통제하면서 WTI(서부텍사스산원유)를 배럴당 50달러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구상을 했었지만 이란 전쟁 이후 국제 유가는 이미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 같은 국제 정세 속에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고공 행진 중인 국내 기름값을 잡기 위해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처음으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지난 13일부터 전격 시행했다.
정유사가 주유소 등에 넘기는 공급가격에 상한선을 설정했는데 1차 최고가격은 리터(ℓ)당 보통휘발유 1724원, 자동차용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이다. 이번 조치가 해제되는 시점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 5분의 1이 걸려 있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과 국제 유가 추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석유파동이 박정희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끝낼 정도로 막강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정부의 이번 조치는 물가 앙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역시 유가 급등을 막기 위해 정부가 보유한 비축 석유 중 1억7200만배럴을 방출하는데, 이는 글로벌 차원에서 약 4억배럴 규모 공동 방출과 연계된다.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하는 형식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는 전쟁으로 유가가 상승하자 국가 안보 명분으로 에너지 생산을 직접 명령했는데 캘리포니아 해상 유전 개발 재개 명령이 그것이다. 전시 권한을 이용한 에너지 생산 확대를 도모하는 것인데 이는 한국전쟁 때 만들어진 전시 경제 동원법이 근거다.
70년대 석유 위기 때도 각국은 비슷한 대책을 세웠지만 최근에는 경제에 대한 각국의 국가 개입이 노골화되고 있는 시점이라 이번 석유 최고가격제 도입은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2차 대전 이후 케인스주의를 신자유주의로 바꾼 석유파동 이번에는 국가자본주의를 호출하나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 이후 세계 경제는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석유 가격 급등이 생산비 상승과 물가 폭등을 몰고 왔고 이에 따른 경기 침체와 실업 증가라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이러한 현상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기존 경제 정책이 이 상황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서방 국가는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는 케인스주의 정책을 신용해 왔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주장한 케인스주의 경제학은 경기 침체 시 재정 지출로 경제 활성화를 유지시키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시장은 당신이 버틸 수 있는 것보다 더 오래 비합리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국가 개입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케인스 정책을 쓰면 정부 지출 증가가 오히려 물가를 더욱 자극하는 부작용이 찾아왔다. 다시 말해 경기 침체 문제를 해결하려다 인플레이션이 더 심해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경제학자와 정치인들이 "정부 개입이 오히려 경제 문제를 악화시키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면서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신자유주의가 크게 유행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 개입 축소, 시장 경쟁 확대, 통화량 관리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이론은 1980년대 정치 지도자들에게 금과옥조의 지위를 얻게 되는데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 지도자는 공기업 민영화, 규제 완화, 감세, 노동시장 유연화, 복지 축소 등을 추진하는데 시장에서는 이 같은 정책을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라 불렀다.
그러던 추세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급부상으로 미·중 패권 다툼이 격화되고 코로나19 이후 세계가 심각한 공급망 붕괴를 경험하면서 다시 한번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미국의 경우 공급망이 위기에 처하자 핵심 부품인 반도체는 물론 의료 물자 등이 크게 부족하고 자국의 해상 운송 시스템마저 사실상 마비 상태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때 미국은 '핵심 산업을 해외에 너무 많이 맡겼다'는 아주 중요한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 때문에 해외로 나간 산업을 자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정책이 등장한다.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이 그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등장하기 이전인 조 바이든 민주당 정부 시절에도 이 같은 정책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령 반도체 지원 정책의 하나로 칩스법을 만들어 반도체·과학 산업에 2800억달러를 투자하고 미국 내 반도체 시설 건립 시 최대 3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키로 했다. 칩스법은 간단하게 말해 '정부가 산업을 직접 키운다'는 캠페인에 다름 아니다.
시진핑 식의 국가자본주의 행태는 트럼프 대통령 등장 이전부터 이미 미국 정치경제학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잡아 가고 있었음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세계 경제는 2차 대전 이후 케인스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다시 케인스주의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국가의 개입을 더욱 극대화 효율화하는 국가자본주의 양상으로 변해왔던 것이다.
그렇게 전개되던 추세가 이번 이란 전쟁의 영향으로 더욱 극대화되는 경향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우리는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도 '유럽칩스법'이 이미 가동 중이고 공공조달에서 유럽 기업 우대, 외국 투자 규제, 전략 산업 보조금 확대 등을 포함하는 '메이드 인 유럽'(Made in Europe) 정책이 착착 진행 중이다.
지금 세계가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산업정책 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고 이란 전쟁으로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유가가 그 같은 추세를 되돌리기는커녕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변수는 또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위안화 결제 물량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금융 제재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중국의 '페트로 위안' 시대를 여는 도화선이 될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맺은 '페트로 달러'(Petro-dollar)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지정학적 도전이다. 그간 미국은 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망을 장악해 '금융의 무기화'를 실현해 왔으나, 이란과 중국의 밀착은 이 포위망에 거대한 구멍을 뚫고 있다. 석유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한다는 것은 중국에게는 통화 패권의 교두보를, 이란에게는 미국의 달러 제재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의미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신의 SNS에 올린 <하르그의 불꽃과 베이징의 침묵> 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달 말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은 하르그 공습을 이해하는 핵심 배경이다. 하르그의 불꽃이 이란을 향한 포성인 동시에, 국제적 긴장 관리에서 중국의 역할을 소환하는 간접적 신호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고 진단했다. 하르그의>
김 실장은 국제 분쟁에서 중국의 역할이 커질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인데 '하르그의 불꽃'은 결국 달러 단일 체제에서 위안화가 공존하는 다극화 체제로의 강제적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이제 석유는 리터당 가격으로만 측정되는 자원이 아니라, 어느 나라의 화폐로 거래되느냐에 따라 제국의 명운을 결정짓는 '화폐적 전략 자산'으로 변화의 길을 찾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상황에서 굳이 한국 등 동맹국들은 물론이고 중국까지 거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파견하라고 요구하는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이란과 중국의 밀착에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이 '시장의 효율'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를 잉태했다면, 2026년의 에너지 위기는 '국가의 귀환'을 강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거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공급망을 전 세계로 흩어놓았지만, 전쟁과 봉쇄라는 극단적 불확실성 앞에서 이 효율적 시스템은 치명적인 독이 되어 돌아왔다.
1970년대가 '정부의 실패'를 외치며 시장으로 도망쳤던 시대라면, 지금은 '시장의 무능'을 목격하며 국가의 보호 아래로 모여드는 시대를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지점은 반드시 존재한다. 국가의 보호가 자칫 국가의 간섭과 비효율로 변질될 때, 우리는 70년대보다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석유가 흔드는 이 격변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국가의 무소불위한 권력이 아니라, 시장의 활력과 국가의 전략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지혜로운 개입'일 것이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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