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경현 기자] 국내 산업계가 중동 전쟁으로 인한 국제정세 악화와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시행에 따른 노사 갈등 격화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16일 재계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최근 국내 기업들은 고유가와 고환율 등 대외적인 악재와 하청 노동자의 교섭 요구를 허용하는 노동 규제 등 대내적 요인이 겹치며 경영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우선 대외적으로는 에너지 공급망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물론,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초강경 대응을 선언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실제 지난 12일(현지시간) ICE선물거래소에 따르면, 5월 인도분 브렌트유의 선물 종가는 배럴당 100.46달러(약 14만9524원)로 전거래일 대비 9.2% 오름세를 기록했다. 종가 시세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은 것은 지난 2022년 이후 처음이다. 뉴욕상품거래소의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전장 대비 9.7% 상승한 배럴당 95.73달러(약 14만2484원)에 마감했다. 이에 따라,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제조업계는 운송비 상승과 원가 부담 가중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대내적으로는 지난 10일 본격 시행된 노란봉투법이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해당 법안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에 하청업체 노동자들도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권을 부여받을 수 있고, 기업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또한 합법적 쟁의 행위 대상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으로 확대했다.
법 시행 직후 산업 현장에서는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12일 발표한 집계에 따르면, 개정 노조법 시행일인 10일과 11일 이틀간 하청노조 453곳(조합원 9만8480명)이 원청 사업장 248곳에 교섭을 요구했다.
날짜별로는 10일 하청노조 407곳이 원청 221곳에, 11일에는 46곳이 원청 27곳에 각각 교섭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며 사실상 교섭 절차에 착수한 원청 사업장은 한화오션, 포스코,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부산교통공사, 화성시, 대방건설 등 총 6곳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원청 사업장들은 사용자성 성립 여부를 법리적으로 검토 중이거나, 최장 20일이 소요되는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거칠 예정이다. 아울러 하청노조 측이 노동위에 제기한 ‘교섭단위 분리 신청’도 11일 기준 총 39건 접수됐다.
경영계는 기술 혁신이나 사업 재편을 위한 경영상 결단조차 노조의 동의에 좌우되는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현장 혁신을 위해 생산 라인에 로봇 도입을 검토 중이지만, 노조가 노란봉투법을 근거로 이를 ‘근로조건 저하’로 규정해 합법 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공장이 멈추는 피해를 보더라도 기업이 손해배상을 묻기 어려워 사실상 대응 수단이 마땅치 않다.
여기에 기본적인 근태 관리 등 정당한 경영 활동마저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현대차 아산공장에서는 근무 시간 중 외출 출입 절차에 반발한 노조 간부 7명이 사측 사무실을 무단 점거하고 PC와 사무 집기 등을 파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측은 공고문을 통해 "노사가 함께 논의해 시행 중인 절차를 원칙대로 적용한 것을 탄압으로 매도하는 억지 주장이다"며 "위력을 앞세운 구시대적 방식이자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현대모비스 역시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월 램프사업부를 프랑스 OP모빌리티에 매각하기 위해 업무협약을 맺고 협상 중이다. 하지만, 최근 하청 노조가 “매각 결정권자인 진짜 원청(현대모비스)이 직접 교섭에 나서라”며 제동을 걸었다. 이에 현대모비스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업 구조 개편마저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무리한 제도 적용이 장기적으로는 국내 산업 발전 저해를 부추길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노동 리스크가 가중될수록 기업들은 해외로 생산 거점을 옮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이미 해외에 7개의 생산 거점을 갖췄으며 지속적으로 확대 중이다. 현대모비스 역시 유럽 전역에 5개의 생산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쟁의권 확대가 자칫 국내 투자 위축과 ‘산업 공동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부작용을 최소화할 보완 장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내외 복합 위기 속에서 기업이 규제 대응에 발이 묶이는 대신,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제도를 무분별하게 악용할 경우 기업의 국내 투자 매력도가 떨어져 궁극적으로 국가 산업 발전을 저해하게 될 것이다”며 “주요 경쟁사들이 자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바탕으로 미래 산업 투자에 뛰고 있는 반면, 한국 기업들은 규제 대응에 행정력과 골든타임을 소모하게 되는 것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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