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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홍석구 세무법인 정율 대표 세무사 ]가업상속공제는 제도의 취지에 비해 문턱이 높고, 한편으로는 일부 편법 활용 논란까지 안고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제도 축소가 아니라 정교화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정교화의 대상은 가업상속공제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상속세 체계는 더 근본적인 의문을 낳는다. 제조업 승계는 ‘가업’으로 보고 상속세 공제를 게속 늘려온 반면 농·어업 승계에 대한 상속세 공제는 20분의 1 수준에 불과할까?
◇ 가업상속공제는 600억 Vs 영농상속공제는 30억
가업상속공제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가업에 해당하는 중소·중견기업에 적용되는데 비해 농업·임업·어업은 작물재배업 중 종자 및 묘목생산업만 가업상속공제 대상이다.
나머지 대부분의 농업·어업은 가업상속공제가 아니라 영농상속공제가 적용된다.
다시 말해, 같은 ‘대를 잇는 사업’이라도 제조업 등은 가업승계로, 대부분의 농어업은 별도 범주의 영농·영어 승계로 구분해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차이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현재 가업상속공제는 경영기간에 따라 최대 600억원까지 공제가 가능하다. 반면 영농상속공제의 한도는 30억원이다.
가업승계에는 상속 단계의 공제뿐 아니라 가업의 승계에 대한 증여세 과세특례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조세특례제한법은 부모가 생전에 주식 등을 후계자에게 증여해 미리 승계를 준비할 수 있도록 특례 규정을 두고 있다.
반면 영농·영어 승계에는 별도의 증여 특례 규정이 없다. 결국 농어업 후계자는 상속 시점이 오기 전에는 세제 측면에서 조기 승계를 준비할 제도적 수단이 미비하다.
차별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는 양상이다. 국회 입법자료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는 2007년 공제한도 1억원에서 지속적인 세법 개정을 거쳐 현재 최대 600억원까지 확대됐다.
영농상속공제는 2007년 2억원에서 현재 30억원으로 확대됐다. 즉, 과거에는 영농 분야 공제가 상대적으로 더 두텁거나 적어도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가업상속공제와의 격차가 압도적으로 벌어졌다.
정부가 사실상 제조업·중소기업 승계는 ‘국가가 지켜야 할 가업’으로, 대부분의 농어업 승계는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의 범주로 다뤄온 것으로 비춰진다.
◇ 농·어업 스마트팜 등 기업형 확산…후계 양성 고민
하지만 농·어업은 더 이상 단순한 1차 산업이 아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 수급 불안, 국제 공급망 교란 같은 변수가 커지면서 식량 생산 기반은 단순한 산업에 그치지 않은 국가적 과제로 부상했다. 최근 국회에서 식량안보와 관련한 입법 논의가 이어지는 것도 이런 문제의식의 반영이다.
농어업은 대규모 인적·물적 투자가 필요한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 스마트팜, 시설원예, 종자산업, 대형 양식업, 유통·가공 연계형 농식품 사업은 과거의 영세 자영업 구조에서 벗어나고 있다.
정부가 청년 농업인에게 영농정착지원금, 농지·시설 매입 및 임차 지원, 후계농 육성자금까지 연계해 주는 것도 농어업 승계가 정책적으로 후계 인력을 육성해야 하는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후계자가 생전에 일부 자산이나 경영기반을 넘겨받아 조기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세제 설계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
특히 영농·영어 후계자 육성은 지역소멸 대응과도 맞닿아 있다. 행정안전부는 이미 전국 89개 시군구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고, 국회와 정책 연구기관들은 농업·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농촌 지역의 소멸 우려를 키운다고 지적해 왔다.
농어업 승계가 단절되면 단순히 한 집안의 생업이 끊기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고용과 생산, 정주 기반이 함께 약화할 수 있다.
◇ 사전 승계 장치 전무…농어업도 후계 육성해야
영농·영어상속공제의 한도를 현실적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30억원 한도는 대규모 시설농업이나 법인형 농·어업 경영이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하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당장 가업상속공제와 같은 600억원으로 단번에 맞추자는 식의 접근은 조심스러울 수 있다.
다만 적어도 정책 방향은 분명해야 한다. 농어업 가업승계를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유지해야 할 생산기반의 승계로 보고 공제한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증여 단계다. 제조업 등 가업승계에는 부모가 생전에 자녀에게 주식 등을 넘겨 조기 승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증여세 과세특례가 마련돼 있다. 그런데 농어업에는 이런 사전 승계 장치가 사실상 없다.
이는 후계자가 젊을 때부터 직접 영농·영어에 참여하고, 기술과 거래처, 인력관리 노하우를 미리 이전받아야 하는 농어업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농어업 승계의 실패는 단순히 자산 이전이 늦어진 문제가 아니라, 숙련과 경험의 이전이 끊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영농·영어 분야에도 일정 요건 아래 사전 증여 특례를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가업승계 제도는 남용 방지 장치를 함께 갖춰야 한다. 농어업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 영농·영어 종사 여부, 상속·증여 이후의 계속 경영 요건, 지역 고용과 생산 유지 여부 같은 사후관리 장치는 분명히 필요하다.
다만, 지금처럼 제조업 계열 승계에는 두터운 사다리를 놓고, 농어업 승계에는 좁은 발판만 두는 방식이 과연 합리적인지는 의문이다.
핵심은 형평성이다. 대를 이어 기술과 일자리를 잇는다는 점에서 제조업의 가업승계와 농어업의 영농·영어 승계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식량 안보, 지역 소멸이라는 오늘의 현실을 놓고 보면 농어업 승계는 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분야다.
세제도 그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영농·영어상속공제를 가업상속공제와 같은 차원에서 재평가하고, 공제한도 확대와 증여 특례 신설을 포함한 합리적 조정을 검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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