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3.0] '당구여제' 스롱 피아비 "나를 있게 한 건 캄보디아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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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3.0] '당구여제' 스롱 피아비 "나를 있게 한 건 캄보디아의 눈동자"

연합뉴스 2026-03-16 06:00:06 신고

3줄요약

캄보디아 '국민 영웅'…"당구 잘 치면 더 많은 사람 도울 수 있어요"

재단 설립해 캄보디아서 5년째 의료봉사…"봉사는 나 자신을 치유하는 길"

"캄보디아에 세운 초등학교 52명이 제 자식, 한국으로 데려오는 게 꿈"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 취한 스롱 피아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 취한 스롱 피아비

(제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11일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시즌 왕중왕전 '하나카드 하나캐피탈 제주특별자치도 PBA-LPBA 월드챔피언십'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한 스롱 피아비. 2026. 3. 11. phyeonsoo@yna.co.kr

(제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좋은 일도, 아픈 일도 결국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다시 배웠어요.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도 당구를 놓지 않았던 건, 저를 믿고 기다리는 캄보디아 아이들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캄보디아 출신 '당구 여제' 스롱 피아비(36·우리금융캐피탈)는 지난 11일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시즌 왕중왕전 '하나카드 하나캐피탈 제주특별자치도 PBA-LPBA 월드챔피언십'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지난 1년의 부침을 돌아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번 대회를 돌아보며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지는 것도 큰 경험"이라며 담담히 말했다.

2025~2026시즌 왕중왕전서 샷하는 스롱 피아비 2025~2026시즌 왕중왕전서 샷하는 스롱 피아비

제주시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시즌 왕중왕전 '하나카드 하나캐피탈 제주특별자치도 PBA-LPBA 월드챔피언십'에서 샷을 하는 스롱 피아비. [프로당구협회(PBA) 제공]

원래 의사가 꿈이었던 그는 가정형편 탓에 학업 대신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다 2010년 한국인 남편 김만식(64) 씨와 결혼하며 한국에 정착했다. 남편을 따라 우연히 찾은 당구장에서 천부적인 재능을 발견한 그는 2017년 선수 등록 1년여 만에 국내 여자 3쿠션 일인자에 등극했다.

이후 여자프로당구(LPBA) 통산 9회 우승, 준우승 5회, 2022-23시즌 LPBA 대상, 2025-26시즌 팀 리그 5라운드 우승과 MVP 등 굵직한 성과를 남겼다. 주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연습 벌레로, '노력하는 천재'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화려한 기록 이면에는 '성공한 이주민'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고독과 상처가 깊었다. 피아비는 "성적보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며 인터뷰 도중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지난 1년은 그에게 지독한 슬럼프였다. 지난해 7월과 8월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 1월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팀 리그 5라운드 우승도 이끌었지만, 마음 한편은 늘 불안정했다.

2025-26시즌 팀 리그 5라운드 우승과 MVP로 선정된 피아비(앞줄 왼쪽서 2번째) 2025-26시즌 팀 리그 5라운드 우승과 MVP로 선정된 피아비(앞줄 왼쪽서 2번째)

[프로당구협회(PBA) 제공]

"당구 외적인 복잡한 일들이 너무 많았어요. 심리적으로 많이 흔들렸고, 그게 경기력과 일상에도 영향을 줬어요"

눈물이 고인 피아비의 눈동자에는 화려한 성적표 뒤에 드러나지 않은 고통과 책임,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치열한 자기 다짐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어딜 가나 밝은 기운을 전염시키는 '미소 천사'라는 소리를 듣지만, 그를 이토록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일까.

피아비는 2021년 사단법인 '피아비한캄사랑재단'을 설립해 한국과 캄보디아를 연결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롯데재단, 대한정형외과의사회와 함께 5년째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진행하며 수천 명을 치료하는 데 힘을 보탰다.

김영수(오른쪽) PBA 총재로부터 2022-23시즌 LPBA 대상받는 피아비 김영수(오른쪽) PBA 총재로부터 2022-23시즌 LPBA 대상받는 피아비

[프로당구협회(PBA) 제공]

특히 여러 사람의 후원을 받아 수도 프놈펜에서 북동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진 고향 캄퐁참 인근 오지에 전교생 52명 규모의 초등학교를 세워 학용품 지원, 의약품, 생활 물품 지원 등 다양한 봉사 활동을 벌였다.

그는 "돈이 없어 병원도 못 가는 사람들을 보면, 지금 당장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더 모은 뒤 더 많이 돕자는 말도 있지만, 아픈 사람이 오늘 치료를 받아야 내일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피아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봉사는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부담이기도 했다.

스롱 피아비가 세운 초등학교 전경과 학생들 스롱 피아비가 세운 초등학교 전경과 학생들

[스롱 피아비 제공]

그는 "재단 일을 그만두자니 아이들과 어르신들 얼굴이 자꾸 떠올라 죄책감이 들고, 계속 끌고 가자니 혼자 짊어진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했다. "당구도 잘해야 하고, 캄보디아 아이들과 어르신들, 재단 운영까지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쓰러질 것 같은 압박감이 컸다"고 털어놨다.

당구를 하면서 번 돈을 모두 모았다면 큰 부를 쌓았을 텐데, 지은 지 50년 된 고향 집은 여전히 예전 그대로다. 자신이 거주하는 집이나 고향 집부터 번듯한 새집으로 마련했을 법도 하지만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 돕는 일이 늘 먼저였다.

재단 봉사 활동을 멈추지는 않겠다고 한다. 다만 "예전처럼 무조건 다 짊어지기보다, 조금 더 길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며 "올해는 재단 일과 당구 사이에서 균형을 더 잘 잡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생활 16년을 돌아보며 "사람을 만나는 일이 가장 어렵고,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처받았지만, 사람을 포기할 수는 없다. 좋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고, 그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롯데재단, 대한정형외과의사회와 함께 5년째 캄보디아 의료봉사 롯데재단, 대한정형외과의사회와 함께 5년째 캄보디아 의료봉사

[스롱 피아비 제공]

그가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꺼낸 말은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특히 그를 붙든 것은 감사의 마음이었다.

"부상 없이 당구를 칠 수 있는 건강, 한국에서 지금의 삶, 번 돈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에요."

국내 체류 외국인 300만 시대를 앞둔 대한민국에서 다문화 혼인이 전체 혼인의 10%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외국인이나 다문화 자녀를 '이방인'으로 보는 시선이 남아 있는 가운데, 스롱 피아비는 한국에서 '코리안 드림'을 넘어 '함께 사는 꿈'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진료 기다리는 캄보디아 할머니·할아버지 진료 기다리는 캄보디아 할머니·할아버지

[스롱 피아비 제공]

그는 남편의 뜻에 따라 자녀를 두지 않았지만, "캄보디아 학교의 아이들 52명이 모두 내 아들, 딸"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남은 꿈은 이 아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피아비는 다문화 가족 차세대들에게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어디에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을 믿고 노력하면 누구나 자신의 길을 만들 수 있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 있게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조언했다.

이어 "팬 여러분의 응원 덕분에 힘든 순간에도 다시 일어나서 계속 도전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과 좋은 경기로 보답하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스롱 피아비(왼쪽서 4번째) 부모와 두 여동생 스롱 피아비(왼쪽서 4번째) 부모와 두 여동생

[스롱 피아비 제공]

피아비는 인터뷰 말미에 "그래도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며 "저를 통해 누군가가 희망을 얻고, 다문화 아이들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봉사는 남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치유하는 길"이라며 "당구 큐대를 잡는 이유는 캄보디아의 가난한 아이들을, 한국에 있는 다문화인들을 더 많이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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