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 13번째 인물
러시아서 항일무장투쟁 벌인 독립운동가들(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강창구 특파원 = 러시아 극동 파르티잔스크 등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던 한창걸(1892∼1938) 부대원들의 모습. 한창걸 빨치산부대는 연해주 일대에서 러시아 백군, 일본군 등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승리했다. 연합뉴스는 8.15 광복절 64주년을 이틀 앞둔 2009년 8월 1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소재 국립 아르세니예프박물관 수장고에 보관 중인 항일 독립투사 사진 등 광복절 관련 희귀 흑백사진 23점을 발굴했다. 2009. 8. 13. kcg33169@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광주 고려인마을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함께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 열세 번째 인물로 김도여 선생(1867~1917)을 선정, 조명한다.
김도여 선생은 연해주 한인 사회의 대표적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로,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서 민족 자치와 항일운동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1867년 함경북도 이원군에서 태어난 선생은 1901년경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했다. 낯선 땅에서의 삶은 단순한 생계를 넘어 조국 독립을 향한 또 하나의 투쟁의 길이 됐다.
선생은 1911년 이상설, 이종호 등과 함께 연해주 한인 사회의 대표적 자치·독립운동 단체인 권업회(勸業會) 조직에 참여했다. 권업회는 경제적 자립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운동의 기반을 다지고자 했던 단체로, 선생은 의원과 총무를 거쳐 회장으로 활동하며 한인 사회의 경제적 안정과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특히 '권업신문' 발간과 교육 진흥, 한인 자치 조직 운영 등을 통해 연해주 동포사회의 중심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1914년에는 신한촌 거류민회의 회장으로 선출돼 동포 사회를 이끌었고, 이후 경애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교육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또한 이동휘 등과 함께 애국저금단을 조직해 독립전쟁 자금을 모으는 활동에 참여했으며, 북빈의용단과 대한광복군정부 계열 독립운동에도 협력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압력으로 러시아 당국이 한인 단체들을 해산시키면서 권업회와 권업신문도 폐간됐다. 항일 지도자들에 대한 탄압이 이어졌고 김도여 선생 역시 신한촌을 떠나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숨어 지내야 했다.
혹독한 도피 생활 속에서 병을 얻은 그는 결국 1917년 2월 4일 연해주에서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연해주 한인 사회에 큰 슬픔을 남겼다. 이동휘와 이상설 등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장례를 주관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던 신한민보는 그를 "극동 동포 모두가 의지하던 만리장성과 같은 인물"이라 평가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그의 삶과 달리, 후손의 행방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이천영 광주 고려인마을 이사장은 "연해주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고려인 독립운동가들의 삶은 아직도 역사 속에 흩어져 있다"며 "김도여 선생의 후손을 찾는 일은 잊힌 독립운동의 역사를 복원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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