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정권, 압도적 힘에도 생존해 소모전·반전여론 유도
호르무즈 통제에 총력전…동맹 넘어 중국에도 손 벌려
트럼프 레임덕 위험…유럽·아시아 안보지형까지 흔들 수도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이 세계 경제를 인질로 잡은 이란의 게릴라전 때문에 시험대에 올랐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이란이 최후의 지렛대로 삼아 봉쇄를 시도하고 있는 '글로벌 에너지 동맥'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력을 확보할지가 세계의 최대 관심사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이란이 꺼내든 카드는 전형적인 비대칭 전술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수천 차례의 공습을 퍼부어 이란 지도부와 군사 시설을 타격했다.
이란 해군 전력의 상당 부분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능력을 파괴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이 쏟아부은 첨단 무기들에 한참 못 미치는 무기들을 이용해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쥐었다.
그들의 목표는 게릴라전을 통해 세계 경제에 충격을 가해 미국과 세계의 반전 여론을 움직이고 이스라엘의 전쟁 의지를 꺾는 데 설정됐다.
전쟁 발발 이후 이란군은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 일대에서 최소 16척의 상선을 공격했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다.
드론, 단거리 로켓, 기뢰 등 이란의 방대한 무기고는 이 좁은 해협에서 선박을 공격하기에 용이하다. 이에 따라 해운사들은 막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다.
이란은 전 세계 원유 및 천연가스 공급의 상당 부분이 시장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함으로써 세계 경제에 목줄을 걸어놓은 상황을 맞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이란의 게릴라전을 무력화해 세계 경제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지 않으면 심한 역풍을 맞을 위기에 몰렸다.
이란의 비대칭 전술이 효과를 드러내기 시작함에 따라 미군은 다각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일단 미국 국방부는 일본에 있던 해병대를 빼 중동 지역에 추가 파견했다.
이 병력은 공중 공격, 해상 상륙 작전, 특수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전력으로 알려져 호르무즈 해협 연안에 투입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권과 경제의 '생명줄'로 불리는 하르그 섬을 타격하며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봉쇄 해제를 압박했다.
그는 일단 섬 내의 군사시설을 선별적으로 타격한 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지속되면 석유시설까지 폭격하겠다고 경고했다.
하르그 섬의 석유시설이 폭격당하면 이란의 경제는 초토화하고 정권은 전쟁을 지속할 여력을 잃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해군이 조만간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을 비롯한 상선의 호위를 시작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등 5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군함 파견을 사실상 요구했다.
다만 미국 해군 내부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병력 투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전히 많다.
해협은 가장 좁은 곳의 폭이 약 34㎞에 불과해 이란의 드론과 대함 미사일 공격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미군은 이란 해안선을 따라 공습을 강화하고 있지만 이란이 이동식 대함 미사일과 기습 전술을 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국면과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이 오랜 기간 미국과의 충돌 가능성에 대비해 왔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을 주목한다.
이란 정권이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공격에 대비한 전략을 준비해 왔으며, 현재로서는 전쟁 의지를 꺾을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전쟁 전반의 군사적 변화를 따진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미국·이스라엘과의 '12일 전쟁'에서 이미 큰 타격을 입었던 이란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은 이번 공격으로 더욱 후퇴했다.
역내 전역을 위협해온 장거리 미사일과 방공망 역시 회복이 불가능할 수준으로 망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압도적인 군사력만으로 이란 정권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외교·안보 전문가 마이클 오핸런은 WSJ에 "공습만으로 이란 정권이 붕괴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낙관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란의 저항으로 점점 길어지고 있는 전쟁의 파장은 중동을 넘어 국제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에너지 공급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국제 석유 비축분 방출과 러시아산 원유 제재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전쟁자금 확보를 돕는 일이며 우크라이나 승전을 발판으로 삼아 유럽으로 야심을 확대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이 이번 전쟁을 통해 미국의 군사 전략과 전력을 관찰할 기회를 얻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흔들리면 아시아 동맹국들의 안보지형은 다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전쟁 때문에 급격한 레임덕을 맞이할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 의회의 주도권을 놓고 열리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휘발유와 소비재 가격 상승은 이미 최대의 악재로 부상했다.
ksw08@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