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등단 30년…소설이 이젠 '이상' 아닌 '생활'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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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등단 30년…소설이 이젠 '이상' 아닌 '생활'이 됐죠"

연합뉴스 2026-03-15 08:31: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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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소설집 '반대편 사람 주의' 펴내…일상의 불안 탐구

이상문학상·김승옥문학상 작품 수록…"이젠 대표 장편 써야죠"

등단 30주년 맞은 조경란 소설가 등단 30주년 맞은 조경란 소설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등단 30주년을 맞은 조경란 소설가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아홉번째 소설집 '반대편 사람 주의'를 들고 있다. 2026.3.15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시적 구심력과 서사적 원심력.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 위에 자신만의 심미적 문학 세계를 구축해온 조경란(57) 작가가 4년 만에 새 책으로 돌아왔다.

아홉번째 소설집 '반대편 사람 주의'(문학동네)를 펴낸 그를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났다.

◇ "'소설을 만든다'는 생각 버려…인물 중심으로 이야기 굴려"

그가 처음 문단에 발을 들인 것은 1996년. 조경란은 그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 '불란서 안경원'으로 등단하고, 같은 해 장편 '식빵 굽는 시간'으로 문학동네 1회 신인작가상을 받았다.

이어 소설집 '코끼리를 찾아서', '풍선을 샀어', 장편소설 '가족의 기원', '복어' 등을 펴내며 중견 작가로서 자리를 확고히 했다.

등단 30주년을 맞은 그는 "등단 때는 얼떨결에 작가가 된 느낌이었다"며 "그런데 벌써 30년이라니, '큰일 났네. 어서 대표작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웃음 지었다.

그는 "자랑할 게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소설을 써왔다는 것"이라며 이제는 소설이 '먼 이상(理想)'이 아닌 '생활'이 된 것도 30년의 세월이 만든 변화라고 말했다.

소설을 쓰는 방식에 변화는 없었을까.

작가는 "예전에는 작품을 구상할 때 어떤 이미지나 사건을 먼저 떠올렸다면, 이제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궁글린다(굴리다의 방언)"고 했다.

어떤 인물이 마음에 들어오면 그 인물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게 되고, 그 상황에서 인물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상상하며 빈칸을 채워간다는 것.

그러면서 조경란은 "지금은 '소설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젊은 시절엔 이미지 하나, 사건 하나를 붙잡고 애써 억지로 작품을 쓰려고 했다면, 이제는 눈덩이를 굴리듯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굴려 나간다는 것이다.

어쩌면 "소설이 생활이 됐다"는 그의 말은 어떤 작위나 강박에서 한결 자유로워졌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등단 30주년 맞은 조경란 소설가 등단 30주년 맞은 조경란 소설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등단 30주년을 맞은 조경란 소설가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아홉번째 소설집 '반대편 사람 주의'를 들고 있다. 2026.3.15
mjkang@yna.co.kr

◇ 인물에 대한 궁금증 꼬리에 꼬리…일곱 편의 단편으로 이어져

새 소설집에는 연작 소설로 봐도 무방한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다.

같은 인물이 반복해 등장하거나 한 작품의 주변 인물이 다른 작품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며, 소설 속 인물의 삶은 서로 이어지고 포개진다.

하지만 작가가 처음부터 연작소설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작품집에서 시간 순서상 가장 먼저 쓴 작품은 2022년 발표한 '검은 개 흰말'이다.

작가는 200자 원고지 140매로 구성된 초고를 닷새 만에 써 내려갔다. 그리고 두어 달 초고를 붙잡고 씨름하다 보니, 퇴고 과정에서 다른 이야기들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그럼 주인공은 어떻게 되지? 주변 인물은 어떻게 될까?' 질문이 꼬리를 물며 또 다른 단편으로 이어졌고, 올해 발표한 '절차'를 끝으로 일곱 편이 마무리됐다.

조경란은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과 4년을 보낸 느낌"이라고 집필 과정을 돌아봤다.

그만큼 치열하게, 치밀하게 인물을 파고든 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도 따라왔다.

수록작인 '일러두기'와 '그들'은 각각 2024년 이상문학상과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그에게 안겼다.

따지고 보면 2008년 동인문학상 수상 이후 16년 만에 받는 문학상이었다.

조경란은 "응원을 받은 느낌이었고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었다"며 "하지만 또다시 16년 동안 무관이어도 소설을 쓰겠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조경란 소설집 '반대편 사람 주의' 표지 조경란 소설집 '반대편 사람 주의' 표지

◇ "인간의 불합리한 불안 다뤄…타인을 간절히 주의해야"

이번 작품집은 사람들의 불합리하고, 불가해한 불안을 다뤘다.

작품에는 끓어 넘치기 직전의 냄비처럼 불안과 긴장이 가득하다. 다만 쉽게 파국으로 치닫진 않는다.

작가는 위태로운 관계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이들의 온기를, 삶의 숨통을 틔우는 일상의 작은 균열을 포착해낸다.

이를테면 '그들'의 주인공 종소는 교수 임용에서 번번이 좌절을 겪는 대학 강사다.

그는 자신을 '희망 고문'하던 최 교수에게 복수할 마음으로 그의 아내 영주가 운영하는 카페를 찾아간다.

하지만 종소는 카페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다 어이없는 사고를 내고 복수극은 허망하게 끝난다.

그리고 되레 종소의 찢어진 주머니를 꿰매주는 영주의 친절은 그의 삶에 묘한 온기를 남긴다. 짧은 순간 나눈 작은 온기가, 누군가를 다시 살게 할 힘이 된다.

이처럼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를, 미세한 신호가 불러오는 삶의 변화를 포착해낸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정말 타인을 간절히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애써서 다정하게 주의할 때 그 안에서 우정과 친밀감이 생겨나지 않겠냐는 생각도 듭니다."

그는 또 "사람들 사이엔 '일러두기'라는 것이 없으니 최선을 다해 주의하는 것이 어쩌면 인간의 일"이라고 덧붙였다.

등단 30주년 맞은 조경란 소설가 등단 30주년 맞은 조경란 소설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등단 30주년을 맞은 조경란 소설가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아홉번째 소설집 '반대편 사람 주의'를 들고 있다. 2026.3.15
mjkang@yna.co.kr

수록작 중 '일러두기'의 주인공 미용은 이렇게 말한다.

"일러두기라는 게 있었네요. (중략)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네요. (중략) 그러면 미리 이해를 구할 수도 있고 안내 같은 것도 할 수 있게 될 테니까요."('일러두기' 중)

아울러 그는 책의 제목을 '반대편 사람 주의'로 정한 것은 편집자의 아이디어였다며 편집자의 감각을 치켜세웠다.

향후 작품 활동 계획도 물었다.

조경란은 자기 기준에 '대표 장편'이라고 할만한 소설이 없다며 자신에게 박한 평가를 내렸다.

"다음 책은 이번 책보다는 제 기준에 좀 더 좋은 작품이어야 하고, 이젠 대표작이라고 할만한 장편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스케일이 큰 이야기가 있다"며 "올해 들어온 단편 청탁을 내년으로 미루고 장편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고 귀띔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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