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석주원 기자 | 국내 대표 게임 기업인 넥슨, 크래프톤, 넷마블이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하며 ‘K-게임’의 성장세를 주도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자금난으로 게임 서비스를 중단하는 게임사가 나오는 등 국내 게임업계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국내 게임 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최전성기를 누렸지만 이후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둔화된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한콘진)이 작년 4월 발간한 ‘2024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 2023년 국내 게임산업 매출은 22조9642억원으로 전년 대비 성장률은 3.4% 증가에 그쳤다.
국내 게임 매출 성장률은 팬데믹 시기인 2020년 21.3%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이후 2021년 11.2%, 2022년 5.8%로 급격히 떨어지며 사실상 저성장 구간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3년 게임 수출은 83억9400만달러로 전년 대비 6.5% 감소해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 역성장을 기록했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7.8% 수준에서 정체됐다.
국내 게임사들은 팬데믹 특수의 후유증과 중국발 경쟁 심화, 중독성 물질 등재 등 규제 논란, 급등한 비용 부담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게임 산업이 다시 도약하기 위해서는 포트폴리오와 타깃 시장, 비용 구조를 전면 재설계해야 하는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진단한다.
▲ 게임 이용 수요 감소…구조적 변곡점
국내 게임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플랫폼은 모바일게임으로 전체의 약 59%에 이르지만 성장률은 4%대에 머물고 있다. SK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을 약 7.6조원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지난 2021년 8.1조원 이후 오히려 하락한 규모다.
보고서는 유튜브와 틱톡 등 숏폼 소비 시간이 늘어난 반면 장시간 몰입형 게임 수요는 갈수록 줄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체부와 한콘진 조사에 따르면 국내 게임 이용률은 최근 5년간 연평균 6.8%씩 감소해 2024년에는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50.2%까지 떨어졌다. 게임에서 이탈한 이용자층은 OTT·유튜브 등 시청형 콘텐츠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중국발 경쟁 압력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2024년 국내 모바일 매출 상위 10위권에는 ‘라스트 워’ 등 중국산 게임이 절반 가까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매출 상위 5개 중 3개 이상을 중국 게임이 차지하는 경우도 잦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내에서 한국 콘텐츠 소비를 제한하는 한한령 이후 한국 게임의 중국 진출은 막혔지만 중국 게임사들은 내수 시장에서 자본과 개발력을 축적해 역으로 한국 게임 시장에 대거 진출한 상황이다. 최근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는 중국산 게임들이 오히려 국산 게임보다 앞선 완성도와 경쟁력으로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규제 환경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2024년 개정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은 확률형 아이템의 구성 비율과 산정 기준 공개를 의무화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과 행정제재가 가능하도록 했다. 여기에 2025년에는 확률 정보를 허위 표시할 경우 매출의 최대 3%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개정안까지 국회를 통과해 8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용자들은 그동안 과도한 사행성 논란을 불러왔던 확률형 아이템 제재를 환영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시장 경쟁력을 과도하게 규제하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외산 게임과의 형평성 문제도 지적받고 있다.
▲ 대형 퍼블리셔와 소규모 개발사 격차 확대
작년 넥슨은 매출 4조5072억원, 영업이익 1조1765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또다시 경신했다. 4개 분기 모두 매출 1조원을 돌파라는 기념비적인 성과도 냈다. 크래프톤도 작년 연매출 3조2972억원으로 처음으로 3조원을 넘어섰고 넷마블 역시 2조8351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새로 썼다.
이처럼 국내 빅3 게임사가 모두 역대 최고 매출을 경신하는 호실적을 이어간 반면 중견·중소 게임사들의 실적은 빠르게 악화되며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신작 출시가 연기되며 타격을 받은 카카오게임즈의 작년 매출은 전년 대비 26% 감소했으며 영업손실을 이어갔다. 작년 하반기 카카오게임즈가 퍼블리싱했던 신작 게임 ‘가디스오더’는 개발사가 경영난으로 파산하며 서비스가 종료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웹젠은 2020년 2940억원의 연매출로 역대 최고 기록을 썼지만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기록해 작년에는 고점 대비 약 60% 수준인 174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연초 출시한 ‘드래곤소드’는 초반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실패했으며 개발사와 퍼블리싱 분쟁까지 발생하면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컴투스, 위메이드, 네오위즈, 데브시스터 등 중견 이상의 게임사들은 대체적으로 양호한 실적을 보이고 있지만 가디스오더와 드래곤소드의 사례에서 보듯 규모가 작은 개발사들은 신작의 흥행 실패로 회사의 명운이 다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게임 개발 환경이 비용과 개발 기간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신작 출시 후 흥행이 담보되지 않으면서 자금력이 부족한 영세 기업들이 살아남기 힘든 구조로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콘진이 게임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노동 환경 조사에서도 임금·복지·고용안정성 등 거의 모든 항목에서 소규모 사업체의 만족도가 대형 게임사에 비해 크게 뒤처졌으며 산업 양극화를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은 비율도 40%를 웃돌았다.
▲ 게임사별 특화 전략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 게임 산업의 구조적 리스크를 돌파하기 위한 공통 해법으로 △포트폴리오 다변화 △글로벌 시장 확장 △비용 효율화를 제시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업황 역시 급반등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모바일 앱마켓 수수료 인하와 자체 결제 도입에 따른 수수료 절감, 비용 구조 재편, 선별된 기대작 흥행에 따라 개별 회사 실적은 개선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상위 게임사들은 이미 장르와 플랫폼을 넓히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넥슨은 하드코어 액션과 슈팅 등 콘솔·PC 중심 신규 IP를 앞세워 서구권 매출을 5배 이상 확대했다. ‘마비노기 모바일’을 통해 기존 IP의 확장 전략의 성과도 입증했다.
크래프톤은 배틀로얄을 넘어 생존·슈팅·샌드박스 등으로 PUBG 세계관을 확장해 프랜차이즈 IP로 키우는 전략을 본격화했고 넷마블도 자체 IP 기반 콘솔·모바일 신작을 연달아 내놓으며 장르와 플래폼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고 있다.
문제는 중견·중소 게임사들이 이러한 전략을 그대로 따라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중소 개발사들에게는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는 대형 프로젝트보다 리스크를 쪼개는 소규모 프로젝트를 다수 운영하는 전략이 현실적인 해법으로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고비용 MMORPG 한두 종에 집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중소 규모 프로젝트를 병렬로 운영하고 글로벌 퍼블리셔·플랫폼과의 협업으로 개발비와 UA(유저 유입 비용)를 분담하는 모델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최근 게임 시장에서 유행하는 서브컬처·로그라이크·슈터·인디 등 특화된 장르에서 핵심 이용자층을 확보한 뒤 라이브 서비스·DLC·굿즈 등으로 수명을 연장하는 방식이 리스크 대비 수익성이 더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규제 대응과 이용자 신뢰 회복도 중장기 생존 전략의 핵심 축이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의 완전 공개와 규제 강화는 단기적으로 게임 매출을 약화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과금 모델 안정화와 시장 신뢰도 향상을 통해 더 많은 이용자를 유입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국내 게임 시장의 성장 둔화는 기존 생태계 구조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라며 “게임 이용자들의 성향이 다변화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서사와 서비스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의 하위 계층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