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가 옛 한옥 건물 매입 후 주민 의견 반영해 리모델링
한옥 외관 유지하면서 내부는 현대식으로 카페·독서 공간 등 마련
[※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대구=연합뉴스) 이강일 기자 = 대구시 중구 남산2동은 지역에서 가장 개발이 뒤처진 곳 가운데 하나로 통한다.
대구 최고의 번화가로 알려진 중구 동성로와 중앙로에서 불과 수백m 떨어져 있어 개발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도 있었지만, 이곳은 그렇지 못했다.
일부 재개발이 이뤄진 곳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도 했지만 1980년대 향수를 불러올 만큼 좁은 골목길이 아직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생기기 시작한 일명 '남산동 인쇄골목'이 중심을 이룬다. 인쇄골목은 남산동 계산오거리에서 시작해 남문시장 입구까지 이어진다.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서울에 있던 인쇄시설을 대구 옮겨오면서 인쇄골목은 남산동의 뛰어난 도심접근성 등을 배경으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1990년대를 거치면서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복사기 등의 등장으로 인쇄골목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런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인쇄골목의 한쪽에 주변의 오래된 양옥 주택들과는 확연히 구분될 만큼 눈에 띄게 깨끗한 작은 한옥 한 채가 있다.
378㎡의 넓지 않은 터에 연면적 158㎡가량으로 지어진 말끔한 외관의 한옥은 이 마을 복합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는 '대구하누리어울림센터'다.
대구 중구청 소유지만 남산2동 주민을 중심으로 조직된 '남산하누리협동조합'이 위탁운영을 맡고 있다.
하누리어울림센터 건물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고급 요릿집과 유흥시설을 겸하던 일명 '요정(料亭)'이었던 자리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 오래 살았던 주민들은 인쇄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 동네에 요정이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인쇄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되자 요정은 영업을 중단했고, 이후에는 가정집으로 이용됐다. 이 과정에서 주인도 여러 차례 바뀌었고, 사람이 살다가 안 살았다가를 반복했다고 한다.
이후 남산2동 일대에 대한 재개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해당 건물은 철거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당시 건물주가 주민 화합과 소통을 위한 거점 공간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 건물을 중구청에 팔았다.
중구청이 해당 건물을 사들이면서 방치될 뻔했던 도심 한복판의 한옥은 생기를 얻을 계기를 갖게 됐다.
중구청은 7억여원의 예산을 투입, 2020년 12월 전통 한옥의 가치를 보존하는 이색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리모델링 기획 단계부터 공간 구성까지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한옥 형태의 외관은 유지했지만, 건물 안은 싹 바뀌었다. 온돌 등으로 지면보다 높았던 기존 한옥의 바닥을 지면 높이로 낮춰 현대식 입식 생활이 가능하게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예전 한옥처럼 서까래와 대들보가 노출된 천장이지만 시스템 에어컨과 폐쇄회로(CC)TV까지 설치됐다.
겉으로 보면 작은 한옥이지만 내부는 현대식 건물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갖춘 셈이다.
센터는 내부를 구분해 주민 휴게실 역할을 하는 카페와 마을회관 역할을 하는 사무실, 다목적실, 창고 등으로 활용된다.
카페는 주민들이 만나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거나 만남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 공간도 별도로 마련됐다.
지역주민이 자체 구성한 마을공동체가 커뮤니티센터를 직접 운영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해 운영하는 프로그램 사업을 통해 지역공동체 활성화에도 이바지한다.
센터에서는 지역 전문작가와 연계해 서각과 캘리그라피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한다. 해당 프로그램에는 주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지역작가와 연계한 악기연주 프로그램도 매년 6∼11월 다목적홀에서 운영한다.
또 2021년 개관 이후부터 매달 지역 작가 초대전시회 및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도 운영해 지역 작가 작품을 연중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 봄에는 주민참여예산을 통한 사업으로 매실청 담그기 프로그램도 운영해 '실천하는 주민자치'를 실현하기도 했다.
센터 내 공유부엌은 중구에 있는 자원봉사단체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기도 한다.
김시권 남산2동 새마을협의회장은 "대구 중구 가운데서도 개발이 가장 뒤처진 곳이지만 민·관이 함께 힘을 합친 어울림센터가 머지않아 남산2동 지역사회를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혜현 남산하누리협동조합 국장은 "어르신 인구 비중이 유독 높은 남산2동 지역에 어울림센터 같은 장소가 있어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며 "센터가 힘을 잃어 가는 우리 동네에 생기를 불어넣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leeki@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