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고개가 살짝 왼쪽으로 쏠렸어요. 오른쪽, 오른쪽으로. 자, 웃어야 해요!"
지난 11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신신예식장.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세월의 때가 묻은 낡은 크리스털 샹들리에 아래서 신신예식장 백남문(56) 대표가 흥에 겨운 듯 바그너의 결혼행진곡을 직접 입으로 부르며 유쾌한 추임새를 넣었다.
전문가용 DSLR(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을 든 백 대표의 열정적인 지도에 잔뜩 긴장했던 예비부부의 얼굴에는 꾸밈없는 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백 대표는 신랑 신부의 휴대전화를 건네받아 스냅 사진까지 알뜰하게 남겨주며 현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반세기 넘게 형편이 가난한 부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신신예식장이 최근 '레트로 웨딩(결혼) 사진 성지'로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고(故) 백낙삼 전 대표가 1967년부터 55년간 예식장을 무료로 운영하며 무려 1만4천여 쌍의 부부를 맺어준 뜻깊은 장소다.
낡고 빛바랜 예식장 곳곳에 고인의 따뜻한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예식장 단상 뒤편은 인위적인 연출로는 흉내 낼 수 없는 박물관급 레트로 감성을 뿜어낸다.
벨벳 커튼을 배경으로 화려한 금빛 좌우 대칭 쌍 봉황과 태극기, 혼인 등 기쁨을 상징하는 한자 '쌍희(囍)' 자가 자리 잡고 있다.
빛바랜 하얀색 톤 주례 단상을 감싼 풍성한 분홍빛 조화 장식과 촛불 형태의 샹들리에 조명은 1970∼80년대 전통 예식장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 단상 아래 놓인 투박한 청록색 글씨체의 '신신예식장' 현판과 한자가 섞인 옛날식 세로형 신랑·신부 안내판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한 향수를 자극하며 아날로그 감성에 완벽한 방점을 찍는다.
아버지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예식장을 운영 중인 백 대표의 사무실 책상에는 손때 묻은 두꺼운 예약 장부가 펼쳐져 있다.
벽면 화이트보드에는 빼곡하게 적힌 예약자 명단이 인기를 대변했다.
무료 예식장의 상징인 신신예식장이 '결혼사진 명소'로 인기가 치솟은 것은 지난해 10월 무렵부터다.
백 대표는 "특별한 계기라기보다 레트로 열풍 덕분인지 사진을 찍으려는 부부가 부쩍 늘었다"며 "고객들이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아이유 씨가 1990년대식 결혼식을 올린 장면을 종종 언급한다"고 말했다.
아이유가 이곳에서 촬영한 것은 아니지만, 드라마 속 복고풍 웨딩 장면이 화제가 되면서 진짜 아날로그 감성을 간직한 신신예식장까지 덩달아 주목받은 것이다.
여기에 "개그맨 홍윤화 씨가 이곳에서 리마인드 웨딩 촬영을 한 것 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입소문이 난 것 같다"고 백 대표는 덧붙였다.
이곳에는 하루 5∼6팀, 한 달 평균 100∼150여팀이 찾는다.
방문객의 70%는 결혼사진만 촬영하고, 나머지 30%는 실제 예식까지 올린다.
주말 촬영은 4∼5개월 전에 예약이 꽉 찰 만큼 경쟁이 뜨겁다.
운이 좋아야 취소된 빈자리를 간신히 잡을 수 있을 정도다.
서울, 부산, 대전 등 전국 각지는 물론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찾아온 부부도 있었다.
낡은 예식장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위적으로 꾸며낼 수 없는 진짜 '아날로그 레트로' 감성 때문이다.
이날 전남 나주에서 예식장을 찾은 예비부부 이동현(33)·박혜숙(31) 씨는 "SNS를 보다가 부모님 세대처럼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아 지난해 12월에 예약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각보다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 대표님이 편안하게 촬영을 진행해 주셔서 기대 이상으로 만족한다"고 활짝 웃었다.
같은 날 촬영을 앞둔 다른 30대 예비부부는 "과거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에 나온 것을 보고 결혼사진 촬영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블로그에서도 다녀간 이들의 생생한 호평이 줄을 잇고 있다.
'과도한 연출 없이 진짜 레트로 감성을 담아낼 수 있어 일반 스튜디오 촬영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라거나 '꼼꼼하고 친절한 사장님 덕분에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는 반응이었다.
고물가 시대에 빛을 발하는 '착한 가성비'도 인기 요인이다.
이곳의 웨딩 공간 대여와 드레스, 턱시도는 모두 무료다.
사진 촬영 비용 역시 액자와 포장, 택배비를 모두 합쳐 23만원이 전부다.
공간만 대여해 개인적으로 촬영할 경우 13만원만 받는다.
1층 미용실에서 메이크업을 받던 경북 출신의 예비부부 문용주(31)·장혜지(29) 씨는 "요즘 결혼사진 비용이 너무 비싸 부담스러웠는데, 이곳은 경제적이면서도 깔끔하고 재미있는 추억이 될 것 같아 선택했다"고 귀띔했다.
외부 사진작가들이 "사진값을 2배로 받아도 되겠다"고 조언할 정도지만, 백 대표는 그럴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백 대표는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운 분이 오시면 제 사비를 보태서라도 무료로 촬영해 드리고 있다"며 "아버지께서 평생 어려운 분들을 위해 봉사하신 신신예식장의 정신을 생각하면 가격을 올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밀려드는 업무에 최근 지인과 친척 등 프리랜서 직원 3명을 더 두었지만, 비용 인상 없이 아버지가 물려준 나눔의 철학을 묵묵히 지킨다.
백 대표는 "아버지께서 남기신 '봉사'라는 유산과 레트로 문화 공간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잘 융화됐으면 좋겠다"면서도 굳은 다짐을 덧붙였다.
그는 "신신예식장의 본모습은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식을 올리기 힘든 부부를 위한 무료 예식장이며,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라며 "예식장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결혼식과 사진 모두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백 대표는 인터뷰를 마치며 예식장 벽면에 걸린 '고객 존중, 고객 만족, 고객 감동'이라고 적힌 사훈을 취재진에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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