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 다를 뿐, 괜찮아'… 여아도 남아만큼 자폐 가능성 있지만 진단은 더 늦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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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다를 뿐, 괜찮아'… 여아도 남아만큼 자폐 가능성 있지만 진단은 더 늦어

BBC News 코리아 2026-03-14 10:09:5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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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과 한 소녀가 서로 나란히 앉아 한 손씩 들고 있다. 소녀는 보라색과 흰색 줄무늬 상의를 입고 있고, 소년은 주황색 옷을 입고 있다. 앞쪽에는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함께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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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장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폐는 여아와 남아에게 비슷한 비율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자폐가 남성이나 남아에게 더 흔하다는 기존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 결과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10세 미만 아동의 경우 여아 1명당 최대 4명의 남아가 자폐 진단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진단율의 성별 격차는 줄어들었다. 대상의 연령이 20세에 가까워지자, 그 비율은 거의 대등해졌다. 이는 여아가 남아에 비해 자폐 진단을 받는 시기가 훨씬 늦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연구는 1985년부터 2020년 사이 스웨덴에서 태어난 약 27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이들 중 2.8%가 2세에서 37세 사이에 자폐 진단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의학 저널(BMJ)에 게재된 이 연구의 수석 연구자인 캐롤라인 파이프 박사는 "여아의 경우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자폐 진단 사례가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특히 15~19세 사이 여성 청소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이 시기의 진단 증가로 인해 결국 남녀 간 진단 성비 격차가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파이프 박사는 "20세가 되었을 때 진단받은 남녀의 수는 사실상 1대 1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며 "따라서 성인기에 가까워질수록 성별에 따른 진단 비율 차이는 사실상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소년과 소녀가 책상에 나란히 앉아 색색의 펜으로 종이에 글을 쓰고 있다.
Getty Images
전문가들은 여아의 경우 자폐 증상이 남아보다 눈에 덜 띄는 경우가 많아 발견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약 127명 중 1명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자폐 유병률은 국가별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저소득·중간소득 국가에서는 관련 데이터가 부족한 실정이다.

영국 국립 자폐증 협회에 따르면 자폐의 핵심 진단 기준에는 의사소통과 사회적 상호작용에서의 차이, 그리고 반복적인 행동과 제한된 관심사 등이 포함된다.

파이프 박사는 여아의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가 다양하지만, 이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진단 기준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남아들이 상대적으로 더 뚜렷한 집착적 관심사와 반복적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아들도 특정 관심사에 집착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보다 일반적인 범주에 속하는 경우가 많아, 반드시 자폐 징후로 인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여아들은 사회적 의사소통에 보다 능숙한 경향이 있는데, 의사소통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이를 잘 가리고 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사회적 관계가 훨씬 더 복잡해지기 때문에 기존의 방식으로 이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여성 청소년들은 불안이나 우울증과 같은 동반 질환을 경험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자폐 여부가 확인되기도 하죠."

교실에서 아이들이 공책에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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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은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영국 국립자폐협회의 증거 및 연구 부문 책임자인 주디스 브라운 박사도 이러한 견해에 공감한다.

브라운 박사는 BBC 라디오4 프로그램 '우먼스 아워(Woman's Hour)'에 출연해 "일반적으로 자폐를 가진 여아들은 사회적 의사소통 및 상호작용의 차이가 보다 미묘한 경향이 있다"며 "게다가 남들과 똑같아 보이고 싶어 하는 욕구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차이를 숨기면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자폐의 징후를 포착하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부모와 교사들이 흔히 자폐가 여아보다 남아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고 가정하는 경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브라운 박사는 "사람들은 종종 고정관념에 근거해 판단한다"며 "예를 들어 자폐아라면 반드시 남성이어야 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추가적인 학습 장애나 특정 대상에 대한 강한 집착, 그리고 눈에 띄는 의사소통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전제 때문에 여아가 자폐일 리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아이들이 진단 기회를 놓치게 되거나, 단순히 수줍음이 많거나 사회성이 조금 부족하거나 다소 특이한 아이 정도로 생각되는 것이죠."

'난 그냥 좀 다를 뿐, 괜찮아'

벳시는 18세 대학생이자 자선단체 '앰비셔스 어바웃 오티즘(Ambitious about Autism)'의 청소년 자문위원이다.

그는 중등학교 1학년 무렵, 새로운 학교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폐 진단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 "자폐 번아웃(autistic burnout)"이라고 부르는 상태를 경험했다.

그는 우먼스 아워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항상 극심한 피로를 느꼈고, 학교에 가서 하루를 보내는 것조차 매우 힘들었습니다. 또 소음 같은 주변 환경이나 감각적 자극을 견디는 능력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벳시는 이전에도 자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여아에게 나타나는 자폐 특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지 못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상태가 더 악화되기 전까지 검사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브라운 박사는 벳시의 사례가 자폐 진단 과정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자폐를 가진 여아들은 스스로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여자아이는 내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적힌 설명서를 가지고 있고 그에 따라 사는 것 같은데, 나만 그 설명서를 받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매우 흔한 일로 보인다"고 말했다.

브라운 박사에 따르면 강한 관심이나 집착도 남아와 여아에게서 다르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남아의 경우 그러한 관심이 흔히 집착으로 인식된다. 반면 여아의 관심사는 휴식이나 안정의 수단으로도 활용되는 독서, 동물, 뜨개질 등 비자폐 여아들과 유사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폐적 특성이 드러나는 지점은 바로 그 관심의 강도다.

벳시는 자폐 진단을 받은 것이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저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그저 조금 다를 뿐이고, 그것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활발한 연구 분야

한 10대 소녀가 책상에 앉아 종이에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연한 초록색 가디건을 입고 나무 책상에 기대어 있다. 뒤쪽에는 교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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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는 여아에게서 자폐가 나타나는 양상에 대해 더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파이프 박사는 자폐 진단 자체가 여전히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라면서도 여아의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폐가 여아에게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고려할 때,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현재의 자폐 진단 기준이 여아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또는 여아에게 맞게 일부 조정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파이프 박사는 "자폐가 남아에게 더 흔할 것이라고 항상 가정해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가 남아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진단 기준 자체도 남아에게서 관찰된 특징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따라서 앞으로 필요한 연구 가운데 하나는 특히 어린 여아의 자폐 특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여아에게서 나타나는 행동 유형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특징이 더 어린 나이에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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