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생존권 위협 호소와 건보 재정 절감 시급성 충돌
1+3 규제 정합성 고려해 계단식 인하 13번째 품목부터 적용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이 약값 부담으로 인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건강보험 약품비는 지난 4년 만에 28조원으로 급증하며 재정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오는 7월 이후 하반기 시행 목표로 내놓은 약가 제도 전면 개편안을 놓고 지난 11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소위원회에서는 각계각층의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이날 회의에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를 비롯해 경총, 환자단체, 대한의사협회,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약사회, 제약바이오협회, 건보공단, 심평원 등 사실상 의료와 산업계를 대표하는 모든 단체가 참석해 각자의 입장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참석자들은 현재 우리나라 제약산업이 외국에 비해 2배 이상 비싼 복제약 매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문제점에는 한목소리로 공감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약값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사후관리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복제약 가격이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으며 이는 고스란히 국민의 약제비 부담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고질적인 구조를 어떻게 뜯어고칠지를 놓고는 위원들 사이에서 뾰족한 해법 없이 팽팽한 의견 대립이 이어졌다.
제약업계는 정부의 강도 높은 약가 인하가 시장에 미칠 충격을 가장 우려했다.
산업계 위원들은 이미 기업들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체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갑작스러운 약값 인하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결국 영업 인력 감축이나 고용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드러냈다.
이에 업계는 정부가 제시한 방식 대신 5년 단위로 5%씩 점진적으로 약값을 줄여나가는 등 보다 완만한 방식의 조정을 건의했다.
반면 노동계와 공익 위원들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 위원들은 정부의 개편안에 제약사를 위한 추가 지원 방안이 다수 포함돼 있어 오히려 재정 절감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약값을 인하해서 얻은 이익이 기업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료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우선으로 쓰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산업 육성을 위한 자금은 건강보험 재정이 아닌 별도의 정부 정책 자금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논의 과정에서는 복제약의 난립을 막기 위한 계단식 약가 인하 기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질의가 오갔다.
정부는 애초 검토했던 11번째가 아닌 13번째 등록 품목부터 약값을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이는 기존의 규제 시스템과 발을 맞추기 위한 조치다.
복지부는 최초로 약을 신청한 기업과 이후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생동성 시험) 자료를 공유하는 이른바 1+3 제도를 고려해 13번째로 기준을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제도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현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산업계의 우려를 딛고 연착륙을 돕기 위한 보완책도 함께 내놨다.
연구개발 노력이 뛰어난 혁신형 제약기업에 대해서는 약가 인하를 최장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특례를 부여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20%의 약값을 내려야 한다면 첫해에는 1.7%만 인하하고 이후 기간을 길게 늘려 잡아 기업이 갑작스러운 매출 감소에 대비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연간 약 1조원 내외의 재정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서는 위원들 간의 이견이 적었다.
희귀질환이나 중증 질환 치료제의 경우 건강보험 등재에 걸리는 기간을 현재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대폭 줄이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다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신속하게 보험을 적용해 주는 대신 나중에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꼼꼼하게 다시 평가하는 사후 관리 시스템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이번 소위원회 논의 결과는 위원들의 다양한 제언을 반영해 오는 26일 예정된 건정심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정부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제약업계 선진화를 위한 논의를 이어가는 한편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세부 이행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건강보험 재정의 위기 속에서 단행되는 이번 약가 개편이 제약 산업의 혁신과 국민의 의료비 부담 경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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