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이란 갈등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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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란 갈등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의 선언

BBC News 코리아 2026-03-13 18:36:16 신고

사담 후세인의 동상이 무너지는 사진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
BBC

2003년 4월 9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중심부에서는 지도자 사담 후세인의 동상이 끌어내려졌다. 동상 발치에 있던 금속 명판은 뜯겨 나갔고, 동상을 떠받치던 대리석 받침대는 쇠망치질 속에 일그러졌다.

처음에는 이라크 시민들이 동상에 올라가 목에 올가미를 걸고 끌어내리려 했으나, 쉽지 않았고, 결국 미군이 장갑차를 동원해 지원한 후에야 동상은 쓰러졌다.

이는 정권 교체를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이로부터 불과 20일 전, 미국과 연합군은 이라크를 향한 공세를 시작했고, 집중적인 포격과 함께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며 지도자를 노리는 이른바 참수 작전에 나섰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사람들이 사담 후세인 동상을 쓰러뜨리는 모습
Gamma - Rapho via Getty Images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 동상이 끌어내려지는 모습

동상이 철거된 지 3주 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해안에 정박한 자국 항공모함 갑판에 서서 이라크에서의 주요 전투 작전이 종료됐다고 연설했다. 그의 뒤에는 '임무 완수'라고 적힌 배너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현재 이란과의 갈등에 이 이라크 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통제 불능 상황으로 치달으며 이라크에 수많은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전쟁이 지나는 자리마다 죽음과 파괴가 뒤따랐다. 2003~2011년 기준 이라크에서 전쟁과 관련된 원인으로 숨진 사람은 46만1000명에 달하며, 전쟁 비용은 3조달러(약 44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 전쟁은 중동을 재편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주도한 국가의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현재 미국은 이 지역에서 많은 이들이 또 하나의 '선택적 전쟁'으로 보는 군사 행동에 나섰다. 이번에는 이라크의 이웃 국가인 이란이 그 대상이다.

물론 이라크 전쟁과 이번 이란 전쟁 사이에는 분명히 유사한 점이 있으나, 동시에 중대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차이점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세계가 얼마나 변했으며, 이라크 전쟁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지 추측해 볼 수 있다.

동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여러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으며, 당시에는 공개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사안들도 있다. 그러나 그 핵심에는 분명 정권 교체에 대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의 측근 중 일부는 1991년 걸프전으로 후세인이 쿠웨이트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이라크에서 권력을 유지하는 상황을 두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남아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의 경우, 보다 사적인 감정이 있었을 수 있다. 걸프전을 이끈 인물이 그의 아버지인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었고, 후세인은 이후 아버지 부시에 대한 암살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다.

또 인권 유린을 근거로 정권 교체가 정당하다고 믿는 이들도 있었다. 1980년대 쿠르드족 민간인에게 화학무기까지 사용하는 등 후세인이 자국민들을 끔찍하게 탄압하고 있기에 그는 축출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진주만 공격 63주년을 맞아 해병대원들에게 연설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Getty Images
이라크 침공은 여러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는 1990년대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 영국이 지지했던 자유주의적 개입주의 흐름과도 맞아떨어진다. 당시 영국은 코소보에서의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발칸 지역에 개입한 바 있다.

이라크 국외 망명자들 역시 자신들이 혐오하던 정권을 없애고 조국이 새로운 미래를 맞이할 기회를 얻길 바랐다.

그리고 중동을 재편해 민주주의 정권을 세우는 한편 미국에 적대적인 독재 정권을 제거하려는 이른바 '신보수주의자'들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바그다드 그다음 테헤란'이라고 말했는데, 미국에 이란이 얼마나 오랫동안 주요 의제였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모든 것에 더해 2001년 9월 11일, 쌍둥이 빌딩, 펜타곤(국방부 청사), 펜실베이니아 들판에 비행기가 충돌했고, 이로 인해 2977명(테러범 19명은 제외한 수치)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미국 내에서는 미국의 억지력을 회복하고, 그 능력을 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경파들이 등장했다.

알카에다의 이 9·11 공격은 미국과 동맹국이 입을 수 있는 피해에 대한 기존 계산을 완전히 바꾸어놓았고, 당시 테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음에도 이라크가 곧바로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또한 이 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2001년 말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축출에 성공하면서, 워싱턴에서는 미국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한층 높아진 상태였다.

하지만 결국 전쟁의 명분은 다른 곳에 맞춰졌다. 바로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갖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라크가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및 미사일 능력을 개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기로 인한 위협을 강조하며 영국과 미국 대중들을 상대로 군사 행동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기는 쉬웠다. 국제적으로는 이라크가 무기 관련 UN 결의안을 준수하지 않은 점이 전쟁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돼 주었다.

하지만 당시 CIA에서 '이라크 작전 그룹'을 이끌었던 루이스 루에다가 나중에 내게 말했던 것처럼, 이러한 무기는 진짜 이유가 아니었다.

"후세인이 고무줄과 종이 클립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우리는 이라크를 침공했을 겁니다. '아, 저자가 저것으로 당신들의 눈을 찌르려고 합니다. 축출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면서요."

이란 공격의 동기

한편 오늘 이란 공격 역시 여러 가지 복잡한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이란의 군사적 능력을 약화하고, 대량살상무기 획득을 저지하며, 보다 말 잘드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정권을 교체하고, 정권에 반대하며 폭력에 시달리는 이들을 지지하는 등 다양한 동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전부 트럼프 현 행정부 관계자들이 거론한 이유들이다.

여러모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이스라엘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란과 그 대리 세력을 직접 겨냥하기 시작했고, 이는 미국의 전략적 계산이 바뀌는 전환점이기도 했다. 그 결과 미국 역시 행동에 나서는 길이 열렸다.

검은 연기가 치솟는 테헤란 시내
Getty Images
미국은 많은 이들이 또 하나의 '선택에 따른 전쟁'으로 바라보는 이번 이란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미국에서는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에 대한, 때로는 서로 상충되는 이 많은 동기를 공개적으로 조율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본인 또한 언제, 누구에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모습이었다.

또한 이라크 전쟁 때처럼 수개월에 걸쳐 미국 대중을 설득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UN을 통해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 역시 없었다. 2003년 당시에는 어떤 국가들이 전쟁을 지지할지를 두고 논의가 끊이지 않았었다.

이란의 위치
BBC

그리고 이번 분쟁의 결정권자들에게 UN과 국제법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세상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국제 질서는 거의 붕괴했으며, 변덕스러운 대통령은 난무하는 여러 동기를 조율하거나, 일관된 정당화 논리를 제시해야 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시대다.

영국 및 동맹국의 역할

2003년 당시 미국은 동맹국들, 특히 영국과 함께 전쟁을 벌였다.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는 전쟁 직전까지 부시 대통령 곁에 서 있었다. 2002년 여름에는 부시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최근 이란 사태와 관련해서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는데, 영국이 미국의 정책에 최대한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곁에 있으며 가깝게 지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이라크 침공 20주년을 맞아 진행된 인터뷰에서 "내가 총리였던 시절 클린턴 대통령이든 부시 대통령이든 미국 대통령이 가장 먼저 전화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했다. 바로 영국 총리였다"고 발언했다.

조지 부시와 토니 블레어
Reuters
조지 부시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총리

하지만 그와 일부 최측근들조차 이러한 블레어 총리의 헌신적 태도를 경계하고는 했다. 당시 그의 밑에서 외무장관을 역임했던 잭 스트로는 이후 내게 그 유명한 "무슨 일이 있어도" 편지는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당시 블레어 총리가 그 대가로 얼마나 많은 것을 챙겼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미국을 설득해 UN 승인을 받자고 설득했지만, 워싱턴의 태도는 미온적이었고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철수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블레어 총리는 자신은 이 전쟁이 옳다고 믿는다며 거절했다. 2003년 당시 그는 내게 "나는 총리로서 이런 판단을 내려야 했다. 그들은 내가 처한 정치적 어려움을 안타깝게 여겨 빠져나갈 길을 제시했으나 ... (만약 철수를 결정했다면) 이는 양국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블레어 총리가 치러야 할 정치적 대가는 컸다. 특히 그가 전쟁의 명분을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을 때의 파장은 컸다. 이는 블레어 총리 개인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정부의 발언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도 크게 뒤흔들었다.

스트로우 전 외무장관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는 공직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약화시켰다"면서 "나는 진심으로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부시 대통령의 경우에도 이라크 사태는 임기 말년 내내 따라다녔으며, 그의 업적에 오점을 남겼으며, 미국 정치 지형도 바꿔놓았다.

후임인 오바마 대통령은 다시는 이렇게 개입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밝히며 취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트럼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편 미국은 이번에는 영국이나 다른 동맹국이 아닌 이스라엘과 협력해 이란을 공격하고 있다. 키어 스타머 현 영국 총리는 워싱턴과 거리를 유지하기로 한 모양새다. 이후 "방어" 목적의 사용을 허가하기는 했으나, 공세 초반에는 미군의 영국 기지 사용도 거부할 정도였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AFP via Getty Images
키어 스타머 현 총리는 미국과 거리를 유지하기로 결심한 모양새다

이는 집권 노동당이 이라크 전쟁에 대한 아픈 기억을 여전히 안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영국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계산의 결과이기도 하다.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영국과 미국이 얼마나 멀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안보 및 첩보 관계를 담당하는 당국자들은 양국 관계가 여전히 긴밀하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이 안보 태세를 점점 달리하며 영국이 오랫동안 공들여 온 기존 국제 질서를 적극적으로 훼손함에 따라, 이러한 양국의 긴밀함은 사실 일정 부분 관성에 기반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해럴드 윌슨 총리가 베트남 전쟁에 관여하기 꺼리는 등 과거에도 영국 총리들이 때때로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거리를 둔 사례는 있으나,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다음은 무엇인가?

이라크 전쟁이 남긴 흔적은, 미국 지도부가 지금의 상황은 당시와는 다르다는 점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이란과 이란 사태는 경우가 다르고, 이번 전쟁은 "끝없는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두 전쟁의 차이점 중 하나는, 미국이 정권 교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를 위해 지상군을 투입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2003년 당시에는 미군 약 15만 명이 투입됐고, 이는 사담 후세인 정권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무너뜨렸다.(후세인은 초기 참수 작전에서는 간신히 살아남았으나, 이후 체포됐다)

경례하는 JD 밴스 부통령,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 댄 케인 합참의장
Reuters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가운데)은 이란과의 현 전쟁이 "영원한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처럼 이라크 전쟁과는 달리 대규모 병력 투입은 피하려는 미국 측의 분명한 의지는 선택지를 좁힐 수밖에 없다. 반정부 세력 등과 연합해 지상에서 작전을 벌이지 않고 공중 폭격만으로 정권을 교체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쿠르드족을 무장시켜 이란 정부군과 싸우게 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쿠르드족은 2003년 전쟁에도 참여했으나, 미국과 동맹국 측 지상군 병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2003년 전쟁의 경우 초기 승리를 거둔 이후, 반란과 내전이 발발하면서 점령 기간은 점점 더 늘어졌다. 미국은 다시는 그러한 상황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란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거나 정권은 유지한 채 지도자만 교체(최근 베네수엘라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정권을 교체하는 등 보다 광범위한 목표를 꿈꾼다면, 더 깊은 개입 없이는 달성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편 당시와 지금의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계획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실제 목표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진다.

2003년 이라크의 경우, 미래에 대한 서로 다른 비전은 결국 정리되지 못한 채 남았다. 군사 작전이 완료된 이후에 대해서는 사실상 분명한 계획이 없었다.

이라크 전쟁 20년 후,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내게 "이라크인들을 위한 새로운 정부를 세우려고 했던 것이 바로 문제였다"고 털어놓았다.

"우리는 이라크인들에게 '축하합니다. 당신들만의 정부를 구성하십시오. 여기 '연방주의자 논집' 한 권을 드리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라고 말하고 (떠나야) 했습니다."

이는 당시 중동 전역에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이라크에 먼저 민주주의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의 의견과 상반된다.

현재 이라크의 상황은 전쟁 직후보다 훨씬 나아졌고, 후세인의 몰락을 반기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전쟁 이후 중동 전역에 민주주의가 확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라크 침공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는 이란이었다. 주요 경쟁국이 사라지면서 이라크를 넘어 중동 내 여러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영국 및 서방 세계 전반에 대한 테러 위협을 증가시켰을 것이다.

전쟁은 언제나 사람들이 기대하거나 원하는 결과만을 남기지 않는다.

일관된 계획의 부재

이라크와 이란이 매우 다른 나라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역사가 남긴 교훈은 있을까.

현재까지는 미국이 이란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어떠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일관된 계획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이러한 즉흥성이 오히려 하나의 의도된 전략인 듯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에 따라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골라 승리를 선언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즉, '임무 완수'를 선언할 순간을 스스로 정하는 셈이다.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미사일 및 해군력 약화만으로도 충분하며, 정권 교체는 이란 국민의 몫이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도 한때 이란의 정권 교체를 원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게 되면 현 이란 정권은 타격은 입었으나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될 것이지만, 분노에 이를 갈 것이다. 이는 후세인이 쿠웨이트에서는 쫓겨났으나, 이라크에서는 권력을 유지했던 1991년 걸프전과 유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걸프전 이후에도 수년간 긴장 상태가 이어지며 간헐적인 폭격이 벌어지고,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대한 우려가 사그라들지 않았으며, 결국 2003년 또 다른 전쟁이 벌어졌다.

이라크 사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전쟁으로 국가를 파괴하는 일은 쉬울지 몰라도 전쟁 후 국가를 재건하는 일은 어렵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란 국가의 일부는 분명 흔들리고 있다.

또한 이번 전쟁은 영국을 비롯한 미국의 동맹국들, 특히 이란의 공격을 받고 있는 걸프 국가들에게 자신들의 안보가 얼마나 안전한지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Reuters
전쟁을 시작한 이들이 겪게 될 국내 정치적 파장은 예측하기 힘들 수 있다

경제적 여파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확산하면서 특히 트럼프 대통령처럼 전쟁을 시작한 지도자들이 겪게 될 국내 정치적 파장은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 가지 교훈은, 군사 개입에 나설 때는 겸손함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며, 그 결과와 파장은 수십 년간 이어질 수 있다.

최상단 이미지 출처: Anadolu Agency / Gamma- Rapho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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