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테러의 범위를 정치 영역까지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테러방지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정치적 표현 제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도 국민 기본권 침해 가능성을 우려하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집회 금지 장소에 대통령 집무실을 포함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개정안이 시행된 바 있어 정치적 표현과 집회 자유를 둘러싼 규제 확대 논쟁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1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테러방지법)이 정보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해당 개정안은 테러의 정의에 대한 목적 요건에 ‘정당의 민주적 조직과 활동을 방해할 목적’을 추가한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 이건태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제안 이유로 이 의원 등은 “최근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당 또는 정치인을 상대로 하는 협박이 늘어나고 있고 신체를 상해해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가 발생하고 있으나 주관적인 목적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정당 또는 정치인을 향한 협박 또는 행위가 테러방지법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테러의 정의에 대한 주관적 목적 요건에 ‘정당의 민주적인 조직과 활동을 방해할 목적’을 추가해 정치적 목적에 의한 행위를 테러로 포함하겠다는 방침이다.
이후 인권위는 전날 서울 중구 인권위 회의실에서 제7차 상임위원회를 열고 테러방지법 등을 심의한 뒤 국회에 의견을 전달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개정안에 대해 인권위 인권정책과는 정당 정책에 대한 강한 비판이나 항의 시위 등 표현 행위까지 테러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 경우 국민은 자신의 정치적 비판이나 집회·시위가 테러로 평가될 위험을 우려해 정치적 표현이나 집회 활동을 스스로 위축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테러방지법상 ‘테러 위험인물’로 지정될 시 금융거래나 통신 이용 등 개인 정보가 국가기관에 의해 광범위하게 수집·분석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인권위는 “개정안에서 사용된 ‘정당의 민주적인 조직과 활동을 방해할 목적’ 중 ‘민주적인’, ‘방해할 목적’은 그 자체로 상당히 추상적인 평가 개념에 해당한다”며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해석상 불확실성을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추상적·평가적 개념의 결합은 수사·정보기관이 정치적 상황이나 정권 성향에 따라 ‘정당의 민주적 활동 방해’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여지를 남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도 봤다. 인권위는 “입법목적과 테러방지법 개정이라는 수단 간의 관련성은 인정할 수 있으나 선거·경선 과정에서의 폭행·협박·자유방해죄 등은 정치활동과 관련된 폭력·위협 행위를 이미 가중처벌하고 있는 등 덜 침익적인 수단이 존재한다”며 “또한 개정안이 추가로 확보하고자 하는 공익과 그로 인해 확대되는 정보기관의 감시·통제권한, 그리고 표현·집회·결사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대한 잠재적·구조적 제한을 비교 형량할 때 후자의 기본권 침해가 입법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한도를 넘어 과도하다고 평가될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상임위원들도 의견 표명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국회의장에게 헌법 제21조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및 집회·결사의 자유, 헌법 제17조가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할 예정이다.
다만 법률상 테러 행위의 범위가 이미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어 실제로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본보에 “테러방지법상 ‘목적’에 정당활동 방해 목적이 포함되더라도 ‘테러’ 행위의 유형이 법률에 상세히 규정돼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기는 다소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공관 100m 이내에서 옥외 집회·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집시법 개정안 시행과 맞물리면서 정치적 표현과 집회 자유를 둘러싼 규제 강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개정안에는 대통령 관저 등 주요 공관 인근 집회를 허용하면서도 ‘일정 요건을 충족할 때’라는 전제 조건이 포함됐다. 그러나 규정 자체가 모호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시행 전부터 여러 인권단체 등은 청와대 앞 집회·시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해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반대한 바 있다. 또 이번 집시법 개정안이 대통령 관저 100m 이내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2022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기존 판단에 배치된다고 반발했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윤석열 정권의 대통령실 앞 집회 제한을 비판해 왔던 것을 짚으며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혐오·차별적 정당 현수막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지난해 11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의결됐다. 더불어민주당이 2022년 야당인 시절 대폭 완화한 정당 현수막 규제를 다시 뒤집은 것이다.
최근 입법 흐름을 보면 공공안전과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정치적 표현과 집회 활동의 범위를 좁히는 방향의 규제가 잇따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정치적 의사 표현과 집회·시위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제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야당 시절 집회·시위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강조해 온 더불어민주당이 집권 이후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을 추진하면서 과거 입장과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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