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겨울의 자취가 옅어지고 봄기운이 스며드는 3월, 거리의 옷차림도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옷을 찾거나 오래된 물건 속에서 뜻밖의 취향과 추억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서울풍물시장은 한국 최대 골동품 성지로 불린다. 화려한 수식어 이면에는 서민들의 팍팍한 삶과 두 번의 강제 이주라는 굴곡진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청계천 황학동 일대에 고물상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황학동 벼룩시장이 그 모태다.
낡은 물건이 새것처럼 둔갑하고 비가 오면 사라진다 하여 ‘도깨비시장’, 개미처럼 열심히 일한다고 하여 ‘개미시장’ 등으로 불리며 서민들의 애환을 달랬다.
그러나 지난 2003년 청계천 복원 사업과 지난 2008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 계획 등에 따라 강제 이주를 거쳐 현재의 ‘서울풍물시장’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골동품과 생활잡화, 구제 의류부터 LP, 비디오, 가방, 악기까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전통시장인 셈이다.
지난 11일 <뉴스락>뉴스락>은 이러한 풍물시장만의 개성을 느끼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서울풍물시장은 10번 출구 신설동역에서 도보 5분 떨어진 곳에 자리한 시장은 길목마다 안내판이 설치돼 있어 초행길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2층 규모의 실내 시장으로 조성돼 날씨의 영향을 적게 받는 점도 눈에 띄었다.
1층은 주황동(구제의류), 노랑동(생활잡화), 초록동(골동품), 빨강동(식당가)으로 나뉘며, 2층은 파랑동(구제의류), 보라동(취미생활), 빨강동(식당가), 남색동(생활잡화)으로 구성돼 있다.
운영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며 매주 화요일은 정기 휴무다.
이날 오후 3시 무렵 방문한 시장은 전반적으로 한산했다. 오가는 손님 수가 많지 않은 가운데 중장년층과 노년층 방문객이 주를 이뤘다. 손님이 뜸한 틈을 타 상인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풍경도 흔하게 포착됐다.
그럼에도 시장 특유의 활기는 남아있다. 최근 경기 침체로 문을 닫는 전통시장이 적지 않은 상황과 달리, 시장 내부는 개인 사정으로 휴업한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점포가 정상 영업 중이었다.
눈에 띄는 점은 호객 행위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시장을 걷는 내내 한번 보고 가라거나 구매를 강하게 권하는 상인을 보기 어려웠다.
덕분에 방문객들은 구제 의류, 빈티지 가방, LP판, 생활용품 등을 각자의 속도에 맞춰 차분히 둘러볼 수 있었다. 전통시장 특유의 부담보다는 구경하는 재미가 앞서는 공간이었다.
상인들이 물건에 얽힌 사연을 나누고 흥정하는 모습은 과거 벼룩시장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발길을 멈춘 곳은 1층에 있는 미군 전투식량과 구제 군복을 취급하는 상가였다. 매대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전투식량과 미국산 식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유통기한에 관해 묻자 상인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식량이라 큰 문제는 없다"며 "기한이 지난 물건은 손님에게 미리 설명하고 판매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실제 진열대 한편에는 기한이 지난 케첩도 놓여 있었다.
상인은 "요즘은 전투식량이나 미국 옛 식품을 먹기 위해서라기보다 소장용, 애장품처럼 찾는 사람도 많다"며 “빈티지 군복 역시 직접 매입하거나 손님을 통해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누군가에게는 낡은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간의 가치가 담긴 수집품으로 재탄생하는 셈이다.
2층으로 올라서자 복도 가득 은은한 한방차 향이 퍼졌다. 그 중심에는 4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한방꿀차 점포가 있었다.
상인은 시장 사정이 녹록치 안다면서도, 물건을 사지 않고 그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들르는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시장 곳곳에서는 상인과 단골손님이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정겨운 모습이 이어졌다.
특히 이 꿀차 상인은 기자에게도 뜻밖의 말을 건넸다. 최근의 고민을 털어놓자 상인은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늘 스스로가 최고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내가 풍물시장에 있는 이 자리는 어느 나라 대통령 자리보다 위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다. 요즘 청년들도 이런 자세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낯선 이에게도 삶의 태도를 나누는 상인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시장의 온기를 더하고 있었다.
다만 서울풍물시장 역시 장기화된 불황의 파고를 피하지는 못했다.
의류 판매 상인들은 "요즘 장사가 잘 안된다", "봄옷을 더 들여놔야 할지, 벌써 여름옷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격을 낮춰도 예전만큼 잘 팔리지 않는다"고 입을 모아 토로했다.
젊은 세대나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나, 실질적인 구매보다는 단순 구경에 그치는 비중이 더 높다고 했다.
결국 현재 시장을 지탱하는 핵심 동력은 신규 고객보다는 오랜 단골손님들이라는 것이 상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러한 서민들의 팍팍한 삶 속에서도 시장은 현재의 이용방식에 맞춰 정비되고 있다.
휠체어 경사로, 쾌적한 화장실, 상인 쉼터 등 현대식 실내 건축물로서의 편의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서울풍물시장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지점이 다소 눈에 띄었다.
전통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이 대표적인 불편 요소로 꼽는 결제 방식 문제가 대표적이다.
서울풍물시장 공식 홈페이지에는 신용카드 사용 여부가 ‘개별 점포마다 다름’으로 명시돼 있고, 일부 상가는 카드 결제보다 현금이나 계좌이체를 선호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카드 결제가 가능함에도 수수료 부담 등을 이유로 현금 또는 계좌이체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방문객 입장에서 결제 편의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향후 결제 방식에 대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차량 이용객의 불편도 남아 있다. 시장 공식 홈페이지 내 별도 공영주차장과 인근 주차장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나, 시장 내부에 바로 주차하는 구조가 아니어서 방문객 입장에서는 동선상 번거로움이 따른다.
특히 서울풍물시장의 주요 고객층이 중장년층과 노년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주차 불편은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또한 구제 의류와 빈티지 상품을 주로 취급하는 시장 구조 역시 소비자에게는 부담 요소가 될 수 있다. 구제 상품 특성상 구매 전 세심한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재 당일 한 상가 앞에서는 상품 하자를 두고 환불을 요구하는 손님과 상인 사이 언쟁이 벌어졌다. 상인은 구매 당시 하자를 고지했다고 주장했지만 손님은 충분한 설명 없이 판매가 이뤄졌다고 이에 맞섰다.
오래된 물건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상품 상태에 대한 보다 명확하고 체계적인 안내 체계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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