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언론은 성주 사드 발사차량이 오산으로 갔는지, 요격미사일만 빠졌는지, 발사대가 다시 성주로 돌아왔는지를 두고 부산하다. 어떤 보도에 따르면 성주에서 오산으로 이동한 발사차량들은 미사일을 내려놓은 뒤 복귀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이 반대 의견을 전달했지만 끝내 관철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미군은 작전보안을 이유로 확인을 거부했고 우리 국방부는 꿀 먹은 벙어리다.
미국이 한국에 배치한 사드 체계 일부를 중동으로 돌렸고, 한국 정부는 이를 막지 못했으며 국민에게 분명한 설명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발사차량의 동선이나 반출 목록이 아니다. 우리 땅에 있는 미국 무기체계의 운용을 우리 정부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현실이다.
안보 공백이 아니라 사드 신화의 붕괴
더 황당한 것은 일부 언론이 이를 곧바로 "대북 미사일방어 공백"으로 몰아가는 프레임이다. 전제부터 틀렸다. 사드는 처음부터 한반도의 특정 지역을 영구히 지키는 '한국 전용 방패'가 아니라 미국의 전구 운용 필요에 따라 이동하고 재배치되는 자산이다.
정말 한국 방어의 핵심 방패였다면 왜 미국은 필요할 때 그것을 중동으로 돌려쓸 수 있는가. 그렇게 쉽게 빼갈 수 있다면, 애초 한국 국민의 생명과 영토를 위한 전용 방패라기보다 미국의 지역·세계 미사일방어 구상 속 전략자산이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이번에 무너진 것은 대북 미사일 방어망이 아니라 사드 배치 명분을 떠받쳐 온 신화다.
성주 사드가 빠졌다고 곧바로 한국 안보에 치명적 구멍이 생긴다는 주장은 허상이다. 한반도처럼 종심이 짧은 공간에서 사드가 과연 대북 미사일방어의 실효적 수단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의문이 있었다.(김동엽, "사드 한반도 배치의 군사적 효용성과 한반도 미래," <국제정치논총> 제57권 2호, 2017)
그런데도 사드는 한국 전체를 지켜주는 절대적 방패처럼 포장됐다. 이번 반출이 보여준 것은 방어망의 붕괴가 아니다. 사드 배치 명분의 붕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드가 빠져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가 아니라 "애초 사드는 그 구멍을 메우는 체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사건이다.
전략적 유연성의 비용은 누가 치르나
사드 배치 당시를 떠올리면 모순은 더 선명해진다. 정부와 군은 북핵과 북한 미사일 위협 대응을 내세웠다. 중국이 강하게 반발한 이유는 사드가 미국의 더 넓은 미사일방어망과 연결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중관계는 얼어붙었고, 중국의 경제보복이 현실화됐다. 롯데 점포들이 대거 문을 닫았고, 한국 사회는 외교적 비용과 경제적 비용, 지역 주민의 희생과 사회적 분열까지 떠안아야 했다. 정작 지금 미국은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 자산을 다른 전장으로 돌려쓰고 있다. 단순한 전력 이동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사드가 누구를 위한 체계였는지 다시 묻게 만드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말도 다시 물어야 한다. 한미가 대등하게 조율하는 공동 원칙인지, 아니면 필요할 때 한국 배치 자산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전용할 수 있다는 뜻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동맹은 무상재가 아니다. 억제력을 얻는 대신 일정한 자율성을 내준다. 안보를 위탁하는 대신 연루의 위험을 떠안는다.
문제는 동맹 자체가 아니라 교환비다. 지금 한국이 감수하는 비용과 위험에 비해, 한국이 얻는 편익이 정직하게 설명되고 있는가. 이번 성주 사드 반출은 바로 그 질문을 던진다. 자율성과 동맹은 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동맹을 어떤 비용으로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다. 누가 그 비용을 결정하고 누가 감당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빠지기 쉬운 함정도 있다. 주한미군 자산 운용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말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럼에도 미국이 자기 군사자산에 대한 한국의 실질 통제를 순순히 수용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다. 바로 그 냉혹한 현실이 이번 사태의 핵심이다. 한국은 동맹 안에서 얼마나 작은 지렛대를 갖고 있는가. 어쩌면 지렛대조차 갖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가.
그렇다고 침묵이 답일 수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국 자산에 대한 환상적 통제권 주장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일방적 자산 전용을 아무 설명도 없이 기정사실로 수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국민적 요구와 공적 압력이다. 이것은 특정 진영의 구호가 아니다. 우리 영토에 배치된 군사자산의 이동이 한국의 안보, 외교, 경제, 국민 안전에 영향을 미친다면, 설명을 요구하고 비용을 따지고 책임을 묻는 일은 우리 사회의 당연한 권리이자 최소한의 상식이다.
한국은 동맹의 주체인가, 미국 전쟁의 후방기지인가
더 우려스러운 것은 중동전 간접 연루의 위험이다. 호르무즈 해협과 주변 해역의 긴장은 한국과 무관한 일이 아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 해협을 둘러싸고 선박들이 발이 묶이고, 전쟁위험 보험이 취소되거나 급등하고, 영국과 미국은 상업항로 안전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 내 미군기지와 배치 자산이 미국의 중동전 수행을 위한 후방거점이나 중간경유지로 기능한다면, 한국은 원치 않아도 분쟁의 간접 당사자로 인식될 수 있다. 우리가 직접 참전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제정치에서 위험은 우리의 의도보다 상대의 인식에서 먼저 발생한다. 한국이 미국의 전쟁을 떠받치는 공간으로 읽히는 순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한국 선박과 국민의 안전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성주 사드 반출 사태는 단순한 무기 이동 사건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너무 오래 회피해 온 질문을 다시 던지는 사건이다. 사드는 누구를 위한 체계였는가. 한국은 동맹의 주체인가. 아니면 미국 전쟁의 후방기지인가. 안보라는 말은 너무 자주 민주주의를 침묵시키는 면죄부로 쓰였다. 국민의 동의도 없고, 국회의 검증도 없고, 영토와 기지가 다른 전장의 필요에 따라 동원되는 구조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안보가 아니라 위험의 외주화다. 그 대가는 언제나 국민이 치른다.
이번에 빠져나간 것은 단지 사드 요격미사일 몇 발이 아니다. 한국 주권도 함께 빠져나갔다. 한국 기득권이 가진 안보 담론의 허구도 함께 드러났고, 동맹 현대화의 허상도 드러났다. 우리가 외면해 온 전략적 자율성의 부재도 드러났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허한 반미가 아니다. 맹목적인 동맹 신앙도 아니다. 지렛대의 부재를 직시하는 일이다. 그 비용을 더 이상 국민에게 침묵 속에 떠넘기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런 요구는 어느 한 진영의 목소리가 아니다. 주권국가라면 마땅히 제기해야 할 최소한의 질문이다. 한국 안보가 누구의 전략으로 운영되는지, 그 비용을 왜 국민이 치러야 하는지 묻는 일은 과도한 요구가 아니다. 너무도 당연한 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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