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디지털 기술과 환경을 연결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어왔습니다. 작가님의 작업에서 ‘자연’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제 작업은 우리가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는 데서 출발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자연이란 무엇인가?’예요. 언제부터 자연을 우리가 속한 세계와 분리된 ‘타자’처럼 인식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합성생물학부터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기술을 활용해 인간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지 들여다봅니다. 인간이 초래한 환경 위기로 생물 다양성이 위협받는 지금, 이미 존재하는 생명체들을 소중히 여기는 대신 왜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들여 생명을 재창조하려 하는지 묻고 싶어요. 저는 인간이 만들어낸 지식과 기술의 렌즈로 자연을 바라봅니다. 그 시선에는 결국 인간이 무엇을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한 관심은 어떤 작업 방식으로 구현되나요?
2024년 바르셀로나 ‘마니페스타’에서 선보인 ‘Every Thing Eats Light’는 문을 닫은 화석연료 발전소 안에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설치했습니다. 창에는 태양빛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세포인 엽록체의 진화를 기념하며, 녹색식물의 먼 조상과도 같은 해조류 화석의 형상을 담았죠.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해조류의 그림자가 공간을 채우면서 이 장소가 지닌 환경적 기억과 생태 위기 속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상기시킵니다. 또한 ‘Machine Auguries’ 시리즈에서는 특정 지역을 상징하는 새들의 울음소리를 학습한 인공지능을 통해 각 지역 고유의 ‘새벽 합창(dawn chorus)‘ 소리를 만들어냈어요. 새벽 합창이란 봄과 초여름, 새들이 짝을 찾고 자신의 영역을 알리기 위해 함께 내는 소리입니다. 물론 전시 공간에서 기계가 만든 합창은 실제 자연 소리의 경이로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인공적 소리가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하는지 돌아보게 하죠. 이 작품은 빛과 소음 공해 등 인간의 활동으로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는 조류의 현실을 드러냅니다.
마지막 북부흰코뿔소 ‘수단’의 죽음 이후 시작한 작품 ‘The Substitute’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8년 3월, 뉴스에서 수단의 죽음을 접했을 때 저는 코뿔소 중 한 아종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사진가 아미 비탈레가 포착한, 사육사 곁에 머무는 수단의 이미지는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갔죠. 그런데 이 비극을 다룬 기사들은 묘하게도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이야기로 끝내곤 했어요. 과학자들이 체외수정이나 줄기세포 기술을 통해 이 종을 되살리려 한다는 내용이었죠. 이는 한 아종을 사라지게 한 인간의 책임을 희석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설령 과학이 몇 개체를 되살린다 해도 그것이 북부흰코뿔소가 사라진 근본 원인인 밀렵과 서식지 파괴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 ‘The Substitute’는 코뿔소를 ‘호기심의 대상’으로 재현해온 역사에 기반합니다. 1515년 포르투갈로 데려온 인도코뿔소는 유럽에서 처음 목격된 코뿔소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다음 해에 리스본을 떠나 로마로 향하던 중 코뿔소는 결국 사고로 사망했어요. 당시 유럽인들에게 이 이야기는 큰 이슈가 되었고, 화가 뒤러는 기록과 설명만을 바탕으로 상상 속 코뿔소를 그린 판화를 남겼죠. 이 스토리에서 영감을 받은 제 영상 작품 속 코뿔소는 하얀 방에 고립된 채 생성과 소멸을 반복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실제 동물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죠. “우리는 동물 그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나요, 아니면 동물에 대한 ‘관념’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걸까요?”
작업 전반에서 지구환경과 생명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느껴집니다. 이런 시각을 갖게 된 개인적 배경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나요?
부모님 덕분에 어릴 때부터 자연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동시에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감상의 대상으로 여겨왔는지도 함께 배웠죠. 부모님은 남아프리카에서 차 농장을 운영하셨는데, 특히 아버지는 동아시아 산수와 정원 전문가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국 시골에서 자랐고, 시골 숲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기도 했죠. 이렇게 서로 다른 자연관을 접한 경험은 자연에 대한 존중을 키워주는 동시에 자연을 통제하고 이용하거나 인간의 즐거움과 필요에 맞게 재구성하려는 욕망에 대한 호기심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최근 선보인 ‘Pollinator Pathmaker’에서는 관점 자체를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으로 옮겼죠.
원래 곤충 개체 수 감소 위기를 다룬 조각 작품을 의뢰받았는데, 저는 오히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 종을 위한, 식물로 이뤄진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식재를 직접 설계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제 취향에 따라, ‘아름답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식물을 선택하고 배치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 계획을 대신 설계해주는, 이른바 ‘이타적’ 알고리즘을 개발했습니다. 대부분의 기술이 인간에게 이익이 되도록 설계되는 것과 달리 이 알고리즘은 오히려 인간의 선택권을 제한합니다. 시스템은 벌, 나방, 말벌, 개미, 딱정벌레, 새 등 식물 번식에 기여하는 수분 매개자(pollinator)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식물 구성을 결정하죠. 이 작품을 실제로 심는 순간, 인간은 소비자가 아닌 자연 세계를 보살피는 존재가 됩니다. 알고리즘은 원예 전문가들과 함께 큐레이션한 지역별 맞춤 식물 팔레트를 기반으로 작동하며, 현재 유럽 전역과 캘리포니아를 넘어 미국 북동부까지 확장 중입니다. 지금까지 영국 에덴 프로젝트,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등에 실제 에디션을 심었고, 일반 대중도 웹사이트(pollinator.art)에서 알고리즘을 활용해 자신만의 ‘DIY 에디션’을 만든 뒤 학교나 커뮤니티 공간에 직접 심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풍경이 연결되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후 긍정적 예술 작품으로 확장되어가는 과정은 제게 큰 감동을 줍니다.
웹사이트에서 정원을 만들거나 실제 정원에 식물을 심는 등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만든 웹사이트는 살아 있는 식물로 이루어진 작품을 설계하기 위한 도구지만, 그 자체로도 중요한 미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현실 정원에서는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구조와 관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죠. 사이트에 등장하는 식물은 모두 계절에 맞춰 직접 그린 그림으로 구성했고, 화면 속에서는 곤충들이 날아다니듯 이미지 사이를 오가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정원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 ‘수분 매개자의 시각’ 필터를 통해 곤충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볼 수도 있죠. 예를 들어 벌은 빨간색을 인식하지 못하는 대신 자외선을 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가 평소에 보는 정원이 사실은 인간의 눈이 진화해온 방식에 따른 결과임을 깨달으면 정원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보통 정원을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합니다. ‘Pollinator Pathmaker’는 오히려 곤충을 그 중심에 놓았죠. 관점을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으로 옮긴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정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자연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거나 쓸모에 맞게 바꿔왔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촘촘히 연결된 네트워크입니다. 내 정원의 생명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이웃의 정원도 함께 건강해야 하죠. 울타리나 벽으로 나뉘어 있어도 땅 위와 아래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오가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예술의 역할이나 가능성에 대해 새롭게 느낀 점이 있나요?
저는 예술가가 사회에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자주 생각해요. 특히 지금처럼 생태 위기 시대에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하죠. 예술은 개인과 사회 모두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고,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도록 돕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감정과 아이디어를 이어주며, 몸으로 느끼고 사유하게 하죠. 저는 미술 기관에서 선보이는 작품뿐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나 아이디어 자체를 실험하는 작업도 함께 하고 있어요. 매체가 무엇이든, 사람들이 이 세계를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활동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현재 첫 야외 청동 조각 커미션 작품 ‘The Length of a Moment’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여름 영국 옥스퍼드에 새로 조성하는 커낼사이드 파크에 향기가 퍼져나가는 모양의 조형물 3개를 설치할 예정이에요. 약 2.5m 높이의 이 조각들은 나방이 꽃향기를 따라 이동하는 움직임에서 비롯한 형태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가시화하고자 했습니다. 이 작업은 동아시아 전통 정원의 수석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수석은 그 형태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자연과 풍경이 만들어내는 역동적 시간을 한순간에 응축해 담아내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Copyright ⓒ 노블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