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류정호 기자 | 최민정(28·성남시청)은 웃고 있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올림픽 무대와 작별하겠다고 밝힌 뒤 약 3주가 지난 11일, 본지와 마주한 그는 “너무 후련하다”고 말했다. 밀라노에서 여자 1500m 은메달 직후 쏟아냈던 눈물은 어느새 환한 미소로 바뀌어 있었다. 다만 그 미소는 가벼움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끝에 비로소 찾아온 해방감에 가까웠다.
밀라노에서 여자 1500m 은메달로 한국 선수 동·하계를 통틀어 최다 메달리스트(금4·은3)로 올라선 최민정은 여전히 현역 선수로 빙판 위에 남아 있다. 하지만 올림픽을 향한 도전만큼은 스스로 매듭지었다. 그는 화려한 기록 앞에서도 들뜨기보다 지나온 과정과 마무리를 더 차분히 돌아봤다. 최민정은 “메달 7개를 두 눈으로 확인하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많은 메달을 보니 ‘잘 달려왔다’는 생각이 든다”는 최민정의 말에는 안도와 함께 후련함과 책임감, 다음 세대를 향한 기대가 함께 담겼다.
◆모든 것을 쏟아낸 마지막 올림픽
최민정이 이번 대회를 마지막 올림픽으로 정한 이유는 분명했다. 그는 “무릎 때문에 이번 시즌에 고생도 많이 했었고, 모든 걸 다 쏟아부으면서 준비했던 대회였다”며 “더 이상 쏟아낼 힘도 없었다. 다음이 더 그려지지도 않아서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밀라노에서 흘린 눈물 역시 아쉬움보다 후련함에 가까웠다는 설명이다.
최민정은 올림픽 여자 1500m 결선 직후 믹스트존에서 눈물을 멈추지 못하며 올림픽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에는 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면, 시간이 흐른 지금은 감정의 결이 보다 또렷해졌다. 그는 “좋아서 울었다. 좋고 후련해서 ‘대회가 끝나서 이렇게 후련할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응원 와주신 가족, 친구, 코치님들께 경기장에서 직접 인사하며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게 진짜 멋진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현장에서는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사실이 감정을 더 크게 흔들었고, 시간이 지난 뒤 남은 것은 후회보다 후련함이었다.
1500m 결선에서 후배 김길리(21·성남시청)와 나란히 1, 2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장면도 최민정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마지막 바퀴에서 무리하게 몸싸움을 걸었다면 둘 다 흔들릴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최민정은 그 순간 개인 욕심보다 한국의 1, 2위를 택했다. 그는 “한국 선수가 1, 2등 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의미가 깊었다”며 “무리해서 막으면 둘 다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각자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장으로 치른 마지막 올림픽이었기에 마음가짐도 달랐다. 최민정은 “예전에는 저만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다 같이 잘할 방법을 계속 찾으려 했다”며 “팀원들과도 소통을 많이 하고, 코치진과 선수들 사이 이견 조율도 많이 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혼성계주에서 넘어지는 등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어린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다독인 일 역시 주장으로서의 몫이었다. 그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대회는 많이 남아 있으니 잘 준비하자고 얘기했다”며 끝까지 팀 전체를 먼저 바라봤다.
◆7개 메달 너머, 후배와 미래를 향한 시선
7개 메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메달로는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1500m 금메달을 꼽았다. 최민정은 “그 대회를 기점으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고, 2연패를 달성하면서 3연패와 최다 메달 같은 많은 기록에 도전할 수 있는 기점이 됐다”며 “나한테 더 뜻깊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메달이 된 밀라노 1500m 은메달에 대해서는 “1500m에서 개인전 메달을 또 땄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깊었고, 모든 걸 다 쏟아볼 수 있었다”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후련했던 경기”라고 떠올렸다.
이제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후배들에게 향한다. 최민정은 에이스 칭호를 넘겨받은 김길리에 대해 “어린 선수답게 패기가 넘치는 게 강점”이라며 “준비하면서 힘든 것도 많고 부담도 많이 됐을 텐데 첫 올림픽을 정말 잘 해낸 것 같아 선배로서, 동료로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또 한국 쇼트트랙의 미래를 두고는 “외국 선수들은 체격을 기반으로 스케이팅하지만, 한국 선수들에게는 섬세함과 기술, 강한 정신력이 있다”며 “본인만의 스타일을 지키면서 한국 선수들의 강점을 잘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최민정은 이제 성적에 대한 목표는 크지 않다고 했다. 대신 현역 생활의 마무리와 그 이후의 삶을 더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는 “올림픽 마무리는 정말 잘 된 것 같고, 현역은 조금 남아 있지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잘 마무리하고 싶다”며 “선수 생활이 끝난 뒤에는 쇼트트랙이나 스포츠 쪽에서 여러 방향으로 힘을 보태고 싶다”고 힘주었다. 그러면서 “전이경(50) 선배님이 최초로 해내셨기 때문에 저도 그 가능성을 보고 따라갈 수 있었다. 후배들 역시 제 기록을 깨고 따라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마지막 올림픽을 치른 최민정은 곧 방송을 통해서도 팬들과 만난다. 최근 JTBC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 녹화를 마친 그는 “예능이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방문했다. 그러나 셰프님들이 진지하게 요리하는 모습이 다큐 같아서 오히려 제가 더 감동하고 왔다”며 “밀라노에서 재료를 다 사 갔다. 요리하시기 편하게 준비해 갔는데도 직접 만드시는 게 너무 많아 죄송했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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