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전쟁보다 먼저 무너지는 문명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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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전쟁보다 먼저 무너지는 문명의 기준

뉴스로드 2026-03-13 07:21: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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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이란 테헤란 공습/연합뉴스
이스라엘의 이란 테헤란 공습/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민간 선박과 선원이 공격을 받았고, 수단에서는 국가 질서가 무너진 채 민간인과 병원이 계속 타격을 받고 있다. 대만해협과 동중국해에서는 군사 충돌 직전의 긴장이 이어지고, 한반도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도 군사적 대치는 멈추지 않는다. 희토류와 안티모니를 둘러싼 광물전쟁, 코스피·나스닥·S&P500의 변동성까지 겹치며 세계는 서로 다른 위기가 동시에 흔드는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들은 흩어진 사건이 아니다. 인간은 여전히 힘을 질서로 착각하고, 욕망을 자유로 오인하며, 가격을 진실보다 앞세운다. 12일(현지시간) 국제해사기구(IMO)가 호르무즈 공격 이후 선원 보호와 항행의 자유를 다시 촉구한 것도 바로 그 균열의 한 단면이다.

수단에서는 지금도 민간인과 병원, 전력시설이 공격받고 있다. 유엔은 이를 두고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라는 표현만 되풀이하고 있다. 대만 주변에서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항공 활동이 잠시 줄었지만 해상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동중국해에서는 중국 해경이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섬 주변을 거의 일상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한미연합훈련을 둘러싸고 북한의 반발이 다시 고조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에서도 이달 들어 민간인과 에너지 인프라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와 핵심 광물 부문에서도 흐름은 분명하다. 미국이 중국 의존을 줄이려 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되고 있다. 시장은 이런 변화를 즉각 숫자로 반영하고 있다. 지난 9일 코스피는 5.96% 급락하며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고, 미국 시장에서도 유가 급등 국면 속에 S&P500과 나스닥이 흔들렸다. 변동성지수(VIX)도 이미 20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한국 정부가 유가 급등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국내 연료가격 상한 조치를 검토한 것도 같은 흐름 속에서 읽힌다.

이 장면을 바라본다면 키케로는 법의 통제를 벗어난 힘이 결국 공화정을 무너뜨린다고 말했을 것이다. 플라톤은 욕망이 지배하는 국가는 결국 자기 그림자에 삼켜진다고 경고했을 것이다. 프리드먼이 가격을 가장 빠른 정보라고 했다면, 지금의 가격은 정보라기보다 공포가 번역된 문장에 가깝다. 스피노자는 군주보다 군중의 정념을 보라고 했을 것이고, 르네 지라르는 인간이 서로의 욕망을 모방하다 결국 희생양을 찾게 된다고 설명했을 것이다. 투키디아데스는 강자와 약자의 언어가 갈라지는 순간 이미 전쟁은 시작된 것이라고 기록했을 것이며, 마키아벨리는 국가가 두려움을 통제하지 못하는 순간 질서 또한 무너진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본회퍼의 사유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수레바퀴에 깔린 자를 돌보는 데 그치지 말고, 바퀴 자체를 멈추라고 말했을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정의 없는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니라, 폭력이 잠시 멈춘 상태에 불과하다고 보았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경계가 곧 우리가 사는 세계의 경계라고 경고했다. 지금 국제정치와 언론의 언어는 안보, 억지, 공급망, 프리미엄, 헤지 같은 단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서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훨씬 오래된 언어들이다. 교만, 공포, 모방, 복수, 그리고 탐욕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전쟁을 단지 지정학 문제로만 읽는다면 세상을 외눈으로 보는 셈이 된다. 호르무즈는 에너지 수송의 병목이지만 동시에 문명의 오만이 응축된 해협이다. 수단은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비용으로 환산하기 시작할 때 어떤 파국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대만과 동중국해, 한반도 역시 단순한 군사 충돌 가능성의 지도가 아니다. 상대 또한 끝내 물러서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면서도 한 발씩 앞으로 내딛고 있는 역사적 교만의 궤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광물전쟁은 이를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제 주권은 더 이상 영토와 영해, 영공 같은 물리적 경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제련과 정련, 물류와 허가, 보험과 제재, 환율과 지수까지 모든 것이 전장의 일부가 됐다. 전쟁이 탱크와 포성으로 시작되더라도 시장에서는 선물곡선과 신용스프레드, 변동성이라는 형태로 증폭된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호르무즈 리스크가 연일 뉴스의 중심에 오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세계는 ‘냉혹한 현실’이라는 동굴 속에서 이성을 평화의 도구가 아니라 계산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인류애를 잃은 이성은 제국의 전략으로 변하고,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지성은 시장을 움직이는 기술로 전락했다. 그래서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기본권’은 더 이상 헌법 조문 속 규범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쟁과 시장을 동시에 가늠하는 가장 근본적인 잣대가 됐다.

호르무즈에서는 선원이 공격의 표적이 되고, 수단에서는 병원이 타격을 받는다. 대만과 한반도에서는 상대를 인간이 아니라 계산 가능한 피아식별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커지고 있다. 광물 공급망마저 인간의 존엄보다 앞세워지고 있다. 시장보다 먼저 흔들리는 것은 문명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교만의 해체다.

지금 세계가 겪는 변동성의 핵심 리스크는 유가도, 환율도, 미사일도 아니다. 그것들은 결과에 가깝다. 더 근본적인 리스크는 인간이 스스로를 절대화하는 교만이다. 키케로가 말한 법의 지배, 플라톤이 꿈꾼 철인의 통치,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법, 아우구스티누스의 질서 있는 사랑(ordo amoris)은 모두 인간 질서를 붙잡기 위한 사유였다. 

스피노자의 이성의 질서,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언어의 경계, 르네 지라르가 밝힌 모방 욕망, 투키디아데스가 기록한 권력 정치의 비극, 마키아벨리가 설명한 국가이성, 프리드먼이 강조한 가격 메커니즘 또한 같은 문제를 설명하려는 사유였다. 그러나 그 어떤 이론도 인간의 교만 자체를 대신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다만 이 모든 사유는 결국 한 방향을 가리킨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문명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순간, 전쟁은 총성보다 먼저 인간 내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지금 세계가 벌이고 있는 싸움은 단순히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과정에 가깝다.

그 대답이 돈과 힘, 민족과 복수라면 코스피든 나스닥이든 S&P500이든 결국 더 큰 변동성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지수보다 먼저 인간이며, 시장보다 기본권이다. 그 질서를 되찾지 못한다면 전쟁이 멈추더라도 전장은 끝나지 않는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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