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박지훈 관계는 진짜일까…1200만 질주 ‘왕사남’, 팩트 체크 [IS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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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박지훈 관계는 진짜일까…1200만 질주 ‘왕사남’, 팩트 체크 [IS비하인드]

일간스포츠 2026-03-13 05:55: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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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쇼박스 제공
‘왕과 사는 남자’가 1200만 고지를 넘어서며 파죽지세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 기반의 작품인 만큼, 영화 스코어와 함께 실제 기록에 대한 관객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4일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는 1457년 청령포 마을에서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 엄흥도(유해진)와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선왕 단종 이홍위(박지훈)의 이야기를 그렸다. 팩션 사극이라는 장르에 맞게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사실과 허구를 오간다. 연출을 맡은 장항준 감독은 ‘강물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영월 호장 엄흥도가 수습했다’는 한 줄을 출발점 삼아, 정사와 야사의 기록을 이어 붙이고 역사의 빈틈을 메꾸며 단종의 마지막 생애를 재구성했다. 

‘왕과 사는 남자’ 스틸 / 사진=쇼박스 제공
◇엄흥도는 실존했는가

‘왕사남’ 개봉 후 가장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인물은 광천골 촌장 엄흥도다. 실존 인물인 엄흥도는 단종의 유배지였던 영월의 호장으로 전해진다. 호장은 조선시대 향리직 우두머리로, 행정·세금·치안을 담당하는 책임자를 일컫는다. 다만 영화와 달리 엄흥도가 척박한 마을 살림에 숨통을 틔우고자 광천골을 유배지로 만들었다는 등의 설정은 사료에 남아 있지 않다.

서사 중심축인 엄흥도와 단종의 관계는 후손이 남긴 기록과 일정 부분 유사하다. 엄흥도의 후손 엄주호가 고종에게 올린 상소문에 따르면, 단종이 꿈에서 사육신을 만나고 잠에서 깨 통곡하자 엄흥도는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강을 건너 청령포로 향했다. 이어 “곡소리를 듣고 마음이 슬퍼 왔다”며 단종을 위로했다.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사실은 실록에도 기록돼 있다. 중종실록에는 “(단종 사망 후) 고을 아전 엄흥도란 사람이 찾아가 곡하고 관을 갖추어 장사했다”, 현종실록에는 “노산군이 해를 당했을 때 시신을 거두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그 고을의 향리 엄흥도가 곧 가서 곡하고 스스로 관곽을 마련 거두어 묻었다”고 언급돼 있다. 이러한 기록은 영화의 엔딩, 엄흥도가 영월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의 역사적 근거가 된다.

‘왕과 사는 남자’ 스틸 / 사진=쇼박스 제공
◇단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

‘왕사남’의 하이라이트는 단종의 마지막 순간이다. 극중 세조의 사약을 받은 단종은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며 엄흥도에게 자결을 도와달라고 청한다. 그리고 엄흥도는 고뇌 끝에 이를 받아들인다. 해당 장면은 ‘왕사남’에서 감독과 작가의 상상력이 가장 많이 가미된 지점이다.

단종의 죽음에 대해 세조실록은 “노산군이 금성대군과 장인 송현수의 죽음을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하니, 예로써 장사 지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이는 정변 이후 기록으로, 세조가 정치적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있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영화처럼 세조가 단종에게 사약을 내렸다는 견해가 통설로 여겨진다.

교살 기록도 존재한다. 숙종실록은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들고 영월에 도착했으나 머뭇거리면서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고, 이때 단종을 수행하던 하인이 나서 교살했다고 전한다. 연려실기술에는 “단종을 모시던 통인이 단종을 죽이는 것을 자처하고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단종이 앉은 자리 뒤로 가서 목에 걸고 창문으로 끈을 잡아당겼다”고 남아 있다. 다만 통인은 엄흥도와 별개 인물로, 그가 단종의 죽음을 도왔다는 설정은 완전한 허구다.

‘왕과 사는 남자’ 스틸 / 사진=쇼박스 제공
◇단종은 진짜 복위를 원했는가

‘왕사남’에서 단종은 광천골 백성들을 통해 각성하고, 경북 순흥에 유배된 숙부 금성대군(이준혁)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한양으로 진군할 계획을 세운다. 실제 연려실기술에는 금성대군이 “순흥의 군사들과 남쪽의 모의 참여자들을 모아 노산(단종)을 데려와 함께 있게 하고, 영남을 호령한 뒤 조령과 죽령 두 고갯길을 막아 복위 계책을 세우려 했다”고 언급한다.

단종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맞선 복위 시도를 했다는 직접적 기록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세조실록 속 단종이 영월로 출발한 시기(1457년 6월 22일)와 세조가 순흥부사 이보흠으로부터 금성대군의 복위 계획을 보고받은 시기(1457년 7월 3일)를 비교했을 때, 단종이 반역에 가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세조실록은 그해 9월 이유(금성대군) 외 노산군에게도 사약을 내리라는 대신들의 요청도 전하고 있다. 여기서 신숙주는 “지난해 이개(사육신 일원) 등이 노산군을 명분으로 거사를 도모했고, 이제 이유도 노산군을 끼고 난을 일으키려 하니 노산군도 편히 살게 할 수 없다”고 언급한다. 이는 단종이 복위를 위해 직접 행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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