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이 다가올수록 말은 많아지고 진정성은 흐릿해지기 쉽다. 화려한 수사와 계산된 메시지는 넘쳐나지만 그 말의 무게를 끝까지 감당하려는 태도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역사 속에서 정치와 인간의 본질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1801년 정조 사후 권력 교체기에 벌어진 신유박해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표면적으로는 종교 문제였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갈등이 낳은 비극에 가까웠다. 노론 벽파가 남인 시파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천주교를 ‘사학(邪學)’으로 규정하며 대대적인 숙청을 벌였고 수백명이 처형되거나 유배되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실학자 가문 역시 화를 피하지 못했다. 셋째 형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둘째 형과 막내는 유배길에 올라야 했다. 권력의 광풍 속에서 가족과 사상이 함께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특히 널리 전해지는 한 문장이 있다. 국문장에서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이다. “어찌 감히 위로 임금을 속일 수 있으며 아래로 형을 증거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권력의 압박 속에서 거짓 자백을 하거나 가족을 밀고하는 길을 택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정치적 선언이라기보다 한 인간의 중심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공포가 지배하던 시대에도 양심과 천륜을 지키겠다는 선택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역사는 종종 형태만 바꾼 채 반복된다. 당시에도 밀고와 권력의 횡포가 있었고 지금도 갈등과 분열은 정치의 일상이 된 듯하다. 말은 점점 거칠어지고 신뢰는 얇아진다. 서로를 설득하기보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에너지를 쓰는 정치 속에서 시민의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정치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보다 기본적인 원칙일지 모른다. 공직의 본령은 권한이 아니라 책임에 있고 정치의 출발점은 계산이 아니라 신뢰에 있다. 마음을 잃지 않는 정치, 그것이 가장 어렵지만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18년의 유배 속에서도 수많은 저술을 남기며 후대에 깊은 영향을 끼친 한 실학자의 삶은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역경은 좌절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오히려 원칙을 더 또렷하게 만드는 시간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공동체를 향한 고민과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치의 시간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가보다 누가 더 오래 원칙을 지킬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정직과 책임을 붙드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오늘 우리 정치가 회복해야 할 최소한의 의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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