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는 보통 명확한 승자가 없기 마련이고,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쪽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전 세계 에너지와 공급망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일부 국가들은 경제적 타격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혼란 속에서 새로운 전략적 기회를 찾는 이들도 있다.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은 중동 지역은 물론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걸프 국가들의 상황은 불안정해졌고, 중동 곳곳의 수십만 명은 살던 집을 떠나야 했다.
게다가 유가가 폭등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중심으로 걸프지역 해상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소비자와 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도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아수라장에서 가장 큰 타격 혹은 이득을 볼 국가는 어디일까.
러시아
러시아에 있어 이란은 핵심 동맹국이자 주요 군사 파트너이다. 그리고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히메네이의 피살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 축출, 미국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에 이어 러시아에는 또 다른 외교적 타격이다.
그러나 중동 내 분쟁으로 미국의 군사 자원이 분산되기에 우크라이나에서 자신들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일정 부분 이득이 될 수도 있다.
프랑스 '파리 정치 연구소'의 국제학 연구센터 소속 니콜 그라제스키 부교수는 BBC 러시아어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이란 전쟁으로)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요격 시스템 등이 소모되면 우크라이나가 확보할 수 있는 무기 물량이 줄어드는 셈이기에 러시아에는 유리한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란산 '샤헤드' 드론의 경우, 이란 내 수요가 증가하더라도, 그것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능력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비확산연구센터'의 유라시아 담당인 한나 노테는 BBC 뉴스에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특히 2022~2023년 기간, 러시아는 이란에 크게 의존했다. 이란이 샤헤드 드론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이 드론의 생산 기술과 라이선스를 제공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이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러시아도 자체적인 샤헤드 드론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로 석유 및 천연가스 운송의 목줄을 죄면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러시아에 어느 정도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러시아 연방 정부의 예산은 배럴당 59달러에 판매되는 석유에 의존한다. 그러나 현재 원유 가격은 한때 배럴당 거의 120달러까지 급등했다. 게다가 주요 걸프 산유국들이 산유량을 줄이면서 러시아가 중국과 인도 같은 주요 시장에 더 많이 수출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글로벌 에너지 및 상품 시장 정보 업체 '아거스'의 수석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파이프는 "인도는 러시아산 석유 구매량을 줄이도록 권고받아왔으나, 미국으로부터 적어도 다음 달까지는 러시아산 석유를 구매할 수 있도록 일종의 예외 조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미 (에너지 공급 부족) 문제를 완화하고자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입니다."
중국
중국은 이번 이란 전쟁으로 극적인 영향은 아직 받지 않고 있으나, 앞으로 압박을 느낄 것만은 분명하다.
'글로벌 에너지 정책 센터'에 따르면 중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12%만이 이란산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 수개월 동안 충분한 석유 비축량을 확보해 놓았으며, 그 이후에도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파이프는 중국의 "수출 지향적인 산업 부문"은 이번 사태의 여파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부동산 시장 침체 및 내수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경제의 핵심 동력은 바로 국내총생산(GDP)의 약 20%를 차지하는 수출이다.
오만만과 걸프만을 잇는 호르무즈 해협 주변의 차질은 중국에 큰 문제가 아니지만, 서방으로 향하는 중국산 수출품의 대서양 항로 진입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홍해와 아덴만 사이에 자리해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아라비안 남부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도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파이프는 B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홍해 해운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에서 대서양으로 향하는 장거리 화물선들이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런던 소재 싱크탱크 '채텀 하우스'의 중동 전문가인 닐 퀼리엄은 "그리고 이는 비용이 많이 든다"고 전했다.
"항해 기간이 10~14일 정도 늘어납니다. 화물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이렇게 되면 평균적인 선박 기준 약 200만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필립 셰틀러-존스는 BBC 뉴스에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번 전쟁이 중국에 외교적 기회로 다가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중국은 미국에 맞서 "책임 있는 균형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애쓰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비되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세계 지도자로라는 이미지를 계속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갈등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대만 문제를 비롯한 다른 잠재적 분쟁 지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어떻게 대응할지 "가늠해 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신흥국
한편 중동의 석유와 가스에 크게 의존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번 전쟁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국가는 이미 경제적 영향을 최대한 빨리 최소화하고자 극단적인 긴축 조치에 나서기도 했다.
베트남에서는 전쟁 발발 이후 경유 가격이 이미 60% 상승했는데, 이에 정부는 가능한 한 재택근무를 권고하고 있다.
사용하는 원유의 약 95%가 중동산인 필리핀에서는 응급 서비스 종사자를 제외한 공공 부문 직원들이 주 4일 근무에 들어갔다.
파키스탄에서도 은행을 제외한 여러 기관에 유사한 조치가 도입됐다. 근로자들은 가능한 한 재택근무를 해야 하며, 대학 수업도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TV 연설을 통해 국가의 연료 비축량을 보존하고 신중하게 배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사재기 현상에 대처하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이미 주유소에 긴 줄이 늘어서자, 승용차는 하루 10리터, 오토바이는 2리터로 주유량이 제한됐다.
그러나 이 전쟁의 여파는 에너지 위기를 넘어 훨씬 더 넓게 번질 수도 있다.
식량을 생산하는 전 세계 농부들은 토양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작물이 날씨 변화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비료를 사용한다. 그런데 비료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이는 전 세계적인 식량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퀼리엄은 BBC 뉴스에 "비료 원료인 요소(CO(NH 2) 2)의 경우, 전 세계 생산량 중 3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요소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석유화학 제품에서 나온다. 따라서 글로벌 요소 공급량의 30%가 줄어든다면 세계 식량 안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세계 최대 가스 수출국이자 비료용 요소를 생산하는 '카타르에너지'는 시설이 공격당하면서 생산 및 공급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수 있는 비상 조치인 '포스 마쥬르(불가항력)'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퀼리엄은 "식량 안보 및 인플레이션 측면에서 이번 사태의 충격파는 6개월, 9개월 후쯤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지금 당장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으나, 작물 재배가 어려워지거나 농부들이 비료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면 장기적인 영향이 체감될 것입니다."
추가 보도: BBC 힌디어 서비스, 엘리자베타 포크트( BBC 러시아어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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