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칼리만탄에서는 지금 '녹색'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 중 하나로 추진되는 칼리만탄산업단지(Kalimantan Industrial Park Indonesia, KIPI)다. 전기차 배터리, 알루미늄, 석유화학 산업을 중심으로 한 이 거대한 산업 클러스터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내세우는 '녹색 산업 전환' 전략의 핵심 프로젝트다.
이 산업단지에 필요한 전력은 북칼리만탄에서 건설 중인 대형 수력발전댐에서 공급될 예정이다.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생산되는 제품 역시 '녹색 제품'이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겉으로 보면 이는 기후 위기 시대에 필요한 에너지 전환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한 보고서는 이 프로젝트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녹색'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도네시아 환경단체 누갈 에콜로지카 인도네시아(Nugal Ecologica Indonesia)가 국제단체인 세계열대우림운동(World Rainforest Movement)과 함께 발표한 브리핑 보고서 <인도네시아 멘타랑-칼리만탄 수력발전댐: 누구를 위한 전기인가?(The Mentarang-Kalimantan hydropower dam in Indonesia: Electricity for whom?)>는 북칼리만탄에서 추진되고 있는 멘타랑 인둑 수력발전 프로젝트(Mentarang Induk Hydroelectric Project)의 실상을 추적한다.
1375MW(메가와트) 규모의 멘타랑 인둑 수력발전소는 투부강과 멘타랑강을 가로막아 거대한 저수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건설되고 있다. 이 댐이 완공되면 카얀 멘타랑 국립공원을 포함하여 약 2만 2604ha(헥타르)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이 수몰될 예정이다. 최소 10개 마을이 사라지고 약 706가구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강제 이주가 시작됐다. 2023년 초 푸난(Punan) 공동체 28가구가 세보요(Seboyo) 마을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동의나 실질적인 참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생태적 영향 역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얀 멘타랑 국립공원은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의 핵심 생태지역인 '보르네오의 심장(Heart of Borneo)'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보르네오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온전한 생태지역 중 하나이며, 댐 건설로 막히게 될 강들은 주변 열대우림 생태계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투부강에는 폭포와 급류 구간을 포함해 30개가 넘는 여울이 존재하며 이곳에 서식하는 고유종 어류가 심각한 위협에 놓이게 된다.
또한 이 국립공원에는 중요 조류 및 생물다양성 지역(Important Bird and Biodiversity Areas, IBAs)으로 지정될 만큼 300종이 넘는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고 있어, 댐 건설이 이 지역 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이런 지역을 수몰시키는 대형 수력발전 프로젝트가 과연 '녹색'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문제는 이런 대형 수력발전 프로젝트가 단순히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멘타랑 인둑 수력발전소와 인근에 건설될 약 9000MW 규모의 카얀(Kayan) 수력발전소는 북칼리만탄에 조성되고 있는 녹색 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즉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명분 아래 건설되는 수력발전은 실제로는 거대한 산업단지의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반 시설이라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국가 전력공급사업계획(RUPTL)에서도 이런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계획은 2034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크게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도 동시에 대규모 산업단지 개발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기후위기 대응이나 에너지 전환 정책이라기보다 전기차 배터리와 알루미늄 산업 등 자원 기반 산업을 뒷받침하는 산업 전략과 맞물려 추진되고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대규모 전력 생산의 경우 재생에너지, 청정 수력, 혹은 화석연료 기반 발전 여부와 관계없이 대규모 자본 투자와 엘리트 중심의 개발 방식 속에서 추진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멘타랑 인둑 수력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기업 PT KHN의 지분 구조를 추적한 결과, 인도네시아 정치·경제 엘리트들과 기업 네트워크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프로젝트에는 석탄 기업 아다로(Adaro)를 비롯한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정치권과 연결된 인물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여기에 중국 기업과 자본 역시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서는 지적한다. 이런 사실은 재생에너지 확대가 기후 정책을 넘어 산업 발전과 자원 개발 전략과 긴밀히 결합해 추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녹색 채굴주의(green extractivism)' 개념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녹색 채굴주의는 '녹색' 혹은 '지속가능성'이라는 담론을 활용해 천연자원 개발을 정당화하는 정치경제적 구조를 가리킨다. 재생에너지 확대나 기후 대응을 위해 추진되는 프로젝트가 실제로는 토지 수탈과 생태계 파괴, 지역 공동체의 해체를 동반하는 경우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광업뿐만 아니라, 풍력, 태양광, 수력발전과 같은 저탄소 에너지 프로젝트에도 적용될 수 있다. 생태계를 훼손하거나 지역 공동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는 에너지 전환은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자원 개발 체제로 작동할 수 있다.
멘타랑 수력발전 프로젝트는 바로 이런 구조를 드러낸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녹색 산업 전환이라는 명분 아래 추진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산업단지와 자원 기반 산업을 뒷받침하는 에너지 인프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재생에너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정치경제적 구조 속에서 추진되는가에 있다. '녹색'이라는 이름이 붙는다고 해서 모든 에너지 개발이 지속가능한 것은 아니다. 저탄소 에너지 전환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채굴주의로 작동할 수 있다. 지금 칼리만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은 '녹색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형태의 자원 개발이 어떻게 정당화되고 확장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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