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은 산업이 아니라 안보다…HMM 현대상선의 전략 가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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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은 산업이 아니라 안보다…HMM 현대상선의 전략 가치 재조명

폴리뉴스 2026-03-12 10:12:12 신고

▲ 국내 최대 원양 컨테이너 선사인 HMM(구 현대상선)이 올해 1분기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며 창사 이래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 국내 최대 원양 컨테이너 선사인 HMM(구 현대상선)이 올해 1분기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리며 창사 이래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물류와 해운을 단순한 민간 운송업으로만 보는 시각은 이제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세계 교역망이 지정학, 탄소 규제, 공급망 재편이라는 세 개의 파도에 동시에 흔들리는 국면에서 해운은 수출을 실어 나르는 산업인 동시에 국가 경제의 혈관을 지키는 인프라가 됐다. 한국 최대 국적 컨테이너 선사인 HMM의 의미도 이 지점에서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HMM을 둘러싼 논의가 실적 등락이나 매각 여부에만 갇힐 경우, 정작 더 중요한 질문은 놓치기 쉽다. 한국처럼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 국적 원양선사가 갖는 전략적 가치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해운은 더 이상 단순한 운임 장사가 아니라, 국가가 외부 충격 속에서도 수출입 동맥을 유지할 수 있느냐를 가르는 안보 자산에 가깝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최근 글로벌 해운 환경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면 더 선명해진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최근 해상 운송 시장이 지정학적 충돌과 무역 갈등, 항로 재편의 충격을 동시에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평균 항해 거리는 늘고, 항만 혼잡과 우회 운항 비용은 커졌으며, 공급망 신뢰도는 과거보다 더 쉽게 흔들리는 구조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선박을 많이 보유한 기업이 강한 시대에서, 불확실한 국제 환경 속에서도 노선과 공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줄 수 있는 선사가 중요한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국적 선사의 존재 자체가 경제안보의 완충장치가 된다. 해외 선사들이 수익성 중심으로 항로를 재편할 때에도 자국 화주와 수출입 기업의 물동량을 떠받칠 최소한의 버팀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점에서 특히 해운의 전략성을 무겁게 볼 수밖에 없는 나라다. 정부 역시 해운을 단순 업종이 아니라 수출 주도 경제를 떠받치는 기반 산업으로 규정해 왔다. 해양수산부는 해운강국 도약 전략에서 2030년까지 원양 컨테이너 선복량 150만TEU 이상 확보를 목표로 제시했고, 수출입 물류 위기 대응을 위해 장기운송계약 확대와 정책금융 지원, 친환경 선박 전환을 핵심 과제로 내걸었다. 이는 시장 논리에만 맡겨 두기 어려운 영역이 해운이라는 점을 정부가 이미 인정한 셈이다. 특히 중소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선복과 운임 안정성을 보장하는 정책이 반복적으로 나온 것은, 해운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이 제조업 현장과 수출기업이라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맥락에서 HMM은 단순히 '국내 1위 선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HMM은 한국을 대표하는 국적 원양선사이자, 글로벌 네트워크를 직접 운용하는 사실상 유일한 대형 컨테이너 선사다. 회사는 자사 소개에서 컨테이너 화물뿐 아니라 원자재, 유류, 플랜트 화물 등 다양한 화물을 다루는 종합 해운·물류 기업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세계 주요 거점을 잇는 광범위한 해외 조직망과 선대를 보유하고 있다. HMM은 2024년 말 기준으로 13,000TEU급 12척 인도가 완료되면 총 선복량이 약 100만TEU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고, 1만TEU 이상 대형선 비중이 전체의 80% 수준까지 올라가 비용 구조와 운항 효율이 한층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즉 HMM의 경쟁력은 단지 배를 띄우는 데 있지 않고, 한국 수출입 물동량을 대형 장거리 항로에서 안정적으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스케일에 있다. 

HMM의 전략적 가치는 실적에서도 일정 부분 확인된다. 회사는 2024년 매출 11조7000억원, 영업이익 3조513억원, 순이익 3조781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률은 30%, 부채비율은 21%로 발표했다. 2025년 상반기에도 매출 5조4770억원, 영업이익 8470억원, 순이익 1조2110억원을 올리며 업황 둔화 속에서도 이익을 냈다. 해운업 특성상 운임은 크게 흔들리지만, 중요한 것은 변동성 국면에서도 선복·재무·노선 운영 능력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느냐다.

HMM은 팬데믹 호황기 이후 업황이 꺾인 상황에서도 일정 수준의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며 체력을 입증했다. 이것은 단순히 주주 입장에서의 성과가 아니라, 국가 입장에서는 위기 국면에 버틸 수 있는 국적 운송망이 살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HMM의 역할이 '물량 운송'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운 경쟁력은 선복량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기 노선망, 얼라이언스 참여, 터미널 운영, 배후 물류까지 연결되어야 비로소 실제 경쟁력이 된다.

HMM은 2025년부터 Premier Alliance 체제 아래 아시아-미주·유럽·중동 항로에서 협력 운항을 본격화했고, 미국 연방해사위원회(FMC)도 해당 얼라이언스의 효력을 2025년 2월부터 인정했다. 이는 HMM이 독자 생존만이 아니라 국제 협력체계 안에서 글로벌 서비스 지속성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동시에 HMM은 국내외 주요 터미널 운영과 지분 투자를 통해 서비스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선사에 터미널은 단순 부동산이 아니라 항로 통제력의 연장선이다. 항만 접안, 하역, 적체 대응 능력이 흔들리면 선복이 있어도 경쟁력을 잃는다. HMM이 터미널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이유도 결국 국가 수출입망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친환경 선대 전환도 HMM의 전략 가치를 키우는 축이다. 앞으로 해운업 경쟁력은 단순 운임이 아니라 탄소 규제를 얼마나 빨리, 얼마나 낮은 비용으로 넘느냐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한국 국적 원양선대의 친환경 선박 비중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HMM은 이에 발맞춰 대규모 신조 투자에 나섰다.

HMM은 2025년 10월 약 4조원 규모의 신조선 발주를 발표했는데, 13,000TEU급 컨테이너선 12척과 VLCC 2척이 포함됐고, 컨테이너선은 LNG 이중연료 사양으로 건조된다. 연료 전환은 단순한 ESG 홍보가 아니다. 유럽과 북미 규제가 강화될수록 친환경 선대는 운항 자유도를 좌우하는 실전 경쟁력이 된다.

다시 말해 HMM의 친환경 선대 투자는 기업 차원의 설비 확충인 동시에 한국 수출 기업들이 미래 규제 장벽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물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기반 투자다. 

국적 선사의 전략성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례가 한진해운 파산 이후의 기억이다. 당시 한국 수출입 기업들이 겪었던 혼란은 해운이 왜 '보이지 않는 인프라'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정기선 서비스가 흔들리면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 제때 선적되지 못하고, 선적이 지연되면 재고와 금융, 납기와 거래처 신뢰까지 줄줄이 충격이 번진다.

해운은 평소에는 비용 항목으로 보이지만, 위기 때는 국가 전체의 산업 연쇄를 좌우하는 병목으로 바뀐다. 이런 점에서 HMM은 단순한 민간 기업이 아니라, 외부 충격 시 한국 제조업과 수출 산업의 마지막 안전판 성격을 갖는다. 정부가 선복 확대, 장기운송계약, 정책금융, 친환경 선박 지원을 병행하는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시장의 효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공공성이 해운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HMM을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단순 논리로 흘러서는 곤란하다. 전략 자산이라는 명분은 경쟁력과 효율성을 전제로 할 때만 설득력을 가진다. 국적 선사가 국가적으로 중요하다는 이유로 경영 혁신과 시장 경쟁을 소홀히 한다면 결국 그 부담은 화주와 국민경제에 돌아간다.

그래서 HMM의 진정한 과제는 '국적' 자체가 아니라 '국적이면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선사'로 자리 잡는 데 있다. 안정적 재무, 대형선 중심 선대, 터미널 통제력, 국제 얼라이언스 활용, 친환경 투자, 그리고 수출기업과의 장기계약 기반까지 고루 갖춰야 한다. 전략 산업의 가치는 감상적 상징이 아니라 위기 때 실제로 작동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결국 HMM의 의미는 '옛 현대상선'이라는 이름의 향수에 있지 않다. 진짜 본질은 한국 경제가 불안정한 세계 교역 질서 속에서 스스로 항로를 지킬 수 있는가에 있다. 선박은 바다를 오가지만, 그 배의 존재 이유는 한국 산업의 생산 라인과 수출 계약서, 항만과 금융, 일자리와 공급망을 함께 움직이는 데 있다. 그래서 HMM은 단순한 해운회사가 아니라, 국가가 세계 시장과 연결되는 통로를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전략 인프라에 가깝다. 해운을 산업으로만 보던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의 질문은 하나다. 한국이 교역 국가로 남기 위해 어떤 해운 역량을 반드시 자국 안에 붙들어 두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 질문 앞에서 HMM의 전략 가치는 다시, 그리고 더 무겁게 읽힐 수밖에 없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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