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김종효 기자 |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불리한 외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문제 삼아 보복 조치를 가할 수 있는 '무역법 301조' 카드를 꺼내들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산업계 전반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특히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의 디지털 및 플랫폼 규제 전반을 겨냥해 301조 조사 가능성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칫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양국 통상 갈등의 한복판에서 억울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산업계의 위기감을 반영해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와 기민한 외교적 대응을 촉구하는 등 플랫폼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국제 통상 분쟁의 핵심 뇌관으로 부상한 모습이다.
▲통상 마찰 뇌관 된 '플랫폼 규제'...공포의 美 무역법 301조 파장
12일 정치권 및 통상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이후 무역법 301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태세를 보이면서 한미 통상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 통상법 301조는 교역 상대국의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관행으로 인해 미국 기업의 상거래가 제한받거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고 판단될 경우 미국 정부가 단독으로 관세 인상, 수입 제한 등의 광범위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한 강력한 무역 제재 수단이다.
최근 USTR은 한국 정부가 추진해 온 다양한 디지털 규제 정책들이 미국 빅테크 기업 등 외국 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주시해 왔다. 만약 USTR이 실제 301조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면 이는 단순한 통상 마찰을 넘어 한국의 산업 정책과 규제 체계 전반이 미국의 강도 높은 검증대에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과거 수차례의 통상 분쟁 사례에서 입증됐듯, 미국 정부의 조사 착수 자체만으로도 해당 국가의 관련 산업과 기업들은 막대한 경영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된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라"...불확실성 늪 빠진 국내 플랫폼 생태계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가장 큰 우려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내 기업'으로 향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상 마찰이 본격화될 경우 규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사업의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 플랫폼 산업은 단순한 온라인 서비스를 넘어 유통 구조의 혁신, 대규모 물류 인프라 확대, 그리고 수많은 소상공인과의 상생 및 일자리 창출 등 국가 경제와 디지털 생태계에서 대체 불가능한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플랫폼 독과점을 막겠다는 취지의 국내 규제 논의가 자칫 미국발 통상 압박을 불러일으키는 명분으로 작용하면서 결과적으로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손발만 묶는 '역차별적 피해'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산업계 관계자들은 "플랫폼 산업이 국제 통상 분쟁의 표적이 돼 보복 관세나 무역 장벽의 희생양이 된다면 그 피해는 개별 기업 몇 곳의 실적 악화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디지털 경제 전반의 생태계가 위축되고 국내외 투자 얼어붙으며 고용 창출에도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불확실성이라는 늪에 빠진 국내 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통상 마찰로 비화하는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야권, 통상 갈등 책임론 제기..."국내 기업 지킬 실용 외교 절실"
이처럼 산업계의 우려가 증폭되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규제 논리에 매몰돼 국제 통상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11일 발표한 논평을 통해 "미국 무역대표부가 한국의 디지털 규제를 겨냥한 301조 조사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대한민국 산업 정책이 미국의 검증대에 오르는 중차대한 사안이 발생했다"며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지나치게 안일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박 수석대변인은 미국의 문제 제기가 이미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파장을 대비하지 못한 점을 꼬집었다. 그는 "김민석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인사들이 미국을 다녀올 때마다 '잘 해결되고 있다'고 말해왔지만 현실은 301조 위협으로 다가왔다"면서 "약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상황에서 이런 조사 압박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외교 참사'"라고 날을 세웠다.
야권의 이런 주장은 단순히 정치적 공세를 넘어 통상 갈등이 초래할 거시 경제적 타격을 방어해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양국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냉정한 국제 무역 현실 속에서, 정부가 특정 기업의 로비 탓으로 책임을 돌릴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전문가들 역시 한미 간 긴밀한 경제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자국 산업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정교한 줄타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기업의 불확실성을 덜어주고 디지털 경제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미국 당국과의 적극적인 협상에 나서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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