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가 개봉 31일째인 2026년 3월 6일, 누적 관객 수 1천만명을 돌파하며 연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는 2024년 '범죄도시4' 이후 약 2년 만에 탄생한 천만 영화로, 역대 한국 영화 중 25번째 기록이며, 사극으로는 '왕의 남자', '광해, 왕이 된 남자', '명량'에 이어 네 번째다.
영화 왕사남은 조선 제6대 국왕 단종의 비극적인 유배 생활과 그를 지켰던 실존 인물 엄흥도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이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되 감독의 상상력을 더해, 승자의 기록에서 지워진 패배자의 기억을 조명한다.
내용은 이렇다. 문종이 죽고, 어린 나이에 즉위한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이에 영월의 호장이던 엄흥도는 유배된 소년 왕 단종을 감시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 사이에는 인간적인 연민과 깊은 유대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단종의 삼촌인 금성대군이 단종에게 은밀히 편지를 보내 복위를 꾀하던 움직임이 실패로 돌아가고 단종에게 사약이 내려지는 비극적인 상황이 닥친다. 이 사건으로 단종과 마을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에 위기가 닥쳐오게 된다. 결국 어린 단종은 순박한 백성과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엄흥도는 목숨을 걸고 끝까지 왕의 곁을 지키며,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다.
사실 단종의 죽음은 정사와 야사(野史)에 따라 상반되게 묘사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조실록』은 세조 3년(1457년) 10월 21일, 유배지였던 영월에서 금성대군의 죽음 소식을 듣고 단종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세조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단종의 죽음을 자발적인 선택으로 미화하거나 조작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평가받는다
후대의 야사나 민간전승은 단종이 세조가 보낸 사약을 받거나 교살당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을 전한다. 실학자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에는 금부도사 왕방영이 사약을 받들고 갔으나 차마 전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한 하인이 활줄로 단종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참혹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민간전승에는 단종의 시신이 강물에 버려졌으나, 영월의 호장 엄흥도가 몰래 시신을 거두어 현재의 장릉 자리에 안장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한편, 연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왕사남은 차가운 권력 다툼보다는 유배지에서의 생활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미에 집중하지만, 동시에 “부당한 승리자의 기록보다 정의로운 패배자의 기억이 더 위대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목적이 정당하면 옳지 않은 수단도 정당화되는가?”라는 인류의 오래된 철학적 주제를 묻는다.
이와 관련해 대표적으로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어야 한다”는 상반된 주장을 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주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관점이 윤리적으로 우세하며, 과정의 투명성과 도덕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러한 의식은 후세가 단종과 세조의 발자취를 기억하는 방식으로도 잘 나타난다. 후세는 단종을 억울하게 희생된 ‘비운의 어린 왕’으로 기억하며, 역사적 현장 보존, 의례, 문화 콘텐츠화를 통해 계승하고 있다.
단종의 무덤인 영월 장릉(사적 제196호)을 비롯해, 단종이 유배되어 살았던 청령포(명승 제50호), 단종역사관이 대표적이다. 또한 단종제향 및 국장 재현, 장판옥(藏版屋)과 배식단(配食壇), 엄흥도 정려각 등 의례와 제향을 통해서도 기억하며, 『단종실록』뿐만 아니라, 소설 『단종애사』 등을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에는 왕사남과 같은 문화 콘텐츠로서 단순히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정의와 저항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인물로 재해석하고 있다.
반면에 세조는 조선 전기의 법과 제도를 완성하여 국가 기틀을 잡은 강력한 통치자였지만, 후세는 그를 ‘권력욕의 화신’으로 기억한다. 당연히 그의 발자취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역사적 보전 현장은 거의 없다.
이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대표적 사례이다. 영화 왕사남 또한 그 진리를 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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