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석주원 기자 | 코스피 6000시대에 소외주로 꼽혔던 국내 게임사들이 올해 초부터 강화된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에 나섰다. 실적 개선과 함께 현금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을 약속하며 과거 소극적이었던 환원 기조에서 한층 공격적인 모습으로 전환하는 모습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한국 증시의 가파른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게임사들의 주가는 제자리걸음에 머물거나 오히려 하락하는 등 흐름을 역행해 왔다. 실제로 2년 연속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한 게임업계 대장주 크래프톤의 주가는 지난 1년간 오히려 30%이상 하락하며 게임주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지난 1년간 KRX 반도체 지수가 113.5% 급등하는 동안 KRX 게임 TOP10 지수 상승률은 2.7%에 그치며 시장 평균을 크게 밑돈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거래대금 역시 게임 TOP10은 27조원 수준으로 반도체 지수(882조원)의 약 3%에 불과할 정도로 수급이 말라 있었다.
올해 초 기준으로도 KRX 게임 TOP10 지수의 연초 대비 상승률은 약 10% 수준에 머물며 코스피(30%대)와 코스닥(20% 안팎) 상승률을 크게 하회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실적은 나쁘지 않은데 밸류에이션이 정상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오며 투자자들의 불만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처럼 국내 게임주가 저평가 받는 이유는 게임 시장 자체의 변동성이 큰 데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로봇 등 첨단 산업 대비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 역시 게임주의 저평가 요인 중 하나로 지적받고 있다.
◆ 크래프톤, 1조원대 주주환원
크래프톤은 역대 최고 실적을 거두면서도 그동안 주주에 현금 배당을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아 비판의 대상이 돼 왔다. 이러한 시장의 비판을 의식한 듯 지난달 10일 크래프톤은 작년 실적발표와 함께 향후 3년간 총 1조원에 이르는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했다.
세부적으로는 매년 1000억원을 현금 배당에 활용하고 7000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해 전량 소각하겠다는 계획이다. 크래프톤 공시에 따르면 배당기준일 기준 자사주를 제외한 4445만3219주가 배당 대상이며 1주당 배당금은 2240원이다.
넷마블도 작년 결산 배당으로 718억원(주당 876원)의 현금 배당을 실시하면서 지배주주순이익의 약 30%를 돌려주고 이미 보유한 자사주 4.7%를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크래프톤과 마찬가지로 올해부터 향후 3년간 주주환원율 상단을 기존 최대 30%에서 최대 40%로 10%p 높여 예측 가능한 고정 환원율을 제시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IR에서 “2025년부터 3개년 동안 상법상 배당가능이익 범위 내에서 연결 지배주주 순이익의 30%를 현금 배당하겠다”는 중장기 정책을 공표한 바 있다. 발행 주식 총수의 1.9%에 해당하는 41만주(장부가 약 1270억원)를 소각해 자사주 지분율을 10%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으며 기존에 시행해 온 30%대 배당성향을 2027년까지 연장했다.
네오위즈는 1월 말 별도 공시로 “매년 직전 사업연도 연결 영업이익의 20%를 주주에게 환원한다”는 원칙과 함께 작년부터 3년간 실적과 무관하게 연간 최소 100억원 환원을 보장하는 중장기 정책을 발표했다. 최소 100억원 중 50억원은 자사주 매입과 소각, 나머지 50억원은 현금 배당할 방침이다. 영업이익 20%가 100억원을 넘으면 초과분도 배당과 소각에 활용한다.
최근 실적이 좋지 않은 컴투스와 웹젠도 주주환원 강화에 동참했다. 컴투스는 1월 초 발행주식 총수의 5.1%에 해당하는 자사주 64만6442주를 소각한다고 공시했는데 이는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의 절반에 해당한다.
컴투스는 작년까지 직전 3개년 별도 영업현금흐름(OCF)의 33%를 재원으로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병행하고 매입 주식의 50%를 소각하겠다는 3개년 계획을 이미 제시한 바 있는데 연초 자사주 소각은 이에 따른 결정이다. 오는 4월 주당 1300원의 현금 배당도 집행할 예정이다.
웹젠도 총 203억원의 배당과 더불어 발행주식 수의 10.5%에 달하는 자사주 소각을 결의했다. 올 연내 165억원 규모의 추가 비과세 특별배당도 예고해 실적 악화에도 배당과 대규모 소각을 결합한 공격적 환원 행보를 택했다.
◆ 게임업계 주주환원은 긍정적…과제는 지속성
게임업계가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고 나선 배경에는 정부의 주가 부양책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작년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코스피 5000 목표를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국회는 정부의 목표를 지원하기 위한 상법개정안을 통과시켜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등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 초 게임업계가 발표한 주주환원 정책에서 자사주 소각이 대거 포함된 이유도 상법개정안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지난 정부부터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도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게임 산업은 높은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낮은 주주환원 성향으로 인해 대표적인 저평가 업종으로 분류돼 왔다. 밸류업 지수 편입 여부가 기관 투자자의 수급과 직결되면서 주요 게임사들이 지수 편입을 위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주주환원 강화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주주환원 정책 강화만으로는 게임주의 저평가 기조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주주환원 강화는 밸류에이션 바닥을 다지는 역할을 할 뿐 근본적인 리레이팅은 결국 신작 라인업과 라이브 매출 회복에 달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작년 KRX 게임 TOP10 지수의 부진 이유도 신작 흥행 부진과 함께 대형 신작의 출시 연기가 종합적으로 작용했다. 증권가는 본 사업의 성과 없이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만으로는 투자 스토리를 완전히 바꾸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올해는 엔씨소프트가 ‘아이온2’를 비롯한 다수의 신작으로 매출 2조원 이상 목표를 제시했으며 상반기 펄어비스의 ‘붉은사막’과 넷마블의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을 비롯해 하반기 다수의 기대작이 출시를 예정하고 있는 만큼 작년보다 긍정적인 성과가 전망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올해 게임 업계의 주주환원 강화는 저평가와 규제 환경, 투자자 압박이 만든 필수 과제이자 신작 성과가 나오기 전까지 버틸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신작과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환원 정책도 일회성 이벤트로 소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콘텐츠 경쟁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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