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겉보다 중요한 건 작동 방식이다. 정치는 말과 행동으로 움직이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고유한 ‘문법’이 존재한다. 법과 제도의 언어, 권력의 계산, 대중의 심리, 미디어 전략과 정치 언어 등이 어떤 타이밍에 움직이며, 무엇을 감추고 드러내는지는 단순한 논쟁 너머의 작동 규칙을 따른다.
〈정치문법〉은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와 정국 전개를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정치 구조, 전략, 심리, 제도 작동 방식의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정치를 이해하고 싶다면, 정치의 문법부터 파악하라.
【투데이신문 박애경 발행인】 국민의힘의 ‘절윤’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의원총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 복귀 반대를 담은 결의문을 채택한 순간, 당은 봉합의 문장을 얻은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다음날부터 당내 정치는 후속 조치를 두고 내홍은 여전했다.
장동혁 대표는 “그 입장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못 박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선언으로는 부족하다”며 후속 조치를 압박했다. 같은 결의문을 놓고 전혀 다른 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장 대표가 택한 것은 ‘논란 종결’의 정치이고 오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변화 입증’의 정치다. 이 충돌은 단순한 노선 차이를 넘어 6·3 지방선거를 앞둔 국민의힘이 어떤 방식으로 지지층과 중도층을 동시에 상대할 것인가를 둘러싼 전략적 성격을 띠고 있다.
11일 장 대표는 결의문이 당의 최종 입장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고 오 시장은 같은 날 “국민이 기다리는 것은 가시적 변화”라며 지도부의 실천을 요구했다.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서울시장·충남지사 후보 신청 기을 하루 더 연장한 것도 결의문 이후에도 핵심 주자들의 정치적 결심이 정리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봉합문서 ‘결의문’, 진정성 시험지로
지난 9일 의원총회 결의문은 당 안팎의 거센 압박 속에서 나온 최소 공배수였다. ‘윤 어게인’과 선을 긋지 않으면 수도권과 중도층 선거가 어렵다는 현실 인식,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층과 완전히 결별할 경우 보수 핵심 지지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였다. 그래서 결의문은 강경파와 개혁파가 일단 함께 서명할 수 있는 수준의 문장으로 정리됐다.
장 대표는 결의문 채택 직후부터 일관되게 “더 이상의 논란은 지방선거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이 말의 정치적 번역은 분명하다. 의총 결의까지는 받아들이되, 그것을 계기로 지도부 교체나 윤리위 정리, 친윤·반윤 재편 같은 2차 파동으로 넘어가는 것은 막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장 대표는 결의문을 ‘마침표’로 쓰려 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파와 수도권 주자들이 보는 결의문은 정반대다. 그들에게 결의문은 ‘쉼표’다. 선언 이후에 인적 쇄신과 징계 재검토 같은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이번 절윤은 선거용 위장 절연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동훈 전 대표가 “숙청정치를 중단하고 책임자를 교체하지 않으면 국민은 또 속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비판한 대목은 바로 그 지점을 겨냥한다.
결국 결의문은 당을 묶지 못하고 오히려 당의 다음 과제를 노출했다. 무엇을 반대하느냐보다 누구를 정리하느냐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지금 벌어지는 논쟁은 ‘윤석열과 절연할 것인가’라는 1차 질문이 아니다. 이미 의총에서 형식적 답은 나왔다. 지금의 진짜 질문은 ‘그 절연을 누구의 자리 이동과 어떤 권한 조정으로 증명할 것인가’다.
오세훈 ‘미등록 정치’, 지도부 압박 전술
오세훈 시장의 행동은 단순한 불만 표출이 아니다. 그는 이미 한 차례 당의 노선 변화를 요구하며 후보 등록을 미뤘고, 공천관리위원회가 추가 접수 기간을 열어준 뒤에도 즉각 응하지 않으며 압박 수위를 유지했다. 이는 경선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라기보다 지도부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만큼 먼저 변화의 비용을 치르라는 요구에 가깝다.
서울은 국민의힘에 있어 가장 상징적인 승부처다. 오 시장은 그 상징성을 자신의 협상력으로 전환하고 있다. 당이 서울을 잃을 수 없다는 점을 알기에 스스로를 단순한 한 명의 후보가 아니라 ‘수도권 승리 가능성’ 자체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이다.
오 시장이 “선언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은 정치적 수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는 ‘절윤’의 진정성을 윤리위원장 경질이든, 징계 재검토든, 당내 갈등 구조를 손보는 방식이든, 가시적 조치로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는 개인의 명분과 당의 전략을 절묘하게 결합한다. 명분 차원에서 그는 수도권 확장성 회복을 위한 정당한 주문을 하고 있고 전략 차원에서는 지도부의 정치적 책임을 선행 조건으로 내걸어 자신의 입지를 높이고 있다. 이 때문에 오 시장의 후보 등록 유보는 단순한 기싸움이 아니라 장동혁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읽힌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압박이 당내 다른 세력의 요구와도 맞물린다는 점이다. 친한계와 개혁파는 이미 한동훈 전 대표 제명 문제, 배현진 의원 징계, 김종혁 전 최고위원 탈당 권고 등 이른바 ‘숙청 정치’의 흔적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 시장은 그 모든 요구를 직접 하나하나 열거하지는 않았지만, “지도부의 실천”이라는 문장으로 그 압박을 한데 묶어 던졌다. 그래서 그의 발언은 서울시장 경선 문제를 넘어 당의 권력 재편 문제로도 읽힌다.
한동훈 복귀, ‘뺄셈 정치’를 끝낼 시험대
이번 논란의 중심에 한동훈 전 대표가 들어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는 단지 제명당한 전직 대표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보수 재편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르는 상징이 돼 있다. 당내에서 ‘한동훈을 품지 못하면 보수대통합도, 수도권 확장도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지지층 규모 때문만이 아니다. 한 전 대표를 배제한 채 ‘절윤’을 말하면, 당이 과거의 권력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선거용으로만 메시지를 바꾼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한 전 대표 징계 문제는 인물 한 명의 복권 여부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과연 뺄셈 정치를 멈출 준비가 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잣대가 됐다.
한 전 대표의 비판은 날카롭다. 그는 윤 전 대통령의 정치 복귀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도 당이 ‘복귀 반대’만 말하는 건 허공을 치는 선언일 수 있다고 본다. 핵심은 윤어게인 노선과 숙청 정치의 정상화 여부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개혁파 내부의 문제의식과 정확히 겹친다. 다시 말해 지금 국민의힘 내부 논쟁은 윤석열 개인보다 윤석열 이후에도 남아 있는 정치 방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더 가깝다.
이 대목에서 장 대표의 딜레마가 선명해진다. 한동훈을 품으면 강성 친윤·윤어게인 지지층의 반발이 커질 수 있고, 품지 않으면 ‘절윤 결의’의 진정성이 무너진다. 고성국, 전한길 등 강성 보수 스피커들과의 관계 정리 요구가 함께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수통합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누구를 안고 누구를 끊을지 정하지 못하면 통합은 구호로만 남는다. 결국 장 대표가 맞닥뜨린 문제는 메시지 관리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전한길 ‘탈당 취소’, 내부 신호 혼선
강성 유튜버 전한길씨의 탈당 예고와 취소 해프닝은 당 지도부에 훨씬 더 치명적인 장면이 됐다. 그는 결의문 직후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장 대표를 압박했고, 이후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의 만류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탈당 의사를 철회했다. 그러나 변호인단 관계자가 곧바로 이를 부인하면서 사안은 다시 혼선으로 번졌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한 개인 유튜버의 오락가락 행보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아직 ‘윤 어게인’ 생태계와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다는 인상이다. ‘절윤’을 선언한 정당이라면 강성 외곽 인사의 탈당 여부가 이렇게까지 당의 진정성을 흔드는 사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은 전씨의 거취 하나가 장 대표의 진심을 가늠하는 잣대처럼 소비되고 있다.
이 장면이 위험한 이유는 지방선거 국면에서 메시지의 초점을 흐리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국민의힘은 후보 경쟁력, 수도권 전략, 지역 현안으로 프레임을 옮겨야 한다. 그러나 현재 당을 둘러싼 뉴스의 중심은 공약이나 인물 경쟁이 아니라 결의문의 진정성, 유튜버와 지도부의 관계, 윤리위와 숙청 논란이다. 이것은 선거 국면에 정당으로서는 치명적이다. 당이 스스로 선거의제를 만들지 못하고 내홍의 장면을 반복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씨에 대한 지지층의 반응마저 갈리고 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강성 보수층 내부에서도 ‘탈당 취소’에 대한 불신과 조롱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윤 어게인’ 진영 역시 결집된 단일체가 아니라는 뜻이다. 장 대표로서는 이 틈을 활용해 ‘절윤’의 선을 더 분명히 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 채 “이제 논란은 끝!”이라고만 말하면 지도부는 오히려 양쪽 모두에게 신뢰를 잃는다. 중도층은 진정성을 의심하고, 강성 지지층은 배신을 의심하는 구조다.
지선승리, 변화가 확인될 때 표로 이어져
이번 사태를 사건 중심으로 따라가 보면 흐름은 단순하다. 첫째, 의원총회가 ‘절윤 결의문’을 채택했다. 둘째, 장 대표는 이를 최종 입장이라며 추가 논의를 차단하려 했다. 셋째, 오세훈 시장은 후보 등록 유보 카드를 쥔 채 “선언은 부족하다”며 실천을 요구했다. 넷째, 한동훈 전 대표와 개혁파는 윤리위, 징계, 숙청 정치의 정상화를 후속 조치로 제시했다. 다섯째, 전한길 씨의 탈당 취소 소동은 절윤의 진정성 논쟁을 더 키웠다. 이 다섯 개 장면이 이어지면서, 국민의힘의 문제는 더 이상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거리두기만이 아니게 됐다. 지금의 본질은 장동혁 대표가 결의문 이후의 정당 운영을 통제할 수 있느냐, 그리고 선거 전에 당의 얼굴을 바꿀 수 있느냐다.
정치문법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장 대표는 ‘끝내는 리더십’을 택했고 오 시장은 ‘증명하라는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한 전 대표와 개혁파는 여기에 ‘정리 없는 통합은 없다’는 조건을 붙인다. 그래서 지금 국민의힘의 절윤 논쟁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둘러싼 과거 청산 문제가 아니라 누가 지방선거 전 보수 재편의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를 둘러싼 미래 권력투쟁으로 비친다.
장 대표가 정말 결의문을 마지막 입장으로 만들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이제는 결의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 말의 종결을 원한다면 행동의 시작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오세훈의 미등록, 한동훈의 반격, 강성 지지층의 반발, 수도권 유권자의 냉소가 한꺼번에 이어질 수 있다. 정치는 선언으로 박수 받을 수 있지만, 선거는 변화가 확인될 때만 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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