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직장인들의 지갑도 덩달아 얇아지고 있다. 업무는 물론, 일상생활에도 AI 프로그램이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이를 활용하기 위해 지출하는 '구독 비용'이 고정지출로 자리매김한 탓이다. 이미 OTT·배달·쇼핑 플랫폼의 '정기 구독(대금을 지불하고 일정 기간 서비스를 활용하는 행위)'이 일상화 된 상황에서 AI 프로그램까지 정기 구독 항목에 더해진 데 대해 직장인들은 "구독료를 합치면 월세를 두 번 내는 것과 다름없다"는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안 써도 문제, 써도 문제" 월세·관리비 수준까지 늘어난 구독료에 청년 직장인 휘청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 중견기업에 재직 중인 직장인 김원준 씨(33·남·가명)는 얼마 전 적금 월 납부액을 낮췄다. 최근 들어 고정지출이 부쩍 늘어난 탓이다. 과거 고정지출 항목은 월세와 관리비, 수도·전기 공과금, 인터넷·휴대폰 요금, 헬스장 이용료 등이 전부였지만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늘기 시작한 구독비용이 어느 새 월세·관리비와 맞먹는 수준까지 커졌다. 가장 결정적 계기는 일상생활은 물론 회사 업무에서도 AI 프로그램 활용이 일상화되면서 부터였다.
포털과 비슷한 성격의 생성형 AI 프로그램부터 업무에 활용한 전문 기능을 가진 AI 프로그램까지 전부 유료 결제가 필수였고 대부분의 결제는 월 단위로 이뤄졌다. 기존에 쓰던 OTT 플랫폼 2곳과 쇼핑 관련 플랫폼, 배달 플랫폼 등의 월 정기 결제액과 새로운 AI 프로그램까지 월 정기 결제액까지 추가되면서 고정적으로 나가는 전체 구독료는 월 40만원이 조금 넘었다. 전체 고정지출 항목에서 월세·관리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금액이다. 앞으로 한 두 건의 구독료만 추가되면 50만원 남짓한 월세·관리비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김 씨는 "예전에는 월 고정지출이 월세나 공과금, 통신비 등이 전부였는데 구독경제가 일반화되면서 월 구독료가 고정지출 항목에 포함됐다"며 "특히 예전엔 월 구독료라 해도 쇼핑·배달·OTT 전부 합쳐 몇 만원 수준에 불과했는데 요즘엔 AI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몇 만원에서 몇 십만원 하는 AI 프로그램을 몇 개 사용하다 보니 전체 고정지출에서 구독료 비중이 상당히 커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도 쓰고 싶은 AI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구독료 부담 때문에 선뜻 결제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급증하는 AI 구독 소비, 대부분 해외로…"한국형 AI 프로그램에 정책적 지원 수반돼야"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원하는 기간만큼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를 일컫는 '구독소비' 이용자가 매 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지난해 초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의 94.8%가 구독서비스를 이용해 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해 본 구독서비스는 유튜브, OTT 등의 동영상 스트리밍(60.8%)이었다. 이어 쇼핑(52.4%), 인터넷·TV 결합상품(45.8%), 음원 및 도서(35.5%), 정수기(33.8%), 외식배달(32.5%) 등의 순이었다.
정기적으로 이용하는 구독서비스 건수는 3~4건이라는 응답자(39.8%)가 가장 많았다. 이어 1~2개 33.9%, 5~6개 17.2%, 7개 이상 9.1% 등의 순이었다. 월 평균 구독 서비스 지출액은 3만원 미만이 30.5%로 가장 많았다. 3~5만원 미만(22.9%), 5~10만원 미만(22.3%), 15만원 이상 14.9%, 10~15만원 미만(9.4%)이 그 뒤를 이었다. 당시 대한상의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수요가 확대되는 추세인 만큼 기업들은 소비자 니즈에 최적화된 구독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지난 한 해 동안 상황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대한상의의 예측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서서히 대중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던 AI 구독 서비스 이용자가 1년 새 크게 증가한 결과였다. 앞서 대한상의 조사에서 새롭게 이용해 보고 싶은 구독서비스 상위권을 차지한 '생성형 AI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실제 소비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한경에이셀 리서치팀이 지난 1월 발표한 '2025년 한국 생성형 AI 소비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챗GPT 등 주요 7개 서비스의 신용카드 결제 건수(추정치)는지난해 12월 말 기준 166만6000건에 달했다. 불과 2년 전인 2024년 1월 말 5만2000건에 비해 32배 급증한 수치다.
생성형 AI 서비스 건당 평균 결제액은 기존의 구독서비스 지출 규모보다 더욱 컸다. 건당 평균 결제액은 작년 연간 기준 약 4만6000원이었다. 개인 결제는 건당 평균 3만4700원, 법인은 10만7400원 등이었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독서비스 이용자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전체 구독 결제액 규모도 눈에 띄게 불었다. 지난해 12월 한 달간 국내 전체 생성형 AI 서비스 구독 결제액은 803억원으로 2024년 1월 34억원에서 24배나 증가했다. 연 반복 매출(ARR)로 환산하면 9636억원에 달하는 수준이다. 넷플릭스 운영 회사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2024년 기준 8945억원)와 티빙(4354억원)의 연 매출 보다 많은 금액이다.
주목되는 점은 AI 기술의 발달로 전문 기능을 탑재한 AI 서비스도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생성형 AI 서비스 이외에 추가로 또 다른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점차 보편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갖춰진다는 의미다. 한경에이셀 리서치팀 자료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들은 챗gpt,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 서비스를 가장 많이 구독하고 있었지만 일부 기능에 특화 된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일례로 이미지 생성 특화 서비스인 미드저니 점유율(결제액 기준)은 3.7%, 깊이 있는 정보 탐색·검증에 집중하고 있는 퍼플렉시티는 1.1% 등이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AI 서비스 이용 자체가 일상생활은 물론 생계유지를 위한 필수품으로도 자리매김한 만큼 이용료에 대한 국민 부담을 낮추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우리 국민들이 즐겨 쓰는 AI 서비스가 해외 기업이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수 활성화와 국부유출 방지 차원에서라도 국내 서비스 활성화를 필연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외국 민간 기업의 AI 구독료에 직접 관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간접적인 지원책은 가능하다"며 "AI 바우처 사업을 확대해 청년 창업가나 스타트업, 중소기업의 비용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주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해외 기업에 편중된 AI 서비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국산 AI 서비스의 활성화와 기술 자립이 시급한 시점이다"며 "장기적으로 국부 유출을 막고 내수를 살릴 수 있는 국산 AI 프로그램 육성에 더욱 힘을 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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