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속에서도 산부인과 필수의료 체계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산부인과 기피 현상과 낮은 수가, 높은 의료사고 부담이 겹치면서 분만을 포기하는 의료기관이 늘고 있는 것. 또 출산 연령 상승으로 고위험 임신이 증가하는 반면 분만 인프라는 줄어드는 ‘위험한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산부인과학회는 9일 ‘산부인과 필수의료 체계 강화를 위한 종합 정책 제안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재관 이사장(고려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전체 분만 건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산모 연령 상승과 만성질환 증가로 고위험 임신·분만은 오히려 늘고 있다”며 “분만인프라는 한 번 붕괴되면 회복하는 데 10~20년이 걸리는 만큼 지금이 사실상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학회는 ▲분만 인프라 강화 ▲진료수가 및 DRG 제도 개선 ▲부인암 공공정책수가 신설 등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정책 패키지를 제시했다.
학회는 구체적인 수치를 근거로 들었다. 학회에 따르면 국내 분만 가능 의료기관은 지난 10여 년 사이 약 700곳에서 400곳 수준으로 감소했다. 전국 시·군·구 가운데 분만기관이 한 곳도 없는 지역은 이미 30%를 넘어섰다. 분만기관이 한 곳만 남은 지역까지 포함하면 절반 이상의 지역이 ‘분만 위기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출산 난민’을 유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분만 환경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산모 평균 연령이 상승하면서 고위험 임신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 첫 출산 평균 연령은 2000년 약 27세에서 최근 33세 안팎까지 올라섰다. 고령 임신은 임신성 고혈압, 당뇨, 조산, 제왕절개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상훈 사무총장(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분만기관이 없거나 한 곳만 남은 지역의 경우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 운영비를 포함한 재정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며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담당하는 의료진에게 야간·휴일·응급 분만 가산 수가를 부여해 위험과 책임에 맞는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학회는 산부인과 기피 현상의 주원인으로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목했다. 기피 원인의 80% 이상이 의료사고 위험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산후출혈, 폐색전증, 양수색전증 등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국가 책임 보상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산부인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고위험 산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는 미숙아, 저체중아, 호흡곤란 등 다양한 합병증 위험이 높다. 즉 출산 직후 소아청소년과와 협업은 필수다. 고위험 분만의 경우 신생아중환자실(NICU) 치료와 산모 집중 관리가 동시에 필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재 분만 인프라 논의 과정에서는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협진 체계 구축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위험 센터가 있어도 환자를 못받는 이유다.
진료수가와 DRG(포괄수가제) 개선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현재 산과 DRG 체계에서는 예정 제왕절개와 응급 제왕절개, 태반조기박리나 전치태반 등 응급 상황이 사실상 동일하게 평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학회는 위험도와 응급도에 따른 DRG 세분화와 고위험 산모 가산 체계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령 산모, 다태임신, 임신성 고혈압, 당뇨병, 이전 제왕절개 등 고위험 요인을 반영한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김희선 부사무총장(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고위험 분만은 산부인과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모와 신생아 치료가 동시에 이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산과와 소아과가 함께 작동하는 분만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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