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38)씨는 매일 아침 체중계 앞에서 한숨을 쉰다. 건강검진 결과지에는 ‘비만’과 ‘대사증후군 주의’라는 경고가 반복된다.
새해마다 운동을 시작하고 간헐적 단식도 시도했지만 야근과 회식이 이어지는 직장생활 속에서 체중은 쉽게 줄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는 말을 건네지만, 김씨에게 비만은 노력만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문제다.
김씨의 사례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성인 비만율은 지난 10여 년 동안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비만을 개인의 생활습관이나 의지의 문제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
반면 독일과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비만을 암이나 당뇨병처럼 관리해야 할 질병으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의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3월 4일 ‘세계 비만의 날’을 맞아 비만을 바라보는 한국과 해외의 접근 방식 차이가 주목된다.
독일은 2024년부터 ‘비만 질병 관리 프로그램(DMP Adipositas)’을 시행하고 있다. 독일 연방합동위원회(G-BA)가 법정 건강보험 체계를 기반으로 도입한 제도로, 비만을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으로 공식 인정했다.
이에 따라 환자는 동네 의원부터 대학병원까지 이어지는 표준화된 치료 체계를 통해 상담과 운동·영양 교육, 약물치료 등을 받을 수 있으며 건강보험 적용도 가능하다.
이탈리아 역시 의회 결의를 통해 비만을 ‘만성·재발성·진행성 질환’으로 규정했다. 이 결의는 비만 치료를 국가 필수 의료 보장 항목(LEA)에 포함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
남미 콜롬비아는 2009년 ‘비만법(Law 1355)’을 제정해 비만을 공중보건의 핵심 과제로 명시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비만 환자를 ‘관리 실패한 개인’이 아니라 ‘치료받을 권리가 있는 국민’으로 바라본다.
반면 한국은 아직 비만을 질병으로 명확히 규정한 법적 근거가 없다. 비만 관련 정책은 국민건강증진법에서 일부 다뤄질 뿐이며, 대부분의 치료와 상담은 미용 목적이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도비만 수술을 제외하면 상당수 비만 치료가 비급여 영역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실제 비만 지표는 악화되는 추세다.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 따르면 성인 남성 비만율은 2018년 대비 2020년 42.8%에서 48%로 증가했고, 여성 비만율 역시 같은 기간 25.5%에서 27.7%로 상승했다.
다만 국회에서는 관련 법 제정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은 2024년 11월 ‘비만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비만기본법)’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비만 예방의 날 지정, 3년 주기 실태조사, 전문 인력 양성 및 전담 조직 설치 등이 포함됐다.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도 ‘비만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비만 질환의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국가가 예방과 관리 정책을 종합적으로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사 출신인 이 의원은 “비만은 외모나 개인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만성질환 증가와 사회적 비용 확대 등 국가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비만 관리 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비만 관리의 시급성을 지적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간 약 16조 원에 달한다. 이는 흡연이나 음주로 인한 비용보다 큰 규모다.
김민선 대한비만학회 이사장(서울아산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은 “비만은 유전적·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병임에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개인의 의지 문제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며 “법적으로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해야 환자들이 숨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매년 3월 4일은 ‘세계 비만의 날’이다. 올해 주제는 ‘비만에 대응해야 할 80억 가지 이유(8 Billion Reasons to Act on Obesity)’다. 비만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대응해야 할 보건 문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고령 사회 진입과 비만 증가라는 이중 과제 속에서 한국 역시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하고 정책적 대응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편 대한비만학회는 1991년 연구회로 출범해 1992년 공식 학회로 설립됐다. 학회는 춘·추계 학술대회와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비만의 원인과 치료에 대한 연구 교류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제학술지 ‘JOMES’를 연 4회 발간하고 있다. 또한 비만 치료에 대한 대국민 인식 개선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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