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 신철원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 = 바늘 없이 혈당을 측정할 수 있다는 스마트워치 광고가 온라인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당뇨 관리 가능”, “비침습 혈당 체크”, “실시간 혈당 모니터링”이라는 문구는 소비자의 불안을 파고든다. 특히 당뇨병 환자와 고령층에게는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일상 관리를 편리하게 해줄 혁신 기술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달콤한 약속 뒤에는 심각한 소비자 기만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2025년 독일 연방네트워크청(Federal Network Agency)의 시장 감시 보고서는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했다. 바늘 없이 혈당을 측정할 수 있다고 광고된 다수의 스마트워치가 실제로는 혈당 측정 기능을 전혀 보유하지 않았던 것이다. 온라인 판매 목록 1,266건이 위반 의심 대상으로 적발됐고, 약 500만 대가 유통된 것으로 파악됐다. 오프라인 점검에서도 2,400개 모델 중 58%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는 일부 불량 제품의 문제가 아니라, 허위 광고가 구조적으로 확산된 시장 실패 사례다.
문제의 본질은 기술 과장이 아니라 ‘건강 정보의 허위 제공’이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 스마트워치 단독으로 의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혈당 수치를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역시 2024년 2월, 비침습 혈당 측정 기기의 정확도 부족과 오측정으로 인한 저혈당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정확하지 않은 혈당 정보는 단순한 오차가 아니라, 잘못된 인슐린 투여나 치료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생명 안전 문제다.
그럼에도 국내 온라인 쇼핑몰과 해외 직구 플랫폼에서는 유사 제품이 여전히 판매되고 있다. 소비자는 기술 검증 능력이 없다. 광고 문구와 후기, 판매 순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의료기기 여부를 판단하고 안전성을 관리해야 할 식품의약품안전처, 허위·과장 광고를 규제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자정되지 않는다.
스마트워치는 분명 유용한 건강관리 도구다. 심박수, 활동량, 수면 패턴 등 참고 지표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혈당계’는 아니다. 기술 발전에 대한 기대와 소비자의 불안을 결합해 허위 기능을 판매하는 행위는 혁신이 아니라 시장 왜곡이다.
소비자는 혁신을 원한다. 그러나 혁신은 과학적 검증 위에 서야 한다. 건강을 담보로 한 허위 광고가 반복된다면,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가 지불하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과 단호한 집행이다. 소비자의 생명과 신뢰를 지키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기본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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