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지형도를 바꿀 '거버넌스 대격돌'이 막을 올렸다.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이한 재계의 시선은 하반기 시행을 앞둔 개정 상법에 쏠려 있다. 소수 주주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제도적 변화를 목전에 두고, 경영권 방어벽을 구축하려는 기업 측과 이사회 진입 및 주주환원을 압박하는 행동주의 펀드 간의 수싸움이 유례없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상법 개정' 공포… 기업들, 이사회 정비로 '수성전' 돌입
오는 7월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 확대와 9월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앞두고 주요 상장사들은 이사회 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 전략은 '인원 축소'와 '임기 연장'이다. 집중투표제 하에서 이사 선임 인원이 많을수록 소수 주주 측 인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화그룹 계열사들이 이사 임기를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는 정관 변경을 추진하는 한편, 삼성전자와 셀트리온, LS일렉트릭 등은 이사 정원 상한을 대폭 줄이거나 임기 시차제를 도입하며 대응에 나섰다. 이는 한 번에 교체되는 이사 수를 최소화해 외부 인사의 진입 장벽을 높이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행동주의 펀드 '공세'…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압박 가속
기업들의 수성전에 맞서 팰리서캐피탈, 얼라인파트너스 등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은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들은 배당 확대를 넘어 자기주식 소각,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 등 구체적인 거버넌스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자사주 취득 후 1년 내 소각을 의무화한 상법 개정 흐름에 따라 기업들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SK㈜가 발행주식의 20%에 달하는 5조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전격 발표한 데 이어 삼성전자(16조 원), SK하이닉스(12조 원) 등도 역대급 주주환원 보따리를 풀며 표심 잡기에 나섰다.
'셀프 보수' 제동… 경영진 보수 한도 승인 '뜨거운 감자'
올해 주총의 또 다른 뇌관은 경영진의 보수 산정 방식이다. 지난해 대법원이 남양유업 사례에서 이른바 '셀프 보수 의결'을 무효로 판단한 이후, 이사 보수 한도 승인 과정에서 주주의 견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별이해관계자인 이사 겸 주주의 의결권 행사가 엄격히 제한됨에 따라, 지배주주 지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보수 안건이 부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등 전문가 그룹은 올해 주총이 개정 상법 발효 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기업과 이를 저지하려는 주주 간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제도 변화의 폭풍 전야 속에서 펼쳐지는 이번 주총 결과는 향후 국내 기업 거버넌스의 표준을 결정짓는 중대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폴리뉴스 차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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