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진승 기자] 18세기 조선후기 화단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중국의 관념적인 풍경을 답습하던 기존 화풍에서 벗어나 우리의 강산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그 중심에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이 있었다.
조선후기 '진경산수(眞景山水)화'로 우리에게 친숙한 겸재 정선은 최근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된 <인왕제색도> 를 통해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마침 올해는 겸재 정선의 탄생 3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인왕제색도>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겸재정선미술관은 300년 전 양천 현령으로 재직하며 진경산수의 꽃을 피웠던 겸재 정선의 예술혼이 깃든 곳이다. 2층에 위치한 두 개의 상설전시실은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화성(畵聖)’의 자리에까지 오른 정선의 삶과 예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다.
겸재정선기념실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금강산과 관련된 그림들이다. 정선이 활동한 당시는 금강산을 비롯한 명승지를 여행하고 이를 기록한 기행 시문과 그림 제작이 크게 유행한 시기였다. 정선은 30대 중반인 1711년과 1712년 두 차례 금강산을 유람하고 남긴 두 개의 화첩 <신묘년풍악도첩> 과 <해악전신첩> 에 그 진면목을 담았다. 해악전신첩> 신묘년풍악도첩>
특히 국보 <금강전도> 는 정선 예술의 절정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내금강 전역을 원형 구도에 담아내며 날카로운 암산(골산)은 수직준으로, 부드러운 흙산(토산)은 미점으로 표현해 음양의 조화를 극대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금강전도>
정선의 예술이 가장 완숙기에 접어든 곳이 바로 이곳 양천(강서구)이다. 당시 양천은 한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문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던 명소이기도 했다. 65세의 나이에 양천 현령으로 부임한 그는 한강 변의 빼어난 절경을 화폭에 옮기며 진경산수화의 독자적인 경지를 확립했다.
정선의 진경산수는 단순히 실경을 베끼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현장에서 느낀 생생한 감동을 전하기 위해 때로는 풍경을 과감하게 재구성하는 등 독창적인 수묵화법을 사용했다. 그의 시도는 '정선풍'이라는 조선후기 회화의 새로운 화풍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전시실 한켠에는 정선과 그의 평생지기 시인 사천 이병연의 우정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는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본다"는 시화환상간(詩畫換相看)의 전통이 잘 드러나 있다. 이병연의 시가 정선의 그림이 되기도 하고, 정선의 그림 위에 이병연의 찬문이 더해지는 과정은 시·서·화 일치를 추구했던 조선시대 문인들의 협업을 보여준다.
◇ '붓 무덤'을 만든 예술혼, ‘와유(臥遊)’ 문화를 유행시키다
미술관 2층에 위치한 상설전시실은 겸재정선기념실과 원화전시실로 구분돼 있다. 기념실이 주로 정선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면, 원화전시실은 그가 남긴 원화의 생동감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정선의 실제 작품들에서 확인되는 수직준, 피마준, 미점 등의 기법은 그가 우리 산천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보여준다. 정선이 사용한 붓이 닳아 무덤을 이룰 정도였다는 이야기는 그가 얼마나 지독한 노력파였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부채의 굴곡진 화면에 그림을 넣는 '선면화'를 통해 진경산수를 대중에 확산시키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정선은 문인사회에 ‘와유(臥遊)’라는 새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누워서 즐긴다는 뜻의 이 말은 직접 명승지를 가지 않더라도 그림을 통해 자연을 즐긴다는 의미로 쓰였다. "머리맡에 두고 실컷 보는 것에 비기겠는가"라는 그림 속 시구는 정선의 그림이 당시 사대부들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는지 알려준다. 마치 그의 그림은 300년 전 조선사회에 '랜선 여행'을 가능케 한 매개체였다고 볼 수 있다.
겸재정선미술관은 그간 단편적으로 접했던 정선의 화폭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중국 화풍의 모방에서 벗어나 조선의 진짜 얼굴을 찾으려 했던 그의 노력은 정체성을 고민하는 현대 예술가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올해로 탄생 350주년을 맞은 정선의 작품들을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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