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견딜 수 없는 사랑/이언 매큐언 /한정아 옮김/복복서가
사랑은 인간을 가장 숭고한 존재로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취약한 존재로 떨어뜨린다. 영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이안 맥큐언(Ian McEwan)의 장편소설 견딜 수 없는 사랑(Enduring Love)은 바로 그 취약한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사랑을 다룬 수많은 소설이 감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면, 맥이완은 정반대의 질문을 던진다. 사랑은 과연 얼마나 이성적인 감정인가.
이 소설은 사랑을 로맨스가 아니라 심리적 사건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 사건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뒤흔드는지를 차분하면서도 치밀하게 보여준다. 맥이완 특유의 냉정한 문체와 과학적 사고가 결합된 이 작품은 발표 당시 영국 문단에서 “지성과 서스펜스가 결합된 현대적 심리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야기는 한없이 평화로운 장면에서 시작된다. 과학 저널리스트 조 로즈는 연인 클라리사와 함께 영국의 한 들판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그때 갑작스러운 사고가 벌어진다. 강풍에 휘말린 열기구가 통제력을 잃고 들판 위를 떠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달려가 밧줄을 붙잡는다. 조 역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풍선은 점점 더 높이 떠오르고, 결국 한 남자가 밧줄에 매달린 채 하늘로 끌려 올라가 추락해 목숨을 잃는다.
이 장면은 현대 영문학에서 가장 강렬한 도입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몇 분에 불과한 사건이지만, 맥이완은 그 짧은 순간에 공포, 책임, 인간의 선택을 압축해 넣는다. 누군가는 밧줄을 놓았고, 누군가는 끝까지 붙잡았다.
그리고 바로 그 현장에서 조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름은 제드 패리.
“당신도 나를 사랑합니다”
사고 이후 이상한 일이 시작된다. 제드 패리가 조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편지의 내용은 단순하다.
“당신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오해처럼 보인다. 그러나 곧 상황은 집착으로 변한다. 패리는 전화와 편지, 심지어는 조의 집 주변을 배회하며 끈질기게 접근한다.
그가 믿는 것은 단 하나다.
조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
문제는 그 확신이 현실과 전혀 관계없는 망상이라는 점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런 증상을 ‘드 클레랑보 증후군’, 즉 에로토마니아라고 부른다. 상대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하는 망상적 집착이다.
맥이완은 이 병리적 사랑을 단순한 범죄 서사로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서서히 흔들리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한다.
조는 과학 저널리스트다. 그의 세계는 증거와 논리 위에 서 있다. 그래서 그는 패리의 행동을 정신의학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성적 설명은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연인 클라리사는 오히려 조의 태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패리의 집착을 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조 스스로 편집증에 빠진 것은 아닐까.
이 지점에서 소설은 묘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독자는 조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클라리사의 의심이 옳은지 고민하게 된다.
맥이완은 독자의 판단을 흔들며 질문을 던진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맥이완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특징이 있다. 바로 과학적 사고와 인간 감정의 충돌이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다. Enduring Love에서도 그 특징은 분명하다.
조는 사랑을 논리로 이해하려 하고, 클라리사는 사랑을 감정으로 받아들인다. 두 사람의 관계가 흔들리는 이유도 바로 그 차이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과연 설명 가능한 것일까. 맥이완은 이 질문을 집요하게 붙잡는다.
이 소설에는 흥미로운 창작 일화가 있다. 맥이완은 작품을 쓰기 전 실제 정신의학 논문들을 읽으며 ‘드 클레랑보 증후군’ 사례를 연구했다고 한다.
또한 소설의 시작을 장식하는 열기구 사고 장면 역시 실제 사건 기록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사람이 위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치밀한 준비 덕분에 작품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현실적 설득력을 갖게 된다.
맥이완의 초기 작품은 어둡고 불편한 이야기로 유명했다. 단편집 첫 사랑 마지막 의식(First Love, Last Rites) 같은 작품에서는 인간의 억압된 욕망과 폭력성을 거칠게 드러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작품은 점차 지적 깊이를 더해 갔다. 견딜 수 없는 사랑은 바로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작품이다.
이후 발표된 대표작 속죄(Atonement)이나 토요일(Saturday)에서도 그는 인간의 삶을 도덕적 선택과 인식의 문제로 탐구한다.
특히 속죄에서 기억과 죄의식을 다루었다면, 이 소설은 인식과 현실 사이의 균열을 파헤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의 원제 엔듀링 러브(Enduring Love)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직역하면 ‘지속되는 사랑’이다. 그러나 작품을 읽다 보면 이 제목이 단순히 오래가는 사랑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enduring’은 견디는 것이라는 의미도 함께 품고 있다.
조와 클라리사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시험대에 오른다. 외부의 집착, 내부의 의심,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공포.
사랑은 결국 감정이 아니라 견딤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맥이완의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불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은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다. 견딜 수 없는 사랑은 바로 그 간극을 드러낸다.
논리로 설명하려는 인간과, 설명되지 않는 감정 사이의 충돌. 그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은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사랑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망상일까.
맥이완은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남긴다.사랑이란 결국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것을 헌신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집착이라 부른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단순한 심리 스릴러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해부한 현대적 문학 실험으로 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게 된다. 사랑은 달콤한 감정이기 전에 인간의 이성이 끝없이 시험받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뉴스컬처 최병일 skycb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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