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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랑 떠든 내역 ‘수사보고서’에 적극 기재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달 19일 살인과 특수상해,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는 김소영(20)을 구속 송치했다. 당초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죽을 줄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해 범행의 고의성을 부인했다. 경찰이 김씨의 휴대전화 등을 포렌식해 조사한 결과 김씨가 범행 전 챗GPT에 ‘수면제와 술을 같이 먹으면 어떤가’, ‘죽을 수도 있느냐’ 등의 질문을 남긴 정황을 포착했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혐의를 기존 상해치사에서 살인으로 변경했다.
실제 수사 현장에서 ‘AI 대화 내역’이 피의자의 내심(내면의 의사)을 파악할 주요 증거로 쓰이는 추세다. 포털 검색은 주로 단어를 이용하는 반면 AI 챗봇에는 주로 문장 형태로 질문하다보니 범행 의도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어서다.
일선 경찰서의 한 과장은 “직접 증거까지는 아니지만 범행을 모의했는지, 고의적이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정황 증거로 자주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 수사관도 “최근 피의자가 AI 챗봇과 떠든 내용을 수사보고서에도 적극 기재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법조계도 최근 수사에서 AI 대화 내역이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에 따르면 음주운전의 경우 사고 이후 추가로 술을 마셔 혐의를 벗으려는 이른바 ‘술타기’ 수법이 흔한데 이를 AI 대화 내역이 꿰뚫기도 한다고 전했다. 운전대를 잡기 전 챗GPT에 ‘4잔이면 단속이 되느냐’고 질문한 사실이 확인돼 혐의가 인정된 경우가 속속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검색 기록·카톡 대화’보다 민감도 높아…신중한 접근 요구
피의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은 이같은 상황에 진땀을 빼고 있다. 과거에는 온라인 검색 기록이나 지인과의 메시지 정도만 방어하면 됐지만 최근에는 의뢰인의 속사정이 그대로 담긴 AI 대화 내역에 수사가 집중되면서다.
경찰은 사건과 관련한 키워드를 일일이 입력해 포렌식을 진행하는데 ‘날 것’의 정보가 담긴 챗GPT 대화 내역의 경우 피의자 사생활 침해 문제가 더 민감해질 수 있다는 취지다. 또 현행법상 피의자 측 변호인은 포렌식 현장에 참여해 수사관이 영장 범위 밖의 키워드를 입력하거나 관련 없는 기간의 데이터를 빼내려 할 때 즉각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법무법인 하이브의 정다솔 변호사는 “(AI 대화 내역에는) 사소한 호기심부터 은밀한 고민까지 담기다 보니 혐의와 무관한 ‘우울증’이나 ‘상담’ 등의 키워드를 통해 피의자 성향을 파악하려는 수사기관의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계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경찰 등 수사기관이 AI 대화 내역을 ‘자백’으로 간주하는 데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AI에 털어놓은 개인의 이야기가 다른 어떤 전자정보보다 민감한 탓이다.
김명주 AI안전연구소장은 “AI는 내담자에게 우호적으로 답변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대화하는 과정에서 의도가 증폭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양섭 국립군산대 법학과 교수는 “다른 데이터보다 본인 생각이 더 잘 드러나는 민감도가 큰 자료”라며 “수사 현장에서도 AI 챗봇 포렌식에 대해 고민이 깊은 상황”이라 전했다.
AI 챗봇을 다루는 경찰 내부의 전문성도 함께 높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두원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는 “일부 AI 챗봇은 작년까지만 해도 포렌식을 하면 내역이 다 나왔는데 올해부터 막혔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AI 챗봇을 쓴 스마트폰이나 PC만 있다면 수사기관이 포렌식을 통해 즉각 추출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운영사들이 점차 고객 개인정보 보호에 신경 쓰는 추세라는 설명이다. 나아가 범죄자들은 이를 교묘히 이용해 AI 기술을 범행 도구로 활용하는 한편 수사망에서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안티 포렌식’에 대응하려는 경찰력 보강이 필수라는 게 정 교수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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