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오로지 귀여움으로 승부하는 성인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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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오로지 귀여움으로 승부하는 성인 동화

엘르 2026-03-11 05:42:06 신고

행복한 꿈을 꾸게 해 주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실제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을 압축된 시간 안에 펼쳐 보이며 끝내는 나름의 결말까지 성취하죠. 그런 영화들은 돌아보면 역경조차 즐거움으로 기억되는 '현실적 비현실'을 그립니다. 바꿔 말하면 어떤 정교하고 새로운 세계관도 현실을 피해갈 순 없습니다. 신조차도 인간과 닮은 모습으로 빚어졌으니까요.


대개 SF물이 그러하듯,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이 '현실적 비현실'을 담습니다. 우리 태양계에서 금성 쪽으로 이동하는 적외선 광선이 발견된다는 설정이 바탕입니다. 광선이 강해진 탓에 태양광이 감소하는데, 그러면 지구의 온도는 떨어지고 기후 변화로 인한 식량난에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요. 각국의 정상들은 머리를 맞댑니다. 인류 위기 극복을 위해 이들이 꾸린 프로젝트의 이름은 '헤일 메리'. 미식축구에서 절체절명의 순간에 '모 아니면 도'를 노리고 실행하는 전술을 뜻합니다.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 우주가 무대라면 도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판돈도 어마어마합니다. 인간에게 가능한 최고의 과학 지식과 상상력, 그리고 목숨 몇 개까지 걸렸습니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과학자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는 중학교 교사를 하던 중 '헤일 메리' 프로젝트에 납치(?)당합니다. 그는 학계에서 비주류 학설을 내세웠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대로 연구를 접어버리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레이스는 '골디락스 존은 엉터리다'라며 생명체가 반드시 물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죠. '골디락스 존'이란 개념은 지구 생명체 기준의 거주 가능 영역을 일컫는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물 없이도 살 수 있는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게 그레이스의 이론입니다. 프로젝트 책임자 에바 스트라트(산드라 휠러)는 여기에 이끌려 그레이스에게 외계 미생물 연구를 시킵니다. 그레이스는 연구 도중 외계 미생물이 대부분 수분으로 이뤄져 있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이론이 틀렸음을 깨닫습니다. 좌절할 새도 없이 연구는 계속되고 그레이스는 인류를 절멸시킬 수도 있는 미생물, '아스트로파지'를 번식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그레이스가 정식으로 '헤일메리 프로젝트'의 일원이 되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영화는 이 기억을 모두 잊은 그레이스가 우주 한복판에서 홀로 깨어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자신이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우주선을 함께 탄 동료들의 시체입니다. 그레이스는 이들의 장례를 치르며 우주선에 묻은 과거들을 순차적으로 떠올려냅니다. 많은 기억이 복원됐지만 아직 '왜 여기에 있는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그레이스는 우주선에 오르기 전 아스트로파지가 태양계 다른 별들의 빛까지 빼앗고 있다는 것, 이 미생물을 통해 깨끗한 대량의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이 에너지는 무려 11.9광년 떨어진 곳에 우주선을 보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곳에는 타우 세티라는 항성이 있는데요. 주변의 별들이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돼 빛을 잃어갈 때 이 항성 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여기서 힌트를 찾고자 우주선을 띄운 거고요. 불행히도 타우 세티까지 갈 수는 있지만, 돌아올 수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우주선에 안의 사람들은 '자살 특공대'입니다.


가까스로 타우 세티 부근까지 온 그레이스는 거대한 우주선과 마주칩니다. 두 존재는 공격보다 연결을 택하죠. 그레이스는 거기 타고 있던 외계 생명체와 대면하는데, 당연히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손짓발짓으로 대화한 끝에 이 생명체가 아스트로파지에 감염된 40 에리다니 항성의 에리드라는 행성에서 왔다는 정보까지 습득합니다. 목적이 같은 둘은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교류하게 되는데요. 그레이스는 외계인에게 영어로 말하는 번역기를 달아주고 '로키'라는 이름을 선물합니다. 바위로 만든 거미처럼 생겼기 때문이었죠. 이들은 아스트로파지의 비밀을 풀기 위해 힘을 합친 동료이자 친구로 거듭납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결국 그레이스와 로키의 버디 무비입니다. 사람과 다른 모습이지만 무해한 성격, 어눌한 인간 말투와 대비되는 출중한 능력, 거기다 따뜻한 마음까지 갖춘 로키에게 부정적 감정을 갖기란 어렵습니다. 로키는 영화가 인류의 위기라는 현실 위에 조각한 완벽한 비현실입니다. 절대 마주칠 일이 없는 곳에서 만난 외계 생명체가 공격성 없이 인간을 상대하고, 심지어는 과거사와 현재 목적이 비슷하다며 공감에 유대감까지 느낍니다. 목숨을 바쳐 인간의 생명을 구하려는 모습은 인간보다 낫습니다. 이 작품은 모두의 행복한 꿈 속에 로키라는 친구의 원형 하나를 새롭게 새기고, 그와 그레이스의 관계성으로 승부합니다. 노력 하나 하지 않았는데 눈 앞에 나타난 완벽한 친구는 가족도 개도 없는 중년을 소년으로 만듭니다. 사실상 과학과 화려한 시각효과는 부차적인 관전 포인트입니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그런데 영화 속 현실과 비현실이 묘하게 아귀가 맞지 않습니다. 인류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 그레이스에게는 사명감도 허무도 없습니다. 어차피 인간은 죽지만, 지금 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인 그가 사지로 내몰린 거죠. 결국 '전차의 딜레마'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인데 선로를 바꾸는 레버를 쥔 건 그레이스가 아닌 에바입니다. 에바의 말마따나 지구에는 '가족도 개도 없는' 그레이스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살려야 하는 동기를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전혀 설명하지 않습니다. 에바가 무지성으로 반복하는 '(인류를) 살려야 한다' 식의 구호도 뚜렷한 이유가 없으니 강요로만 들립니다.


원작 소설에는 미약하나마 그레이스가 자살 임무에 참여하게 되는 동기가 나옵니다. 아스트로파지를 막지 않으면 가르치던 중학생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주선에 타죠. 영화는 이 과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에바의 잔혹함에 비해 그레이스의 낙천과 익살이 과하고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프로젝트를 함께 한 동료들의 서사도 거의 삭제됐습니다. 영화가 집중하고 싶은 것이 있을 테고, 러닝타임의 문제도 있겠죠. 하지만 로키 이외의 캐릭터가 우주에서의 환상적 우정을 빛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 한계입니다. 막상 사명감을 갖고 우주로 간 이들은 애초에 죽은 채로 등장하니까요. 다만 이 모든 찜찜함은 로키의 귀여움 앞에 힘을 잃습니다. 도무지 눈빛이 늙지 않는 라이언 고슬링의 우주 원맨쇼도 편안하게 볼 만합니다. 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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