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이 공급망 재편과 신약 개발 경쟁이라는 두 축에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의약품 공급망을 국가안보 전략으로 격상하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한편, 기업 차원에서는 희귀의약품 지정 등 개발 단계 이벤트가 투자 기대를 자극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대만 정부는 의약품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국가 의약품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을 향후 4년간 추진하고 총 240억대만달러(약 1조1241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중국과 인도에 집중된 원료의약품(API) 공급 구조가 지정학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최근 ‘건강한 대만 추진위원회’ 회의에서 “대만은 의약품과 의료기기 수입 의존도가 높고 일부 품목은 외국 적대 세력의 통제 가능성에 노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 API의 약 80%가 중국과 인도에서 공급되는 구조 역시 주요 위험 요인으로 지목됐다.
대만 정부는 이에 따라 △국내 생산 확대 △국가 주도 전담위원회 구성 △스마트 물류·저장센터 구축 등 세 가지 전략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강화할 방침이다. 최소 50개 핵심 의약품을 대상으로 정책 보조금과 건강보험 수가 인센티브 등을 제공해 국내 생산을 확대하고, ‘내셔널 팀(National Team)’ 형태의 전담위원회를 통해 31개 API 제조사와 143개 제약사의 협력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스마트 물류·저장센터를 구축해 의약품 재고와 유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기술 기반 관리 체계도 마련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공급 위험을 조기에 감지하고 유통 효율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대만의 의약품 자급 정책은 단순한 산업 정책이 아니라 국가안보 전략의 성격을 갖는다”며 “API와 완제의약품 생산 확대는 바이오·제약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고 해외 투자 유치에도 긍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기업 차원에서는 희귀의약품 지정과 같은 개발 단계 이벤트가 투자 심리를 자극하는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온코닉테라퓨틱스의 PARP 저해제 계열 항암 후보물질 ‘네수파립’은 최근 소세포폐암(SCLC) 적응증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희귀의약품 지정(ODD)을 받았다. 네수파립은 앞서 췌장암과 위암 치료제로도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바 있어 하나의 후보물질이 여러 암종에서 지정된 사례로 꼽힌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온코닉테라퓨틱스 주가는 장 초반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시장의 강한 반응을 보였다.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사 이엔셀 역시 차세대 중간엽 줄기세포 치료제 ‘EN001’이 FDA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을 당시 주가가 상승한 바 있다.
다만 희귀의약품 지정이 신약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FDA는 환자 수가 20만명 미만인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세액 공제와 수수료 면제, 허가 후 최대 7년간 시장 독점권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지정 기준은 질환의 희귀성과 미충족 의료 수요이며 약물의 임상 효능이나 상용화 가능성을 직접 입증하는 단계는 아니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관계자는 “희귀의약품 지정은 해당 질환에 대한 치료 필요성을 규제 당국이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우선심사 등 규제 완화가 적용될 수 있어 상업화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희귀질환 적응증을 먼저 확보한 뒤 더 큰 시장으로 확장하는 전략도 제약사들이 자주 활용하는 방식이다. 희귀질환 치료제는 임상시험 환자 수나 시험 요건이 완화되는 경우가 있어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신약 개발 경쟁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제약바이오 산업의 전략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국가 차원의 공급 안정 정책과 기업의 신약 개발 전략이 맞물리며 산업 경쟁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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