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HD현대중·한화오션·플랜트 하청노조, 원청에 "교섭하자"
원청 업체들, 법률 자문 등 대응 방안 고심…'일단 지켜보자' 분위기도
(전국종합=연합뉴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법률)이 10일 시행되면서 HD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대규모 사업장이 있는 울산을 비롯한 전국 주요 산업도시에서 원청을 상대로 한 하청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원청 업체들은 반응을 자제하면서도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법률 자문을 하거나 법적 논란을 피하기 위한 조치를 준비하는 분위기다.
◇ 현대차·HD현대중 등 대기업 하청노조, 줄줄이 '교섭 요구서' 전달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이날 원청인 HD현대중공업에 교섭 요구서를 전달했다.
지난 1월 이미 두 차례 공문을 보냈으나 회사 측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노란봉투법 시행일에 맞춰 다시 교섭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날 울산 본사에 교섭 요구서를 직접 전달한 오세일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장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사례에서 법원이 원청의 하청노조 단체교섭 요구 거부를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했다"며 "개정 노조법 역시 같은 취지이기 때문에 사측이 교섭을 거부하면 위법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올해 요구안으로 임금 30% 인상, 원청과 같은 성과급 지급, 8시간 1공수(일당) 인정, 최소 5일 유급 휴일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측이 거부하면 원청 노조의 교섭 요구안에 하청 노조 안을 넣어 교섭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대차 하청노조(현대차비정규직지회)도 이날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를 통해 원청에 교섭 요구서를 보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 전환, 고용 불안 해소 방안 등을 원청과 교섭 테이블에서 논의하기를 원한다.
울산플랜트건설노조는 이날부터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 전국플랜트건설노조를 통해 SK, 에쓰오일, 고려아연 등 석유화학업체 3곳과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종합건설업체 4곳에 순차적으로 교섭 요구 공문을 보낸다.
이들 하청 노조는 안전 관련 지시, 업무 관리 감독을 실질적으로는 원청으로부터 받고 있기 때문에 원청이 교섭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업 도시 거제에선 한화오션 하청노동자와 사내 구내식당 등 복지업무 담당 노동자들이 속한 하청 노조가 한화오션에 올해 5번째 교섭요구서를 보냈다.
이들은 성과급 지급과 노동안전, 고용안정, 노조 활동, 복지 분야 등에 대해 원청과 교섭을 요구하며 지난달 25일부터 천막농성도 이어오고 있다.
인천에선 금속노조 한국GM 부평비정규직지회와 부품물류지회가 원청인 한국GM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들 노조는 고용 불안 해소, 사업장 안전, 임금 체불 등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단체교섭을 촉구할 방침이다.
충북에선 민주노총 산하 일부 공공분야 노조가 원청인 지자체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조 측은 그간 해결되지 않았던 임금 협상과 처우 개선 문제 등을 다시 교섭 테이블에 올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노동계 "진짜 사장과 교섭…원청, 교섭 테이블 회피 말아야"
노란봉투법 시행을 환영하며 원청 책임 강화를 요구하는 노동계의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오늘부터 하청노동자와 원청사용자 간 교섭 시대가 열린다"며 "개정 노동조합법 취지는 하청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결정짓는 진짜 사장과 직접 교섭하고, 원청사용자를 대상으로 투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법 개정 취지에 따라 원청교섭이 본격화되면서 발생할 다양한 상황에서 하청노동자들 손을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대전본부는 "대전지역에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콜센터 노동자, 건설 노동자, 제조업 사내 하청노동자 등 수많은 직종이 원청과의 교섭 요구를 시작했다"며 "정부는 법 개정의 취지에 맞게 시행령과 해석 지침을 즉각적으로 적용하고, 사용자는 소송과 탄압이라는 과거의 방패막이 뒤에 숨지 말라"고 밝혔다.
대전민중의힘도 성명서를 내고 "개정법 시행은 노동시장 내 뿌리 깊은 불평등을 도려낼 계기로, 올해는 원청 교섭 실현의 원년이 되어야 한다"며 "정부는 법 취지를 왜곡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교섭 테이블을 회피하는 원청 사용자를 강제할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대기업 중심 원청, 즉각 반응 자제 속 대응책 물밑 모색
산업 각 분야 하청 노조가 직접 교섭을 요구하자 원청은 즉각적인 반응은 자제하면서도 대응 방안을 고심 중이다.
일부 기업은 법무법인 등에 자문하는 등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일단 노란봉투법이 시행되고, 정식으로 교섭 요구서를 받았기 때문에 이전처럼 하청 노조에 마냥 대응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은 노조로부터 교섭 요구가 왔다는 사실을 알리는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를 준비하고 있다.
노조법은 회사가 교섭 요구를 받으면 7일간 해당 사실을 공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노조는 노동위원회에 회사 측의 시정을 원하는 진정을 제기할 수 있고, 부당노동행위 등 법적 논란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다른 일각에선 원청이 '하청의 교섭 대상'이 되는지, 즉 '사용자성'에 대한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일단 지켜보자는 움직임도 확인된다.
한 석유화학업체 관계자는 "업종 형태, 하청의 직접 생산 관여 정도, 원청의 지시 범위 등이 모두 달라서 섣불리 대응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사안별로 행정·법적 판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은 6개월간의 시행 준비 기간을 거쳐 이날부터 시행됐다. 이에 따라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이 강화되고, 노동쟁의 범위가 확대된다. 반면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는 제한된다.
(김상연 박영민 박세진 이주형 김근주 기자)
cant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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