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청 사용자와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원청의 사용자 책임 범위가 확대되면서 간접고용·하청 노동자와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등 노동자들이 교섭권 보장을 요구하며 원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이하 공동투쟁)은 10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노란봉투법 시행에 발맞춰 ‘비정규직 당사자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밝혔다.
이들은 “이재명 정부는 하청노조의 원청교섭에 대해서도 하청노조 간의 교섭창구단일화를 적용하겠다고 한다”며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교섭 관행 등’에 따라 교섭단위를 분리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하청노조의 원청교섭권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해석지침에 따르면 노동위원회가 원청 사용자성과 교섭의제를 제한적으로만 인정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20년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개정 시행되는 노조법이 현실에서는 원청에 사용자책임 면죄부를 주고 끝없는 소송전으로 내몰게 될 형국”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예상을 둔 이유로 공동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공동투쟁에 따르면 동희오토 하청노조 측은 회사가 노조 탈퇴를 유도하는 등 노조 활동을 약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과 관련해 조정중지 결정을 받았지만 원청이 아직 교섭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타이어사내하청지회와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는 임금체불 문제를 겪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부가 모범 사용자 역할을 해야 하며 최저임금 수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코레일네트웍스와 한국도로공사 콜센터 등 일부 공공부문에서도 원청의 책임 있는 대응이 부족하다고 규탄했다.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 또한 간신히 원청과 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원청이 교섭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논의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이런 ‘진짜 사장’의 책임을 강제해야 할 정부는 오히려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하기는커녕 진짜 사장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만드는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보장에 관한 기본법’(이하 일하는 사람 기본법)을 제정하겠다고 한다”며 “과연 ‘원청 교섭 시대가 열렸다’고 말할 수 있나”고 반문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국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콜센터지회 박민영씨는 “원청은 교섭에 나와 말도 안 되는 차별 환경과 원청의 노예계약이나 마찬가지인 과업지시서의 경영평가지표로 상담사를 줄 세우고 등급으로 저성과자를 만드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강인석 지회장은 “교섭은 하청노동자들에게 강요돼 온 저임금 구조, 장시간 노동, 초고위험 작업, 그리고 다단계 하청 착취 구조를 바꾸는 과정이어야 한다”며 “원청교섭 테이블은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으로 채워져야 한다”며 책임 있는 교섭 이행을 촉구했다.
정부가 프리랜서와 특수고용직 등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대한 목소리도 나왔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안병호 위원장은 “권리만 나열하고 권리가 지켜지도록 사업자에게 노력만 당부하는 것으로 권리가 보장될 수 없다”며 “어떤 산업이건 막대한 자본력으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과 실질적인 교섭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행 첫날을 맞아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 단체들이 원청교섭을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집회에 나섰다.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원청교섭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으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에서 원청 교섭을 요구하는 ‘투쟁 선포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는 연세대 등 15개 대학 청소·경비·주차·시설관리 노동자들이 원청교섭을 요구했다. 민주일반연맹은 정부서울청사 정문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대정부 원청교섭을 주장하고 공공운수노조는 같은 장소에서 발전산업 고용안전협의체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원청교섭 쟁취’를 외치는 투쟁 선포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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