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백패커 코스프레
2017년 7월 10일 / 로즈뱅크 스테이션 / 싸늘한 눈초리
우리가 어제 시내를 돌아다닌 건 오늘 노점 필 자리를 봐놓기 위함이었다. 이제 캠핑이 끝나서 캠핑용품을 팔아야 하는데 돌아다니다 보니 노상 금지 표지판이 보인다. 우리 마음을 어떻게 읽었지? 여긴 피해야겠다.
중심 거리를 벗어나 사람들이 조금 덜 다니는 길에 우리가 이고 지고 다닌 세간을 늘어놓았다. 꼴이 초라했지만 가스통이나 텐트처럼 거의 새것도 있어서 싸게 내놨으니 금방 팔리겠지 했는데 모두가 힐끔거리고 지나갈 뿐 아무도 흥정하질 않는다.
‘WE ARE BACKPACKERS’라고 쓴 종이를 붙이고 배낭여행자 동정표를 좀 얻어볼까 한 건데 재밌는 추억은커녕 시선이 곱지 않다. 여기는 백패커가 자유롭게 여행 다니는 곳이 아니고 자유 여행자를 향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것 같다. 더구나 동양인을.
어떤 아저씨가 우리를 겁주려는 건지 놀리려는 건지 물건을 보고 히죽대다가 하나를 그냥 가져가려고 해서 우리가 뭐 하는 거냐 따지니 “너희 돈 많으니까 여행 온 거 아냐? 왜 가난한 백패커인 척 해?”라며 물건을 휙 던지고 간다.
정곡을 찔렸다. 창피했다. 잘못한 건 없지만 괜히 마음이 쭈글쭈글해졌다. 가격이 너무 높았나? 그런가 보다. 비싸게 팔아서 아무도 안 샀나 봐 하면서 창피한 마음을 이해시키려는데 꼭 잘못을 인정한 기분이다. 마침 근처 건물 경비원 아저씨가 와서 나가라길래 다시 주섬주섬 싸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옆방에 묵어서 아는 체하고 지내던 짐바브웨 사람 심바가 우리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가 세일즈맨이라면서 대신 팔아보겠단다. 심바는 물건을 들고 나가 호스텔 직원들에게 영업하고, 호스텔 앞을 지나던 행인을 붙잡아 가스통에 아직 가스가 많이 남았으니 트렁크에 넣고 다니다가 캠핑할 때 쓰라며 끈질기게 흥정하더니 결국 헐값에 팔아주었다.
물건을 사준 사람들에게 작은 물건은 덤으로 끼워주고 수저 포크 담요 같은 건 호스텔에 기증하고 나머지는 버렸다. 진짜 아까운 것만 배낭에 쑤셔 넣고 저녁에 호스텔을 떠났다.
이제 짐바브웨로 간다. 로즈뱅크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야간 버스 터미널로 간다.
여성경제신문 윤마디 일러스트레이터 madimadi-e@naver.com
윤마디 일러스트레이터·작가
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다. 여행 드로잉을 기반으로 서사를 만들어가는 에세이 작가로, 한 장소에서 사람이 기능하는 구조를 파악하고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의 구조와 삶의 조건을 들여다본다. 현재 일본 여행기 <유니폼> 과 아프리카 여행기 <아프리카 그림일기> 를 연재하며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아프리카>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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