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유 시장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지정학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하루 사이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이란발 전쟁 공포로 배럴당 120달러 선을 위협하던 유가는 미 행정부의 강경한 수습 의지와 주요 7개국(G7)의 시장 안정책이 맞물리며 단숨에 80달러대로 회귀했다.
'후계 리스크'와 '감산'이 불러온 장중 폭등
9일(현지시간) 아시아 시장에서 국제 유가는 이란의 권력 승계 소식에 즉각 반응했다. 사망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차남이자 강경파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차기 지도자로 선출됐다는 소식은 시장에 '전쟁 장기화'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던졌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를 비롯해 UAE, 이라크, 쿠웨이트, 카타르 등 주요 산유국들이 잇따라 감산에 돌입했다는 소식은 공급 우려에 불을 지폈다.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장중 각각 119.5달러, 119.48달러까지 치솟으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수준의 고점을 형성했다. 당시 일간 상승폭은 최대 31.4%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유가 꺾은 '트럼프-G7'의 정책 공조
하지만 이 같은 급등세는 서방 국가들의 발 빠른 대응으로 반전됐다. G7 재무장관들이 "전략 비축유(SPR) 방출을 포함한 모든 필요한 조처를 할 준비가 됐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시장의 패닉 바잉(Panic Buying)에 제동을 걸었다.
결정적인 한 방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란 전쟁이 마무리 수순(very complete)"이라며 조기 종식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특히 물류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을 언급하며 "선박들이 통과 중이며, 필요시 직접 장악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혀 공급망 마비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일축했다.
또한 크렘린궁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해 이란 사태의 신속한 종식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외교적 움직임은 시장에 강력한 '긴장 완화' 신호를 보냈다.
90달러선 붕괴… 남은 과제는 '공급 회복 속도'
외교·정책적 변수와 더불어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며 유가는 가파르게 하락했다. 뉴욕증시 마감 무렵 브렌트유는 배럴당 88.42달러, WTI는 84.94달러까지 밀려나며 전쟁 이전 수준인 지난 6일 종가보다도 낮은 가격대를 형성했다.
다만 시장에는 여전히 '공급망 상흔'에 대한 경계감이 남아있다. 원자재 데이터업체 케플러(Kpler)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즉각 해제되더라도, 페르시아만 일대의 석유 수출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최소 6~7주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유가는 극심한 변동성을 지나 안정권에 진입했으나, 실제 물리적인 원유 흐름이 정상화될 때까지 시장의 민감도는 당분간 높게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폴리뉴스 차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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