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한국 설상 종목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 쾌거
최가온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한국 선수단에 대회 첫 금메달을 안겼다. 한국 선수가 올림픽 설상 종목에서 포디움 맨 위에 선 것은 그가 처음이다. 최가온의 쾌거로 1960년 스쿼밸리 동계올림픽부터 세계 무대에 도전해 온 한국 설상 종목은 새로운 챕터를 열게 되었다.
우상 클로이 김 꺾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극
최가온은 2월 13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스키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획득해 88.00점의 클로이 김(미국)을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11월생인 최가온은 자신의 우상인 클로이 김이 2018년 평창 대회 때 세운 이 종목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 기록(17세 10개월)도 경신(17세 3개월)했다.
최가온의 금메달 과정은 한 편의 영화와 같았다. 큰 기대 속에 시도한 1차 시기에서 최가온은 1080도(공중 세 바퀴) 회전을 시도하다가 보드가 파이프 턱에 걸리면서 크게 넘어졌다. 한동안 일어서지 못하자 의료진이 긴급 투입됐고, 다행히 최가온은 스스로 일어나 경기장을 내려왔다. 하지만 부상이 우려되며 남은 시기 도전이 쉽지 않아 보였다. 실제 2차 시기를 앞두고 전광판에 ‘출전하지 않는다(DNS)’는 표시가 떴다가 지워지기도 했다.
7세 때부터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최가온은 불굴의 의지로 2차 시기에 나섰다. 그러나 다시 한번 넘어졌다.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고, 1위 자리(88.00점)에는 올림픽 3연패를 노리던 클로이 김이 있었다. 그리고 운명의 마지막 3차 시기, 최가온은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며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코스 상황을 고려해 1080도 고난도 기술 대신 900도와 720도 회전을 구사하면서 마지막 착지까지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최고 난도 기술을 쓰지는 않았지만 높이를 비롯해 완성도가 높았다. 12명 중 11위에 처져있던 그의 점수는 90.25점. 단숨에 1위로 도약했고, 이전까지 선두였던 클로이 김이 3차 시기에서 미끄러지며 최가온의 금메달이 확정됐다. 비록 올림픽 3연패에는 실패했지만 클로이 김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최가온의 우승을 축하했다.
최가온과 클로이 김이 펼친 명승부에 전 세계 언론들도 주목했다. 최가온의 금메달은 미국 NBC가 선정한 대회 전반기 10대 뉴스에, 미국 매체 애슬레틱이 뽑은 전반기 7대 명장면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설상 훈련 환경 개선 움직임 커질 듯
스노보드 하프파이프는 반원통형 슬로프에서 선수들이 펼쳐 보이는 공중회전과 점프 등의 연기를 심판들이 채점해 순위를 정하는 경기다. 스노보드 종목 중엔 가장 유명하다고 볼 수 있으며,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다 2010년대 들어서는 아시아 국가 선수들이 약진했다.
최가온은 현재 한국 스노보드를 이끄는 많은 선수와 마찬가지로 취미로 스노보드를 즐긴 아버지의 영향으로 입문해 성장했다. 2023년 1월 세계적인 익스트림 스포츠 이벤트 X게임에서 최연소 기록(14세 2개월)으로 파이프 종목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기 시작해, 같은 해 12월에는 생애 첫 월드컵 우승을 달성하며 세계적 선수로 부상했다. 그러나 2024년 초 스위스 락스에서 열린 월드컵에 출전했다가 훈련 중 허리를 크게 다치며 큰 시련을 겪었다.
척추가 골절돼 수술을 받고 1년간 재활에만 매진했던 최가온은 지난해 초 복귀해 월드컵 동메달을 목에 걸며 부활을 알렸고, 올림픽이 열리는 이번 시즌엔 자신이 출전한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완전히 기량이 물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가온의 금메달을 비롯해 남자 평행대회전에 출전한 김상겸의 은메달, 유승은의 여자 빅에어 동메달까지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을 낸 한국 설상의 미래는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이번 대회 설상 종목에서 입상한 세 명의 메달리스트 중 2명이 2008년생이기 때문이다. 최가온과 유승은은 4년 뒤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다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다만 열악한 국내 설상 훈련 환경은 개선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최가온도 금메달을 딴 뒤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여름에도 훈련할 수 있는 에어매트 시설이 있는데, 한국은 없다. 이제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에어매트는 눈이 없을 때 점프와 회전 등 공중 동작을 익힐 수 있는 시설로, 고난도 공중 동작을 펼치는 설상 종목엔 비시즌 꼭 필요한 훈련 장비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도 이번 올림픽 결산 기자회견에서 “최가온이 설상 종목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땄지만, 들여다보면 실상은 에어매트 하나 없는 곳에서, 해외를 돌아다녀 딴 금메달이다. 불모지에서 금메달을 딴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올림픽을 계기로 훈련 시설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며 “훈련 시스템을 재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opyright ⓒ 이슈메이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