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가 기어코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주요 도시를 공습했고, 이 첫 공격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이란은 이에 맞서 중동 전역의 미군 기지를 드론과 미사일로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 글을 쓰는 3월 9일 현재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 공격을 주고받고 있다.
분명히 전쟁이다. 그러나 1월 3일 베네수엘라 침공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 납치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인류사에 익숙한 전쟁과는 양상이 많이 다르다. 베네수엘라도, 이란도 최근 미국을 위협한 적이 없다. 두 나라 정부 다 전쟁을 막으려고 미국과 협상하던 중이었고, 이란의 경우는 협상이 상당히 진척되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최후통첩이나 선전포고 없이 일방적으로 기습 공격에 나섰다. 미합중국 헌법상 참전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의회의 결의도 없었고, 심지어는 의회가 공격 개시를 사전에 인지하지도 못했다.
한데 이런 와중에 미국 안에서는 전에 없던 또 다른 갈등이 벌어졌다. 인공지능 '클로드' 개발사 앤트로픽이 자사 기술을 군사적 감시와 공격에 활용하는 데 반대하자 전쟁부(국방부)가 앤트로픽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장관은 인공지능 조달업체를 구글과 오픈AI로 제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급기야 지난 5일 미국 기업인 앤트로픽이 미국 정부에 의해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이 논란은 실리콘밸리를 넘어 전 세계의 화제가 됐으며, 인공지능의 군사화에 맞서 QuitGPT(챗지피티 불매) 운동이 시작되기도 했다.
이 두 사건, 즉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과 전쟁부-앤트로픽 갈등이 같은 시기에 벌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둘 사이에는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기술 격변과 전쟁 양상 변화는 같은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한 몸인 이 변화로 인해 지금 존립의 위험에 처한 것은 이란 신정체제도 아니고 앤트로픽도 아닌 21세기 민주주의다.
기술 급변으로 인한 전쟁 양상 변화
미국+이스라엘 대 이란 전쟁이 시작되자 이와 비교할만한 전례로, 미국이 걸프만에서 벌인 두 차례의 전쟁이 소환됐다. 하나는 1991년의 제1차 걸프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2003년의 이라크전쟁(제2차 걸프전쟁)이다. 두 전쟁 모두 군사행동이 시작되기 전부터 격렬한 비판을 받았고, 특히 2003년 전쟁은 개전 전부터 대규모 반전운동에 부딪힌 사례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러나 작금의 전쟁에 비하면, 이 두 전쟁은 과거의 일반적 전쟁 양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제1차 걸프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UN 안전보장이사회는 몇 차례에 걸쳐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략에 항의하는 결의를 채택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진용이 갖춰졌다. 개전 5일 전에는 미합중국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상원, 하원이 42일간의 무력 사용 승인안을 가결함으로써 미군이 전쟁에 나설 근거가 마련됐다. 이 표결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쿠웨이트 측 전쟁 피해자들의 증언은 이후 거짓이거나 과장이었음이 밝혀졌지만 말이다.
이라크전쟁 역시 개전 과정은 비슷했다. 이라크가 다량의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던 당시 미국의 전쟁 명분은 날조였음이 결국 드러났지만, 미국 의회는 이를 근거로 무력 사용 승인을 결의했다(2002년 10월). 미국 정부는 이렇게 국내에서 헌법 절차에 따라 침공을 준비했을 뿐만 아니라, 모호한 내용이나마 UN 안보리 결의를 받아냄으로써 국제적 차원에서도 구색을 맞췄다. 25년 전에는 어쨌든 이랬다.
이 두 차례 전쟁 때에도 공화당 정부였고 지금도 공화당 정부이지만, 이 사례들과 지난 두 달 동안 감행된 침공들을 비교하면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트럼프 정부는 UN 결의는 고사하고 자국 헌법에 규정된 개전 절차조차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버렸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같은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이게 '위헌'이라고 항의하는 의원조차 없다. '황당한 전쟁이지만 우리 정부가 시작했으니 일단 도와야 한다'(미시건 주 출신 상원의원 엘리사 슬롯킨)는 정서가 야당인 민주당을 지배한다. 즉, 미국은 이미 대통령이 헌법과 의회를 무시하고 전쟁을 일으켜도 이를 막거나 돌이킬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2기 트럼프 정부를 낳은 마가(MAGA) 공화당이 그만큼 '무도'한 세력이기 때문인가? 위선적 허상일 뿐인 국제법은 물론이고 자국 헌법조차 짓밟은 준비가 돼 있는 '(준)파시스트' 세력이 집권한 탓인가? 절반쯤은 그 때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의 진실이 있다. 트럼프 정부가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 납치와 이란 최고지도자 폭살을 통해 미합중국 대통령의 권한을 더욱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무도함을 뒷받침해주는 전에 없던 물질적 토대가 갖춰진 덕분이었다. 바로,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의 최첨단 기술이다.
팔란티어 재단 같은 빅테크가 국방부(현재는 전쟁부)와 협력해 지난 20여 년간 개발한 감시 기술이나 데이터 처리 기술이 없었다면, 적대국 주요 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천문학적 규모의 데이터를 취합-분석해 의미 있는 정보를 뽑아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과 드론 등을 결합한 새로운 무기 체계가 없었다면, 적대국 최정상 지도자라는 한 개인이나 그 주위의 작은 그룹을 정밀하게 공격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기술이 뒷받침되었기에 트럼프 정부는 고전적 선전포고 대신 대통령 부부 납치나 최고지도자 제거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니 전쟁부가 인공지능 개발 빅테크들을 규율하는 주무부처로 나설 만도 하다.
사실 우리는 이미 15년 전에 최첨단 전쟁의 '예행연습'을 목격한 바 있다. 2011년 5월 1일 미군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에 은신한 오사마 빈 라덴을 급습, 총살한 '넵튠 스피어 작전'이 그것이다. 이때도 당시 기준 최첨단 기술이 동원됐고,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핵심 인사들이 다른 주권국 안에서 미군이 제멋대로 벌이는 작전을 모니터로 실시간 관전했다. 정색하고 다시 보면, 충분히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타깃이 어디까지나 '테러리스트'였고,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 같은 '미국' 지도자들이 이런 초현실적 작전을 '테러리스트' 이외의 대상으로 확대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이 믿음은 어리석은 낙관론일 뿐이었다. 미국 자본주의와 유일 패권 모두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이 나라 정치 지도자들은 어느덧 과거의 금도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현 미국 지도자들에게 '넵튠 스피어 작전' 같은 전례는 더 이상 '예외적' 군사행동의 한계치가 아니다. 오히려 '정상적' 군사행동의 새로운 기준점이다.
이제는 미국이 손봐줘야 할 적대국 수장이나 집권세력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기만 하면 된다. 일단 그러고 나면 인공지능이나 로봇, 드론 기술을 동원해 언제든 적대국 권력 핵심부를 암살하거나 납치하거나 폭사시킬 수 있다. 의회의 표결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동맹국 회의나 UN을 신경 쓸 이유도 없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이 아니었던 이런 군사 작전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정규군을 대거 동원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의회든 시민들이든 동맹국이든 모두 미국 정부를 무조건 지지해야만 한다. 전쟁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2026년 첫 두 달 동안 세계인의 뒤통수를 친 미국 정부의 잇단 폭주는 단순히 2기 트럼프 정부의 임기응변이나 광기의 폭발만은 아니다. 이것은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에 돌입한 인류가 맞이한 새로운 전쟁 논리다.
21세기 민주주의는 과연 전쟁을 제어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국가도 전쟁을 하지만, 전쟁은 분명히 민주주의를 제약한다. 전쟁 수행을 위해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정상'과 '비상'의 구분법이 대두한다. 이 구분법 아래에서, 그간 당연시되던 민주정의 규범, 제도, 일상은 '비상'에 자리를 내줘야 할 '정상'으로 치부되기 시작한다. 이 경우에 민주주의는 언제 올지 모를 종전 이후까지 '무기한 연기'해야 할 현실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민주공화국'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민주주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마법이 시작된다.
옛 사람들도 이를 명철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대 로마공화국에는 비록 '독재관'제도가 있었지만, 그 임기가 6개월로 엄격히 제한됐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도 이 점을 의식하여, 로마의 독재관제도를 본뜬 '대통령'제도를 신설하면서도 의회에 개전 결의 권한이 있다고 헌법에 못 박았다. 20세기에도 양차 세계대전 같은 엄청난 시험이 있었지만, 영국, 미국 등의 민주정은 어쨌든 비상사태 통치의 연장이라는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전혀 새로운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 등의 기술과 전쟁의 결합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현대 산업과 전쟁의 결합이 처음 그 잔인한 모습을 드러내고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핵무기가 등장한 것에 견줄만한 전쟁 양상의 획기적 변화다. 이런 전대미문의 조건에서 전쟁은 과거의 모든 문법에서 벗어난 채로 시작되고 전개될 수 있다. 그리고 전쟁 포고를 결의할 의회의 권한 같은 고전적 제어 장치는 이런 전쟁의 새로운 문법 앞에서 무력하다는 사실이 지난 두 달의 경험을 통해 일단 드러났다.
이제 이것은 미국만의 문제다. 미국이 신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전쟁 논리를 따르기 시작하면, 지구상의 다른 모든 나라도 이를 모방,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몇 백 년에 걸쳐 특정 지역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와 국민국가가 지구 전체로 퍼져나간 것과 같은 이치다. 즉,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유일 초강대국만의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앞으로 다른 모든 나라가 겪을 상황의 첫 번째 사례다.
이것이 21세기 민주주의가 맞이한 위험천만한 도전이다. 새로운 기술적 조건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을 제어할 현대적 방책과 역량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전쟁'이 아니라고 둘러대는 '전쟁'들의 포로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영구적-일상적 비상사태 속에서 민주주의는 사망선고나 장례절차도 없이 사라져갈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는 이미 이러한 시험을 한 차례 겪은 바 있다. 친위쿠데타를 모의하던 윤석열 일당은 비상계엄 선포 전에 드론 등을 활용해 북한을 도발하려 했다. 신기술을 활용한 비전통적 개전 시도의 '선구적' 사례이고, 역시 그 목적은 국내에 비상사태 통치를 선포하는 데 있었다.
다행히 한국 사회는 윤석열 일당의 아둔함 덕분에 이 위험을 일단 넘겼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첫 번째 시험의 통과일 뿐이다. "인간이 만든 비인간 행위자들을 내세운 21세기 전쟁의 논리를 민주정이 과연 사전에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의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것은, 지난 60여 일의 충격 속에서 자국 정치 체제를 다시 돌아봐야 할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답해야 할 인류 공통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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