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로 다뤄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뉴스 검색 순위에는 오르지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목소리다. ‘김정수의 첫조명’은 그 숨은 이야기를 찾는다. 화려하지 않아도, 주목받지 못했어도 직접 만나 듣고 기록한다. 키워드 하나면 알고리즘이 뉴스를 골라주고, 생성형 AI가 정보를 요약해 건네는 시대다. 그 거대한 흐름에서 비껴간 사람·사건·상황을 처음으로 비추는 것이 이 코너의 취지다. 사소해 보이는 장면 하나, 한 사람의 선택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현실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작은 조명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
치매 공공후견인은 의사결정 능력이 저하된 치매 환자를 대신해 법적·행정적 결정을 지원한다. 의료 동의나 재산 관리처럼 중요한 판단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노인을 돕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제도 인지도와 지원 부족 문제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제 활동하는 후견인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이 일을 이어가는 걸까. 여성경제신문은 전국 250여 명의 활동 후견인 가운데 한 명을 만나 그 계기와 이유 그리고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 빈자리 채우는 공공후견인
강동구치매안심센터 소속 후견인 유경숙 씨(57)는 병원 입원 서류의 보호자란에 가족 대신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치매 환자가 입원하면 병원은 보호자에게 전화를 건다. 약 처방·검사 동의가 필요한 순간이다. 보호자가 없는 노인의 경우 그 전화를 받는 사람이 바로 공공후견인이다.
“병원에서 ‘이 약을 처방해도 되겠냐’, ‘검사를 진행해도 되겠냐’고 물어보면 제가 결정해야 합니다. 보호자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죠.”
치료 여부를 판단하는 일은 동의에만 그치지 않는다. 수급자인 노인의 경우 한 달 생계비 70만~80만원 안에서 병원비를 감당해야 한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외래 진료를 위해 이동해야 할 때가 있는데 앰뷸런스를 이용하면 왕복 10만원이 들기도 한다. 환급 절차를 거치면 비용 일부가 돌아오지만 몇 달이 걸린다.
유 씨는 이런 판단을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복지사·변호사·센터 관계자와 사례 회의를 통해 상황을 공유하고 대응 방향을 논의한다. 병원 동행 기록·지출 내역도 정리해 법원에 보고해야 한다.
“기록을 정리하는 것보다 힘든 건 이 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할 때입니다. 후견인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제도는 있는데 생활 속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유 씨 역시 처음부터 후견인을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다. 큰딸의 봉사활동을 따라다닌 것이 계기가 됐다. 학교 봉사단체 활동으로 독거노인을 방문하는 딸을 따라다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의 현실을 가까이서 보게 됐다. 이후 건강 문제로 회사를 그만둔 뒤 생활지원사 일을 시작하면서 고령 취약계층을 더 많이 만나게 됐다.
후견 제도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현장에서 만난 한 여성 노인 때문이었다. 혼자 살았고 경제 사정도 좋지 않았으며 한글을 모르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 실버카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운데 병원은 8~9개 과를 다녔다. 숫자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더 연세가 들고 상태가 나빠지면 누군가 옆에서 도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 후 치매안심센터 상담을 다니다 공공후견인 교육을 알게 됐고 면접·교육 과정을 거쳐 선발됐습니다.”
교육을 마친 뒤 바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 대상자 매칭까지는 1년 넘게 기다려야 했다. 후견인은 긴급 상황에 바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거주지와 가까운 대상자와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치매·알코올 의존 겹친 피후견인···끝없는 위기 대응
현재 그가 맡고 있는 남성 어르신 사례는 공공후견인의 역할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준다. 이 어르신은 치매와 함께 알코올 문제가 겹쳐 있다. 생활지원사가 식사를 챙겨도 술을 사는 데 돈을 써버리는 일이 반복됐다.
“체크카드에 일정 금액을 넣어 관리해 드렸는데도 한 번에 다 써버리세요. 돈이 떨어지면 다른 금융기관에 가서 출금을 시도하거나 동네에서 무전취식을 하기도 합니다.”
집에서 오랜 시간 움직임이 없으면 사물인터넷(IoT) 경보가 울리고 그때마다 생활지원사와 함께 확인에 나서야 한다. 관공서에도 하루에 수십 통씩 전화를 걸어 “먹을 게 없다”, “아무도 안 온다”, “죽겠다”고 호소하는 일이 반복됐다. 결국 이런 신고가 누적되면서 행정입원으로 이어졌다.
입원 이후에도 후견인의 역할은 끝나지 않는다. 폐렴 치료를 마친 뒤 더 가까운 병원으로 옮길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재활 치료가 가능한지 확인하는 일까지 맡고 있다.
“병원을 알아보고 입원실을 찾고 재활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일을 누가 하겠어요. 가족이 없으면 결국 제가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공공후견인의 하루는 병원 동행과 위기 대응·각종 행정 절차가 뒤섞인 채 흘러간다. 보호자가 없는 치매 노인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원하지만 그 과정은 제도와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부딪히는 일의 연속이다.
“후견인이 뭐죠?”···현장서 부딪히는 행정 장벽
그 가운데서도 가장 자주 마주하는 벽은 행정 절차다. 병원·금융기관·주민센터에서 후견인 제도를 제대로 알지 못해 업무가 막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요양보호사라고 하면 서류를 떼주는데 후견인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곳도 많아요. 어떤 곳에서는 사기꾼 취급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병원 서류 발급이나 주민센터 등본 발급이 지난달에는 됐는데 한 달 뒤에는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은행에서 통장 출금이 막혀 병원비를 처리하려고 어르신을 모시고 계좌를 만들러 갔는데 의심을 받기도 했다. 같은 금융기관이라도 지점마다 대응이 달라 어떤 곳은 매뉴얼을 찾아 처리해 주지만 어떤 곳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하는 식이다.
그가 요양보호사 재직확인증을 함께 들고 다니는 이유다. 후견인 신분만으로는 업무 처리가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르신이 치매라는 걸 알고 시작하고 교육도 받았지만 당장 도움을 드려야 할 순간에 행정 절차 때문에 막히면 답답합니다.”
관공서를 상대하는 일도 큰 부담이다. 한 번은 병원을 옮기는 문제를 두고 구청과 5번 넘게 통화를 해야 했다. 어르신이 이사를 하면서 기존 병원까지 혼자 이동하기 어려워 다른 병원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지만 절차가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한 직원은 “병원은 한 달에 한 번 날 잡아서 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유 씨는 “누가 모시고 가느냐”고 되물었다. 요양보호사는 하루 3시간만 방문하고 여러 진료과가 같은 날 진료를 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같은 설명을 처음부터 반복해야 하는 일도 잦다. “내 가족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까지 싸워야 하나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월 20만원 활동비···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후견인 활동비는 월 20만원이다. 하지만 어르신 간식비·밥값·차비로 사용하면 끝난다. 새벽 전화가 오면 달려가야 하고 무연고 수급자의 장례 절차 안내까지 맡는다. 어르신을 찾으러 하루 종일 동네를 돌아다니는 일도 있다. “딸이 저를 보고 5분 대기조 같다고 해요. 그래도 안 할 수가 없어요. 가족이 없으니까요.”
그는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치매 어르신들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때로는 원망도 쏟아낸다. “그래도 욕할 대상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없으면 더 무너지실 수 있으니까요.”
유 씨처럼 이 일에 잘 맞을 사람이 누구일까. 그는 “이 일은 하면 할수록 할 게 많다”며 “사무적으로만 하려고 하면 편할 수도 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그렇게만 되지는 않는다. 어르신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을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하면 잘하실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 활동 후견인이 많지 않은 이유로는 홍보와 자원 부족을 꼽았다. 교육을 받은 사람은 2000명이 넘지만 실제 활동 인원은 250여 명에 그친다. 유 씨는 “이런 제도가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필요한 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치매 공공후견인은 널리 알려진 직업이 아니다. 하지만 보호자 없는 노인의 병원 보호자란에 이름을 적고 치료 여부를 대신 결정하며 사라진 어르신을 찾아다닌다. 제도가 충분하지 않음에도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유경숙 후견인이 그중 한 사람이다.
☞치매 공공후견인= 의사결정 능력이 저하된 치매 환자가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법률행위 및 행정 절차를 대신하거나 지원하는 사람이다.
☞사물인터넷(IoT)= 사물에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인터넷으로 주고받는 기술이나 환경을 뜻한다.
☞행정입원= 자신이나 타인을 해칠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를 지자체장이 권한으로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생활지원사=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취약 노인의 가정을 방문해 안전 확인, 생활 교육, 일상생활 지원 등 맞춤형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담 인력을 말한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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