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부흥을 일으킨 끌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셰미나 카말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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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부흥을 일으킨 끌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셰미나 카말리를 만나다

바자 2026-03-10 08:00: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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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MENA KAMALI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흥의 불꽃을 일으킨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셰미나 카말리. 고정관념을 벗어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그녀의 디자인은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하우스의 DNA와 정교하게 맞물리며 동시대의 여성성을 재정의하고 있다.


끌로에 사무실에서 팀원과 함께 있는 셰미나 카말리(우측)
끌로에 사무실에서 팀원과 함께 있는 셰미나 카말리(우측)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도 알았어요.


파리 교외에 위치한 셰미나 카말리의 집에는 블라우스로 가득한 드레스룸이 있다. “걸어둔 것만 해도 600벌쯤 돼요.” 그녀가 웃으며 말한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것들도 있고요.” 카말리가 왜 끌로에의 수장이 되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끌로에는 플루(flou)라 불리는, 시폰처럼 가볍고 유연하게 흐르는 실루엣 속에 세워진 패션 하우스다. 카말리는 특히 브랜드의 정체성과도 같은 블라우스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여성성의 변화를 이토록 잘 보여주는 아이템은 많지 않아요. 요크와 소매, 볼륨과 색감까지 모든 요소가 특정 시대를 방증하기 때문이죠.”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는 물론 1930년대와 1950년대 심지어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블라우스는 당대의 미학을 대변하며 여성성의 진화를 담아온 척도였다. 동시에 드레스보다 훨씬 가볍고 청바지와도 손쉽게 매치할 수 있어 오랫동안 뭇 여성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렇듯 편안함에 대한 집요한 탐구와 당대 여성성에 대한 질문을 패션으로 승화시키는 카말리가 〈바자〉 영국판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 어워즈 2025’에서 패션 디자이너 부문을 수상한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머리를 단 한 번도 자른 적이 없어요” 동화 속 주인공처럼 곱슬거리고 긴 머리카락을 간직한 그녀지만 디자인은 철저히 일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해야 해요. 사진이나 옷걸이 위에서만 멋져 보이는 건 원하지 않아요. 저에게 디자인이란 입는 사람이 자신답다고 느끼면서 어떤 한계에 갇히지 않았다고 느끼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하죠.” 그렇다면 이 상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 “정말 중요해요. 여성 디자이너로서, 여성에 의해 설립된 브랜드에서 일하며 이런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이 저를 무척 행복하게 해요.” 1952년 이집트 출신의 디자이너 가비 아기옹(Gaby Aghion)이 파리에서 끌로에를 시작했을 때, 하우스의 핵심 기조는 ‘쿠튀르에 대한 거부’였다. 첫 쇼를 살롱이 아닌 파리의 전설적인 카페 드 플로르에서 선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끌로에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황홀한 것을 패션으로 묘사하지만 결국 현실의 삶을 다루는 하우스임을 밝힌 일종의 선언이었다. “아름답고 우아함을 갖춘 옷은 여성이 입고 거리로 나섰을 때 비로소 진가가 드러난다”는 아기옹의 신념은 오늘날까지 끌로에의 철학으로 관통된다. 카말리가 언급했던 자연스러운 여성성에 대한 애정과 움직임 그리고 활동의 중요성은 하우스가 시작된 순간부터 핵심 가치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 끌로에의 여성은 결코 패션을 과시하는 존재가 아니다. 항상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삶에 몰두하느라 그럴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카말리는 2년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이후, 이른바 ‘끌로에다움(Chloéness)’의 정수를 완벽히 구현했다. 그녀는 부드러운 시폰 드레스에 강인한 가죽 재킷을 매치하는 등 그녀만의 시선으로 브랜드를 한층 빛나게 만들었다. “직관적인 옷 입기 방식입니다. 너무 다듬어지지도, 억지스럽지도 않죠.” 그녀의 뛰어난 감각을 알아보는 팬들 중에는 데이지 에드거-존스, 리야 케베데, 시에나 밀러 같은 동시대의 스타일 아이콘이 거론된다. 독일인 어머니와 이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카말리는 독일에서 성장해 10대 시절 몇 년간은 캘리포니아에서 보낸 뒤 다시 유럽으로 돌아왔다.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오늘날의 작업들이 ‘캘리포니아의 자유로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루이스 윌슨(Louise Wilson) 교수에게 배운 시간 또한 중요하게 여긴다.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윌슨에게 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고 모든 과정을 성실하게 임했죠.” 완벽주의 성향으로 질문을 쏟아내던 그녀에게 윌슨은 도리어 “여기서 나가! 일주일쯤 사라져서 클럽으로 가!”라고 말했다. “사실상 저를 쫓아냈죠. 하지만 그 경험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추구하는 미학이 무엇인지를 찾게 해줬어요. 저에게 꼭 필요한 순간이었죠.”(그럼에도 카말리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디자인 스튜디오로 향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졸업 쇼를 준비할 때 끊임없이 윌슨의 사무실을 들락날락하며 조언을 구했던 카말리는 졸업 쇼가 끝난 후 사과하러 그를 찾아갔지만 “완벽주의자라는 이유로 절대 사과하지 마”라는 말을 들었다고. 패션에 깊이 빠져 있던 독일 태생의 카말리는 항상 끌로에를 동경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하우스를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1964년부터 1983년까지, 그리고 1990년대에 다시 한 번 재임했다.) “칼은 국가적인 아이콘이었어요. 그가 끌로에를 제 의식 속으로 강렬하게 끌어들였죠.” 학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브랜드 인턴십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카말리는 끌로에에 지원했다. 1970~80년대 책과 잡지를 복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지만 지금의 일을 해내는 데 큰 밑거름이 된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직감했어요. 그리고 미래를 만들기 위해 과거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도 알았죠.”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이끌던 시절, 카말리는 플루 디자인 총괄을 거쳐 프리 컬렉션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했다. 그리고 2023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되는 영광을 맞이했다. 카말리는 라거펠트가 끊임없이 전진하며 스스로를 재창조해온 방식에 대한 존경을 컬렉션을 통해 드러냈다. 지난 10월 공개된 2026 S/S 컬렉션에서 그와 유사한 접근 방식으로 다채로운 룩을 선보였다. 끌로에의 아이코닉한 블라우스를 필두로 선명한 색채의 플로럴 패턴, 1950년대 수영복에서 차용한 핀업 걸 보디스와 우아한 셔링 디테일 그리고 1980년대식 파워 숄더 실루엣으로 컬렉션을 완성한 것. “무언가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요. 고정관념 속에 가두고 싶지 않아요. 이건 진화이고, 이 여성이 앞으로도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연속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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